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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수달 Dec 06. 2023

대성당 앞에서의 기다림과 재회

도착 다음날과 다다음날, 산티아고


산티아고에 23일 일요일에 도착한 뒤, 난 며칠간 아무 일정도 잡지 않고 그곳에 그냥 있기로 했다. 마커스는 도미닉이랑 같이 스페인 서쪽 땅끝마을 피네스테레까지 마저 더 걷는다고 했다. 같이 걸어가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마지막 5일간 궂은 빗속에서 160km를 내질러버린 후 이제 이번 여행에서 나의 걸음은 끝을 본 것 같았다. 아직 뻐근하고 좀 아픈 다리도 천천히 휴식하면서 회복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이 길을 다 끝낸 감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길 위에서 마주쳐간 사람들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이제 매일 아침 떠날 길이 없으니 틈나는대로 광장에 갔다. 광장에서 서성대고 있으면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보고 왼쪽 방향에서 사람들이 도착한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고 가끔은 아는 사람들이다. 고대하던 목적지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인데 환호하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하고 그저 담담하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나랑 마커스가 제일 어리버리하게 광장에 입성한 듯 하다)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 싶은 카미노 인연들이 들어오는 모습은 너무나도 반가웠다. 

사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도착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착하는 시점에 광장에서 딱 그들을 맞아주기는 쉽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광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백수가 되었지만 은근히 도착한 사람들이랑 밥먹고 회포 풀고 기념품 사고 미사 들어가고 등등 바쁘다!) 또 들어오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몇 인연들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반겨주며 기쁨의 포옹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들을 제 시간에 맞아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선생님이랑 분당누님들은 24일에 함께 도착하셨다. 다행히 도착하실 때 마침 광장에 있어서 두팔 벌려 우리 이선생님을 맞아드릴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순례길 중 하루 종일 함께 맞추어 걸은 날이 있는 사람은 마커스랑 이선생님 둘 뿐이었다. 36일 중 며칠을 오롯이 함께 하고 무사히 도착해 또 도착지에서 만났으니 참 감사한 인연이다. 


같이 다니면서 밥도 먹고 성당 앞 광장의 사진 명당 스팟을 찾아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크리덴셜 (순례자여권) 들고 찍는다든지 가방(빌려) 들고 찍는다든지 등등 컨셉 사진도 찍었다. 역시 누님들이랑 있어야 좋은 사진을 많이 건질수 있군. 한번 쯤 해보고 싶었던 광장 앞에서 와인 한잔 건배도 하고 감동적인 저녁 미사도 함께 들어갔다. 



브랜든 아저씨, 대구 남매분들, 김선생님, 독일 제니, 또다른 제니 (둘다 독일 출신 제니였다)도 광장에서 만나서 무사히 완주한 기쁨을 함께 했다. 그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셨는지 도착 후 며칠 동안 광장에 자주 출몰했는데 자주 마주치며 인사하고 기념품도 같이 사러 다니고 식사 시간에는 밥도 같이 먹고 그랬다. 


싱가폴팀, 헬렌 아줌마, 미국 신부 케빈, 레온서 마주친 처자, 성함은 잘 모르지만 길에서 마주친 한국분들 외국분들 등 아마 지금쯤 오겠지 싶은 사람들은 25일까지 대부분 도착을 했고 광장이나 산티아고 시내에서 마주치면서 서로 반가운 축하의 인사를 해주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도착 장면을 바라보는 것도 참 즐거웠다. 먼 길을 걸어 기어코 이곳까지 온,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이 하나 둘 계속해서 도착한다고나 할까.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 앞에서는 살면서 가장 순수하게 기쁜 장면 중 하나가 계속 반복된다. 도착하는 시간이나 몸짓은 제각각이지만 한없이 뿌듯한 마음만은 똑같다. 그 마음 나도 참 알것 같아 함께 가슴이 벅차다. 축하해 수고했어 고생 많았지 나도 그맘 알지 그런 한없이 따숩고 든든하고 뒤끝 없이 흐뭇한 감정이랄까.

그렇게 광장 한켠에 서서는 순례자들이 도착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조금은 스산하고 너무 웅장해서 살짝 기괴한 그곳에서,

우산을 쓰고 멀찍이 서서 성당을 바라보며 딱히 약속도 하지 않은 길위의 인연들의 도착을 그저 기다리는 순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 중 하나였다.


10월 24일 25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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