원래 10월 26일에는 땅끝마을 피네스테레에 당일치기 버스로 다녀올 예정이었다. (23일에 도착했으니 어디보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차다) 그 곳은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90여킬로미터 떨어진 스페인 서쪽 끝으로 영화 더웨이에서처럼 산티아고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에 며칠 더 걸어서 다녀오기도 하는 곳이다. 순례길 0km가 표지된 안내석으로 유명하다. 땅이 끝나고 대서양 바다가 시작되는 곳.
사진은 이선생님이 보내주신 0km 표지석.
근데 기술적으로 볼때 우리가 순례길 내내 산티아고를 기준으로 한 거리 표지석을 보고 걸어왔으니 사실 0km 표지석은 산티아고에 있어야 한다. (산티아고에는 없다!)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당황했다.
저기 땅끝마을은 산티아고로부터 서쪽으로 90키로쯤 먼 곳에 있으니 저기엔 0km 가 아니라 -90km가 적혀있어야 하는게 전체적으로 표지석 관리에 일관성있고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0km 보러가는 사람들의 낭만과 피네스테레 관광청 입장도 있고 너무 T같으니 이런 생각은 멈추도록 하자.
여튼 저기를 다녀오려니 원래는 1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지만 확인해보니 대중교통 버스가 엄청 돌아가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서울에서 원주가는데 대전을 찍고 가는 경로랄까. 사설 버스나 투어로 가는게 맞는것 같기는 한데 투어는 너무 길고 잡다한 마을을 많이 거쳐가고, 사설 버스는 잘 구해지지도 않아서 그냥 26일 수요일에도 산티아고에 있기로 했다. 난 광장을 좋아하니까.
아침에 기차역에 가서 내일 이동할 살라망카 가는 표도 사고, (기차표가 애매한지 역무원이 사모라Zamora 까지 가는 가는 표를 끊어주고 거기서 버스를 타라고 했다) 분당 누님들과 함께 오늘 피네스테레로 이동하시는 이선생님 배웅도 해 드렸다. 이선생님은 피네스테레 가셨다가 포루투 쪽으로 내려가서 여행을 조금 더 이어가신다고 한다.
광장에서 서성이며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수다도 좀 떨고 있는데, 저 멀리서 수레 끌고 다니시던 스페인부부가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작한지 며칠 안되던 날 어느 마을을 빠져나오는 멋진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아침에 처음 만난 그분들. 성함도 모르고 말도 하나도 안통하는 노부부다. 부르고스까지는 중간 중간 길에서도 숙소에서도 자주 마주쳤다가, 메세타에서는 한번도 마주치치 못하다가, 오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한 날 폭우와 강풍속에서 다시 마주쳤었었다. 아저씨는 수레를 끌고 가고 아주머니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일매일 천천히 20킬로쯤 다니던 분들이었지.
고생많으셨어요 축하해요라고 한국말로 말하며 그분들을 광장서 맞아드렸다. 왠지 마음 속에서 엄마 아버지 생각이 난 것 같기도 하다. 산티아고로 무사히 오신게 너무 반갑고 대견하고 안심되었다.
마지막으로 점심 미사 들어가서 보고, 대구 남매분 일행들이랑 아시아 푸드에서 뜨끈하게 점심도 먹고 기념품 쇼핑도 좀 했다. (이미 이때 3일간 산티아고에서 기념품 쇼핑에 중독된 상태였다) 그러고 나니 이제 도착을 기다릴 기억나는 사람도 없고 산티아고 광장에서 비로소 성당을 바라보며 진정한 멍을 때릴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
며칠 있어본 산티아고 성당 부근의 중심지는 참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광장 중심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터무니없이 웅장한데, 성당 좌우로 길게 증축된 부분이 서로 높이가 다르다. 더불어 성당과 광장의 맞은편 건물과의 비례라든지 조화가 살짝 무너진 듯한 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찍고 올린 산티아고 성당 배경 사진들을 보면 대개 성당이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정확치 않을 수 있지만 대강 별빛 아래의 성 야고보 라는 의미라고 한다. 도시 이름으로는 너무 길고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로망은 끝내준다. 이슬람 지배 시기에 야고보의 무덤이 재발견될 때 무덤으로 별빛이 비추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갈리시아 지방의 특성인지 날씨도 흐렸다 비왔다 개었다 천둥번개까지 변화무쌍하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도착하고 출발하고 관광객들도 분주하다. 광장은 한 순간도 같은 느낌을 준 적이 없었다.
순례자 야고보의 성지라서일까.
살짝은 불안하고 엄청나게 동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해가 질 때까지 꽤 오랫동안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비는 안맞고 천장이 있는 맞은편 건물아래 있었다.)
이제 진짜 이 여행이 끝났구나.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치는 산티아고 성당 광장은 조금 기괴하군.
저녁이 되니 마커스는 피네스테레를 찍고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만나서 마지막 저녁 겸 한잔을 하다가 아침에 피네스테레 및 8개마을 원데이 투어를 다녀온 브랜든 아저씨도 불러서 술통 간판이 달린 식당에서 자정까지 꽐라가 되었다. 식당을 나와서는 가방에 미리 준비한 와인을 꺼내 야밤에 성당 앞에서 한잔 더하는 로망도 선뵈여드렸지. (가끔 단톡방에서 안부 전할때 브랜든 아저씨가 야밤에 성당 앞에서 술꺼내는 크레이지 코리안이라고 여전히 그 사건을 좋아하고 있다)
다음날에는 마커스랑 아침 먹고 역까지 같이 가서 찐하게 포옹하며 작별을 나누고는살라망카 가는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