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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Feb 07. 2020

울음 참는 아이

"싫어. 저리 가."

목이 메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는 뒤돌아 앉는 우리 아들.

동생이 태어나고부터 부쩍 떼쓰는 일이 많아졌고 토라지는 일이 많아졌다.

첫째들은 모두 겪는다는 질투의 감정.

동생을 본 아이는 질투를 넘어서 슬픔과 우울함을 그리고 분노와 좌절을 겪는다.

우리 아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에 두어 번씩 말도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떼를 쓰고 한두 시간씩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러는 아이를 혼내봤다 달래 봤다 별짓을 다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인터넷과 책에서 읽은 대로 아이를 붙들고 앉아 몇 시간씩 기다려 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하루에 꼭 한두 시간씩 몇 번씩이나 우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몸도 지쳐갔다.

괴롭고 답답하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은 생각보다 크게 아팠다.

아이는 동생이 밉거나 싫다기보다 사랑이 빼앗긴 그 상황이 싫은 것 같았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도 하루 종일 교실 뒤에 서서 손톱만 뜯다가 집에 오곤 했다. 하루 종일 아무 활동도 참여하지 않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잘 못 잤다.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아이는 몸도 크게 자라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은 아이가 아이컨택이 되지 않으니 한 학기 동안 노력해보고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자고도 하셨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과도 상담을 했는데 아마도 아이에게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하셨다. 산 넘어 산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울면서 엄마가 죽는 꿈을 꾸었다는 아이.

그리고는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신경질로 가득 차 있는 아이. 

늘 울음을 참고 있는 그런 아이를 보니 내 마음은 더욱더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겨우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정말 힘든 감정인 것 같았다. 밤에 자다가도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면 아이는 밤새 자지 않고 잠들어 있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의 아픈 감정을 인정하고 껴안을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위로의 방법은 별로 없다는 것. 그저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는 것 밖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그랬다. 안 좋은 마음들이 한데 얼어붙어 어쩔 줄 모르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냥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분노와 절규에는 가늠할 수 없는 시퍼런 슬픔이 숨어 있었다. 그 슬픔은 아이의 작은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드러누워 그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꼴을 보고 있으면 작은 몸에 서려있는 독한 슬픔이 전염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냥 무조건 안고 둘만 있을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따듯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론 아이는 그 순간도 거부했다. 발버둥 쳤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안아주는 일뿐이었다. 억지로 안고 들어가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안아주었다. 내 몸이 아이에게 붕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어떻게 해도 괜찮아지지 않았고 그럴 때면 내 눈물을 아이의 눈물에 섞었다. 

공감만으로는 부족한 마음.

게다가 아직 말도 서툰 작은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준 당사자는 바로 나라는 사실에 난 더 열심히 아이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아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흑흑흑..."

아들은 자기의 마음을 설명하기엔 너무 어렸다. 대답할 수가 없었지만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성현아. 엄마 눈을 봐봐.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엄마 아빠가 동생 목욕시키는 동안 혼자 남겨져서 마음이 안 좋았어? 동생 때문에 성현이에게 사랑이 연해졌다고 생각하는 거 맞지? 엄마는 성현이의 그런 마음 누구보다 잘 알아."라며 아이의 입장에 서서 기분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는 한두 시간을 기다려도 그치지 않았던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아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말도 안 되는 일로 떼를 쓰면 무조건 껴안고 왜 마음이 안 좋은지 물었다. 

"성현아 기분 괜찮아? 너 마음 괜찮아?"

처음에는 말이 서툰 아이는 표현을 못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아이가 말을 좀 더 잘하게 되니 이젠 제법 자신의 속상함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어느 날은 엄마가 나쁘게 말해서, 어느 날은 동생이 자기 장난감을 뺏어가서..라고 말했다. 그런 기분들을 알아주고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늘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아이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아이의 문제가 해소되는가 싶으면 다시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1mm씩 아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에 두세 번씩 울던 아이는 점점 그 횟수가 적어졌고 밤에 깨서 혼자 우는 일이 줄었고 웃는 일이 생겼다.

어린이집에서도 점점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이컨택도 그럭저럭 잘 이뤄지고 있다. 

여전히 가끔씩 슬픈 눈을 하고는 혼자 구석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나는 아이의 마음과 기분을 헤아리느라 여념이 없지만 사소하게 기분을 물어봐주고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차가운 마음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그런 일이 생긴다. 

누군가를 질투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질투가 나는 일.

선택받고 싶지만 선택받지 못해 속상한 일. 

집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지만 내 마음만큼 채워지지 않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 자존심이 매우 상해 그런 척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 말이다.

그럴 때 어른이라고 부르는 우린 어떨까?

아이보다 두 배로 큰 키를 가진 어른은

이 감정을 두 배로 더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척을 할 뿐이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울음을 참는다.

그때 누군가가 내 기분을 물어준다면...

내 눈물에 기꺼이 당신의 눈물을 섞어 아픈 마음을 같이 마셔준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그렇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세상을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엄마는 요즘 너로 인해 세상을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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