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저리 가."
목이 메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는 뒤돌아 앉는 우리 아들.
동생이 태어나고부터 부쩍 떼쓰는 일이 많아졌고 토라지는 일이 많아졌다.
첫째들은 모두 겪는다는 질투의 감정.
동생을 본 아이는 질투를 넘어서 슬픔과 우울함을 그리고 분노와 좌절을 겪는다.
우리 아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에 두어 번씩 말도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떼를 쓰고 한두 시간씩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러는 아이를 혼내봤다 달래 봤다 별짓을 다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인터넷과 책에서 읽은 대로 아이를 붙들고 앉아 몇 시간씩 기다려 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하루에 꼭 한두 시간씩 몇 번씩이나 우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몸도 지쳐갔다.
괴롭고 답답하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은 생각보다 크게 아팠다.
아이는 동생이 밉거나 싫다기보다 사랑이 빼앗긴 그 상황이 싫은 것 같았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도 하루 종일 교실 뒤에 서서 손톱만 뜯다가 집에 오곤 했다. 하루 종일 아무 활동도 참여하지 않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잘 못 잤다.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아이는 몸도 크게 자라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은 아이가 아이컨택이 되지 않으니 한 학기 동안 노력해보고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자고도 하셨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과도 상담을 했는데 아마도 아이에게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하셨다. 산 넘어 산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울면서 엄마가 죽는 꿈을 꾸었다는 아이.
그리고는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신경질로 가득 차 있는 아이.
늘 울음을 참고 있는 그런 아이를 보니 내 마음은 더욱더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겨우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정말 힘든 감정인 것 같았다. 밤에 자다가도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면 아이는 밤새 자지 않고 잠들어 있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의 아픈 감정을 인정하고 껴안을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위로의 방법은 별로 없다는 것. 그저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는 것 밖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그랬다. 안 좋은 마음들이 한데 얼어붙어 어쩔 줄 모르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냥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분노와 절규에는 가늠할 수 없는 시퍼런 슬픔이 숨어 있었다. 그 슬픔은 아이의 작은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드러누워 그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꼴을 보고 있으면 작은 몸에 서려있는 독한 슬픔이 전염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냥 무조건 안고 둘만 있을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따듯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론 아이는 그 순간도 거부했다. 발버둥 쳤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안아주는 일뿐이었다. 억지로 안고 들어가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안아주었다. 내 몸이 아이에게 붕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어떻게 해도 괜찮아지지 않았고 그럴 때면 내 눈물을 아이의 눈물에 섞었다.
공감만으로는 부족한 마음.
게다가 아직 말도 서툰 작은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준 당사자는 바로 나라는 사실에 난 더 열심히 아이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아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흑흑흑..."
아들은 자기의 마음을 설명하기엔 너무 어렸다. 대답할 수가 없었지만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성현아. 엄마 눈을 봐봐.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엄마 아빠가 동생 목욕시키는 동안 혼자 남겨져서 마음이 안 좋았어? 동생 때문에 성현이에게 사랑이 연해졌다고 생각하는 거 맞지? 엄마는 성현이의 그런 마음 누구보다 잘 알아."라며 아이의 입장에 서서 기분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는 한두 시간을 기다려도 그치지 않았던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아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말도 안 되는 일로 떼를 쓰면 무조건 껴안고 왜 마음이 안 좋은지 물었다.
"성현아 기분 괜찮아? 너 마음 괜찮아?"
처음에는 말이 서툰 아이는 표현을 못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아이가 말을 좀 더 잘하게 되니 이젠 제법 자신의 속상함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어느 날은 엄마가 나쁘게 말해서, 어느 날은 동생이 자기 장난감을 뺏어가서..라고 말했다. 그런 기분들을 알아주고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늘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아이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아이의 문제가 해소되는가 싶으면 다시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1mm씩 아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에 두세 번씩 울던 아이는 점점 그 횟수가 적어졌고 밤에 깨서 혼자 우는 일이 줄었고 웃는 일이 생겼다.
어린이집에서도 점점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이컨택도 그럭저럭 잘 이뤄지고 있다.
여전히 가끔씩 슬픈 눈을 하고는 혼자 구석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나는 아이의 마음과 기분을 헤아리느라 여념이 없지만 사소하게 기분을 물어봐주고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차가운 마음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그런 일이 생긴다.
누군가를 질투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질투가 나는 일.
선택받고 싶지만 선택받지 못해 속상한 일.
집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지만 내 마음만큼 채워지지 않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 자존심이 매우 상해 그런 척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 말이다.
그럴 때 어른이라고 부르는 우린 어떨까?
아이보다 두 배로 큰 키를 가진 어른은
이 감정을 두 배로 더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척을 할 뿐이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울음을 참는다.
그때 누군가가 내 기분을 물어준다면...
내 눈물에 기꺼이 당신의 눈물을 섞어 아픈 마음을 같이 마셔준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그렇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세상을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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