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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픽션들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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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탁소리 Mar 13. 2022

영혼의 산

   언젠가부터 그녀의 편지에 '작은 인간들'이 등장했다.

  작은 인간들은 그녀의 삶에 사고처럼 끼어들었다고 했다.  한때 동네 서점에서 독서모임을 이끌던 그녀는 지금, 서점 주인 C가 있는 곳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다. 동네 빵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녀의 현재 생활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없다. 가끔씩 보내오는 편지에는 산책하면서 떠오른 단상이나 지금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에 대한 느낌 정도가 적혀 있었다. 이웃들과 얽힌 사소한 이야기라도 있으면 지금의 일상이 그려지겠는데 구체적인 생활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그녀의 편지는 마치 모르는 작가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작은 인간들' 이야기를 보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의 삶에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외지인인 그녀에게는 속내를 이야기할 대상이 없었다. 그러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외로움을 견디기가 수월해졌다고 했다. 처음엔 일기도 밋밋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고 나가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 근처에 있는 빵가게에서 일하고, 돌아와서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잠드는 식이었다.  이런 일상이 바뀐 것은 어느 토요일 아침 현기증이 심해서 쓰러졌다가 몇 시간 후 깨어난 다음부터였다.      

  

  식탁에 따뜻한 한 끼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녀 말고 집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식탁 위에 얌전하게 차려진 밥과 국, 야채무침과 생선구이를 본 그녀는 한참을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그러다 마치 홀린 것처럼 식탁 의자에 앉아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잠이 쏟아졌다. 간신히 양치질만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식탁 위에는 또다시 따뜻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휴일이라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깨끗이 밥상을 비웠다. 그리고 나서 화장실을 다녀온 그녀는 집안이 뭔가 달라진 걸 눈치챘다. 깔끔하게 청소를 한 상태였다. 책장에는 먼지 하나 없었고 방금 전 먹은 아침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되어 있었다. 세탁기 옆 빨랫감도 치워져 있었고. 옷들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옷장도 줄을 맞춘 듯이 정리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해서 누가 이런 식으로 자기 삶에 끼어들었는지 찾느라 애를 썼는데 이내 포기했다고 한다. 삶이 너무 고단했던 그녀는 그게 누구든, 지금은 자기를 보살펴주는 상황이니 내버려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작은 인간들'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아무래도 혼자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들'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작은 인간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그녀는 오랜 피로감에서 조금씩 회복되었다. 먼저 몸이 나아졌고, 서서히 마음도 좋아졌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일기장을 통해서 '작은 인간들'과 대화도 나누기 시작했다. 일방적이긴 했지만, 집을 비울 때마다 ‘작은 인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두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앓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작은 인간들’이 슬픔의 원인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쪽은 주기만 하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관계라니. 불편한 마음이 커지면서 체기가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인간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에 그런 마음을 적었지만 답신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작은 인간들'이 뭔가 해주기 전에 먼저 하기로 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서 남기지 않고 먹었고,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를 하고 나갔다. 일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 운동도 시작했고 몇 달간 눈인사만 나눈 이웃들과 밖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하고 들어갔다. 일기장에는 '오늘도 늦게 들어올 것 같다. 저녁 약속이 생겼다. 즐거운 모임이 될 것 같다.' 등의 말을 적어두고 나갔다. '작은 인간들'이 저녁을 차려두고 기다릴까 봐 걱정되서였다.      


   ‘작은 인간들'은 그녀가 놓친 일거리들을 열심히 찾는 것 같았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책장, 눈에 띄지 않아서 닦지 못한 창틀의 먼지, 물기가 마른 화분을 용케 찾아 그들의 존재감을 계속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 정돈할 것도 치울 것도 없게 되어 깨끗한 거실 바닥에 등을 대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던 어느 날, 연기처럼 그들이 사라졌다고, 편지는 전해주었다.


    자꾸 아픈 사람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고, 의미 없이 밥벌이만 하고 사는  같다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떠났던 그녀는 오랜만에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괜찮다고, 이제  해야 하는지 알겠다며 밝게 웃었다. 봄비가 내린 뒤라 풀냄새가  타고 들어왔다. 서점 주인 C ‘작은 인간들 대해 묻고 싶었지만 생기 있는 목소리를 들으니 앞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후일담을 들려줄  같아 질문을 삼켰다. 인사를 하고 서점 문을 막 나서려던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알듯 말듯한 문장을 던졌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만의 영혼의 산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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