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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수달 Dec 16. 2023

카미노 후 자문자답 - 몸과 마음편

아무도 묻지는 않은 셀프 Q&A (4)


1. 살은 빠졌나요?

입던 바지가 좀 헐렁해 졌으니 빠진 건 확실해요. 매일 20km씩 걸으니 칼로리 소모량이 워낙 많아서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듯. 근데 한국 돌아갈 때까지 체중을 잴 방법이 없었어요.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재었어야 하는데 억울하군요. 그 이후로 매일 술 먹느라 급속도로 회복한 것 같아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체중을 재 보니 약 2~3kg 정도 빠진 듯 한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변화는 아닌 듯. 그래도 기초대사량이 조금 높아졌는지 별다른 관리 없이도 한동안 체중이 유지 되더라구요.


2. 운동 능력이 좋아졌나요?

걷는 엔진은 확실히 좋아진것 같아요. 발목과 발바닥이 아픈 와중에도 길을 출발하면 허벅지와 엉댕이가 자비 없이 앞으로 쭉쭉 보냅니다. 근데 걷기만 잘 될 뿐 잘 달리거나 점프가 잘 된다거나는 아니에요. (다들 매일매일 대차게 걷지만 달릴 수는 없는 것을 모두 알고 있죠)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 도착하면 기념으로 점프샷들을 찍고는 하는데, 하나같이 점프를 한다고는 하는데 땅에서 얼마 뛰어오르지를 못하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운동 능력이 좋아졌다기 보다 걷는 근성이 좋아진 듯.


3. 다리는 나았나요?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에도 한달 정도는 약간 뻐근함이 남아 있었는데, 서서히 사라졌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등산도 다니고 했는데 문제 없더라구요.


4. 길에서 건강해지나요?

네. 이 부분은 확실합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많이 걸으니 확실히 온몸의 순환이 활발히 잘 된 것 같아요. 산티아고 길 걸으면서는 속이 더부룩하다든지 하는 일도 없었구요. 무엇보다도 골치아픈 일들을 잠시 잊고 매일 걷고 자고 먹는 단순한 일만 하다보니 마음의 상태도 조금 더 차분하고 투명해진달까. 몸과 마음이 매일 있어야 할 상태로 충분히 회복되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아픈 발만 빼고.


5. 카미노를 오게 된 계기는?

걸으면서 참 많이 한 생각 중 하난데 여기 왜 왔을까. 일단 막연한 버킷리스트였고 마침 시간이 생겼어요. 근데 그건 오게된 계기는 아니고 올 수 있었던 환경이라고 해야겠지요.

오게 된 계기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단한 건 아니고 머리를 식히러 왔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 다만 몇 년간 여러가지 일들로 마음이 너무 과열되었어서 한국에서 평범한 방법으로는 식힐 수가 없었어요. 복잡한 인생에서 잠시 비켜서서 마을을 가다듬고 인생을 조금 전환할 디딤돌이 필요했던 듯 해요.


6. 그래서 길을 걸은 뒤 자아는 다시 찾았나요?

음 자아를 찾을 나이는 아닌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오랜 여행(고생?)을 하며 전보다 아주 조금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7. 멘탈적으로 좋아진 점이라면?

생각이 전보다 조금 더 단순 명료해진것 같고, 부끄러움이 조금 더 없어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과연 좋아진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나와 타인에게 아주 조금 더 관대해진 것도 같아요.


8. 산티아고 길을 걷고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걷고 먹고 자는 일만 걱정하는 한달이 꽤나 행복했던 기억이었는지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이 조금 생겼어요. 미루고 쌓아두며 대단한 꿈이나 계획에 집착하기 보다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자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물론 생각이 든다고 다 실천하는 건 아닙니다만...) 


9. 카미노를 걷고 인생이 달라졌나요?

아쉽게도 그런 영화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일상의 매너리즘은 아주 부지런히 돌아오더라구요. 인생에서 버겁던 여러가지 과제들도 여전하구요. 그래도 하루하루 걸어갔더니 결국 도착하더라, 걸었던 날들이 뒤돌아보면 참 좋았더라 하는 경험은 앞으로도 사는데 도움을 좀 줄 것 같습니다.


10. 카미노를 다시 올 생각이 있나요?

카미노블루라는 말이 있어요.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겪는 일종의 향수병 같은 건데, 저도 카미노에서의 기억이 생생하고 그립기도 합니다. 돌아오고 난 직후에는 한동안은 다시 올 생각이 들것 같지 않았는데, 이제 1년이 지난 시점에 생각해보니 여건만 된다면 내년에라도 가고 싶군요. (하지만 만약 내년에 그런 여유와 기회가 있더라도 아마도 다른 여행을 선택할 가능성이 아직은 높아 보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다시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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