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반에 도착 후 12시 미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미사에는 배낭을 매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가방을 맡길 수 있다는 안내사무소를 찾아서 배낭을 맡겨야 했다. 처음 와보는 도시의 꼬불꼬불한 골목에서 사무소를 재빨리 찾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로밍 데이터와 구글맵의 도움으로 다행히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여행 내내 길찾기와 연락과 검색을 가능하게 해 준 로밍. 데이터 사용을 위해서는 현지 유심이 백배 싸다고는 들었지만 시간이 금인 자본주의 K아재에게 폰 매장을 찾아 헤맨다든지 유심을 뺐다 꼈다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이번 여행에서 밥값과 로밍데이터만은 아끼지 않았다. (그럼 대체 아낀게 있긴 한가? 하는 자문이 새삼 든다...)
아무튼 그래서 가까스로 성당 타이밍에 가방 맡기기까지 성공! 이제 성스러운 향로미사를 들어가서 완주의 기쁨과 감사함을 경건하게 느껴야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산티아고는 갈리시아의 대표 관광지였고 일요일 성당 미사는 순례자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꼭 가고 싶어하는 코스였던 것이다. 향로미사를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한두시간 전 쯤 진작에 성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사가 임박한 성당 입장 줄은 마냥 길었고 비오는 와중에 입구 근처는 아주 혼란스러웠다.
오자마자 뭐이리 정신이 사납나. 내가 생각한 도착의 장면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하는 씁쓸한 마음으로 혹시나 하고 마커스랑 입장 줄을 서 봤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입장 마감. 성당 문이 닫혔다.
굳은 날씨에 총력으로 일요일 11시반에 도착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미사에 들어가는건 다른 일이었다. (나중에 보니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할 수도 있었겠더라) 우린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으나 타이밍이 안좋았다고도 할 수 있고, 전술은 좋았는데 정보와 전략이 부족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일요일 점심 미사를 향해 며칠간 총력으로 달려왔던 것을 생각하면 결과는 다소 허무했다.
우리의 산티아고 입장은 참 꽝이었다.
비가 와서 춥고 배도 고프고 어리버리 정신도 없다. 좀 허탈한 마음으로 서성대다가 순례 인증 사무소에 가서 인증서를 받았다. 도착의 순간에 감격의 감회를 여유있게 느낄 새도 없이 행정적인 절차를 계속 하는 기분. 그래도 인증서를 받으니 뿌듯했다. 이제 끝났구나 싶다.
그래도 아직 순례길 초반 동기 채리사를 만날 기회는 남아있었다. 연락해 보니 미사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미사에서 나온 채리사와 연락해 만나 잠깐 만나 인사하고 성당 앞에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채리사는 우리와 인사하고 비행기를 타러 떠났다.
아마도 이번 여행 마지막 알베르게가 될 숙소에 체크인하고, 다시 광장에 나가서 오후에 도착한 아는 얼굴들과 서로 축하를 나누었다. 한국에 가족들에게도 영상통화로 산티아고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후에는 잠깐 날씨가 개기도 했고 오전 우리가 도착한 분위기 보다는 광장이 훨씬 차분했다. 그냥 아침부터 여유롭게 걷고 미사 이후 도착했으면 광장이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훨씬 좋을 뻔 했다.
저녁에는 산드라 패밀리가 다른 외국 친구들과 큰 저녁모임을 만들어서 (심지어 이 자리서 첨보는 분들도 계셨다) 마커스랑 다같이 도미닉 산드라 알바니아 친구들 등과 만나 식사하며 서로를 축하해 주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은 그렇게 삶의 어느 순간 못지 않게 기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좀 어정쩡하고 어리버리하며 날씨는 험상궂고 못마땅한 하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