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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Jan 23. 2020

둘째 아이의 신고식

정말 힘들었던 출산 끝에 집에 돌아왔다. 

4월 햇볕은 연한 레몬차처럼 싱그럽고 은은한 따듯함이 감돌았다. 

사흘 전 진통을 앓으며 지나갔던 똑같은 길. 그날은 보지 못했던 은은한 온기의 따듯한 봄이 나와 아기의 코를 간지럽혔다. 

집이 참 좋다. 

엄마는 일찌감치 우리 집에 오셔서 집을 청소하고 계셨고 동생도 집에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같이 와 있었다. 괜히 엄마가 고맙고 살갑다. 엄마는 내 멘토이자 삶의 교과서 같은 존재니까.

둘째 아이를 낳고 드는 낯선 마음에 삶의 교과서를 한번 더 열어보게 되는 마음이랄까. 

왔냐며 반기는 엄마가 너무 반갑고 왠지 짠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지 않았을까.


여하튼 벚꽃 이파리 같이 작고 연약한 아이를 익숙한 방안 침대에 누이고 나니 이제 제법 내가 아이 둘의 엄마라는 실감이 났다.

그날 이후로 우린 모든 게 많이 달라졌다. 

3일 만에 집에 왔을 뿐인데.

저 방에 작은 아이가 하나 있을 뿐인데.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은 모두 크게 달라졌다.

잔잔한 호숫가에 던진 자그마한 돌이 큰 파동을 일으키듯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도 큰 변화가 몰아닥쳤다. 

나는 바다의 물을 한통씩 떠먹으면서 바닷물이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해야 했다. 셋만 있을 때와는 다른 차원의 집안일이었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눈뜨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다 먹이면 트림시키고 그러다 토하면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쌓여있는 빨래를 돌려놓고 돌려져 있는 빨래를 널고 개고 바닥에 걸레질을 하면 아이는 또다시 깨고를 반복했고 그사이 사이 큰애 아침밥을 챙겨주고 등원시키고 하원 시키고 나면  간식 챙겨주고 손 씻기고 기저귀 갈아주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도시락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면 그 중간중간 작은아이가 깼다. 저녁은 아이를 업고 서서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연히 큰애에게 전보다 신경을 못쓰는 건 물론이고 나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이가 자는 시간을 틈타 아주 빠르게 화장실을 다녀오고 그러다 보니 출산 후 오로가 잘 배출되고 있는지 몸이 잘 회복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하루 종일 세수할 시간도 없어 지저분한 몰골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 와중에 남편은 정말 하나도 신경 쓰지 못했다.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업무가 얼마나 고됬는지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야근을 할 수가 없어서 해야 할 일을 점심시간을 줄여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집에 뛰어와서는 와이셔츠를 벗지도 못한 채 아이를 목욕시키고 재우고 나서야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시켜먹는 게 일쑤였다. 그러니 집에 일찍 오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나마 남편이 일찍 오지 않는 날엔 밤이 되면 눈물이 날정도로 고된 생활이었다. 그 사이 큰아이는 늘 바닥만 바라보았다. 늘 자기만 바라보던 엄마와 아빠는 몰아닥친 현실에 아등바등거렸고 그 모습을 본 아들은 자신을 좀 봐달라고 자신 있게 말도 못 했다. 늘 울음을 참고 있었고 그런 아이의 모습은 내게 더 큰 파도로 다가왔다. 


한 가족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우리 서로 각별해질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작은 아이의 신고식은 사실 잔혹할 만큼 힘겨웠다. 

하지만 견딜 수 있었던 건 서로의 따듯한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일찍 들어와 함께 하려는 남편의 배려가, 함부로 울고 떼쓰지 못하는 아이의 배려가 

그리고 그사이에서 내 역할을 열심히 하는 나의 배려가,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쑥쑥 성장하는 아이의 배려가 우리를 더욱더 단단하고 끈끈하게 만들었다. 

물론 큰 아이는 동생이 태어나고 크게 아팠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동안 우린 더 단단한 가족이 되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의 서로의 마음은 따듯한 마음 한 장 한 장이 모여 예쁜 꽃을 만들었다.

그 꽃은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우리 각자 예쁜 꽃잎이 되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가족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우리 서로 각별해질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둘째 아이는 우리의 마음을 영양분 삼아 보란 듯이 빠르게 성장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고 부모가 된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것. 배워나가는 것. 

그것이 엄마의 사명이고 내가 부모가 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멀었지만... 너무 힘들지만...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고 힘들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 말고도 다른 누군가를 이렇게 평생 사랑하면서

좀 더 인격적으로 나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닐까.

전 보다 인격이 더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강해 진건 분명하다.

여태껏 살아온 인생에서 제일 힘든 일을 꼽아 보라면 꼽을 수 있는 일.

육. 아.

지금 그걸 해내고 있는데  앞으로 뭔들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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