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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Jan 18. 2020

나는 그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너무 무서웠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지속되는 시간은 극한의 두려움에 몰아세웠다. 자정부터 시작된 진통은 서른 시간이 넘어갔고 덕분에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체력은 떨어졌고 고통의 강도는 세졌고 주기는 짧아졌다.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고 저항할 힘도 없었다. 그저 막혀오는 숨을 간신히 들어마시고 내쉬면서 고통에 순응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니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무표정한 얼굴의 간호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관장약을 주입했고 회음부 제모도 능숙하게 했다. 그리고 수시로 들어와 질속에 손가락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보았고 진행이 더디다며 손을 넣어 양수를 터뜨려주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무통주사를 맞았는데 진통을 하면서 몸을 잔뜩 구부려 척수에 바늘을 꽂는 일은 아주 괴로웠지만 출산과정에서 괴로운 축에 끼지도 못했다. 마지막 힘을 주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대변을 보듯 힘을 주라는데 정말 똥이라도 쌀까 봐 걱정이 되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워서 똥을 싸는 기분이었다. 고통이 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충격적인 일들을 이성적으로 견딜 수 없었을 것만 같았다. 출산을 마치고 나서야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해준 간호사들이 고마웠다. 나의 고통을 알아주고 수치스러웠던 순간들을 함께 해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고 얼마나 말했는지 모르겠다.

한 번의 경험이 있었던 나였기에 둘째를 출산할 때는 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출산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분만실에 들어가 다리를 벌리고 누웠다. 얼마나 아픈지 안다고 해서 덜 아픈 건 아니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알았고 얼마나 아플지 고통이 예상되었기에 처음보다는 충격적이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출산의 동반자로 더 이상 수치스러움을 느낄 상대가 아니었고 오히려 무심한 그들의 표정이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고 마음으로 몸으로 그들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둘째도 똑같이 자정부터 진통이 왔다. 진통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남편과 첫째 아이를 먼저 재우고는 달달한 누텔라 잼을 한 숟가락씩 퍼먹으며 혼자 짐볼을 껴안고 고통을 견뎠다. 그렇게 아침이 되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병원에 달려갔다. 극한의 고통이 느껴질 때면 첫째 아이처럼 예쁜 아이를 만날 거라며 참고 또 참았다. 극한 상황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 어떤 커다란 고통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고통을 참으니 참을만했다. 그렇게 신음 한번 없이 고통을 참았다. 

아홉 시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병원에 도착한 지 세 시간도 채 안되어 둘째를 출산했다. 첫째보다 빨리 끝난 진통과 출산. 그것만으로도 첫 번째에 비하면 이것은 고통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갓 태어난 아이를 가슴팍에 얹어보니 이런 기분이 영 낯설지 않았다. 두 번째라 그런지 매우 여유로웠고 충격과 당혹감을 추스를 시간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캥거루 케어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갓 나온 아이와 스킨십을 하며 남편과 나는 행복감에 웃고 또 웃었다. 다행히 회음부도 절개하지 않아 후처치도 엄청 빠르게 이뤄졌다. 

 첫 출산 때에도 그랬듯 출산 직후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이동할 때는 휠체어를 태워주셨는데 출산 직후 얼마나 몸이 가뿐한지 사실 휠체어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뭔가 엄마가 된 축복 속의 작은 의식같이 느껴졌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은 마치 개선장군의 금의환향 꽃가마를 탄 기분이었다. 이유 없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병실에 도착하니 병원에서는 축하 케이크와 카드를 선물해주었다. 뭔가 큰 일을 치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축하 케이크를 한입 먹으니 첫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의 기억과 함께 아이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아름다운 영화 한 편처럼 지나갔다. 또 그렇게 사랑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출산을 했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4월 10일 그날 어떻게 하루가 흘렀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태어났고 터질 것 같았던 무거운 배는 가뿐해졌고 어쩌다 보니 가사와 육아에서도 며칠 해방되어 자유의 몸의 된 것 같았다. 마냥 새로움에 들떠 핸드폰을 열어 온 동네 출산소식을 알렸다. 


 저녁시간이 되자 첫째 아이가 동생을 보러 왔고 넷이 된 우리 가족은 행복함에 어쩔 줄 몰랐다. 짧은 면회가 끝나고 아이를 케어해줄 사람이 없어 남편은 아이와 함께 집에 갔고 나는 혼자 병실에 남겨졌다. 아이와 남편을 배웅하고 뒤돌아서면서 내가 아이 둘의 엄마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져 밤을 보낸 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슬펐다. 나 없이 아빠와 잠을 자야 하는 아이가 짠하고 또 짠하게만 느껴졌다. 오로지 온 맘 다해 사랑하던 마음을 이제 조금 나눠야 해서 그랬는지 이유 없이 큰아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날 개선장군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무도 없는 병실에 홀로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꺽꺽대고 울었다. 출산 직후 병실에 혼자 밤을 지내는 게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런 서운함은 사치였다. 

그날 밤 첫째 역시 나를 찾으며 밤새 울었고 그 눈물은 다시 내 마음으로 흘러들어 나 역시 귀에 눈물이 가득 차도록 울었다. 그러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수유 콜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장군처럼 비장하게 가운을 걸쳐 입고 허리띠를 힘 있게 졸라 매고는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이제 아이 둘의 엄마로서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는 대장부같이 걸어서 수유를 다녀왔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나는 진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장군 같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알았다. 밤새 누가 나를 잔뜩 때린 것처럼 온몸은 아팠고 벌어진 골반과 꼬리뼈는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게 했다. 하지만 수유를 거를 수 없었고 밤새 울고 엄마 없이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에 갔을 첫째 아이 생각에 내 아픔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하룻밤만 더 자면 집에 가니까 울지 말자고 마음을 다 잡고 아침을 맞이했건만 아침메뉴에 나온 김을 보고 는 또 마음이 무너졌다. 김에 밥을 싸주면 야무지게 받아먹는 아이 생각에 목이 메어 밥을 먹을 수 없었지만 수유부로서 작은 아이를 위해 잘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눈물에 김과 밥을 말아 잔뜩 먹었다. 

 

 엄마들은 그렇다. 늘 자신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엄마들은 그렇게 극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가 우선이다. 병원에서 그런 엄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출산으로 헝클어진 몰골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큰아이를 안심시키며 애틋하게 이야기하는 엄마, 링거를 달고서도 갓난아이를 보러 신생아실에 달려오는 엄마, 그리고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어린이집은 잘 다녀왔는지 남편에게 묻는 엄마, 그런 엄마들을 볼 때 왠지 더 따듯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모두들 자신에게 주어진 아이들을 위해 전 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하고 조금 더 여유로워져야 하고 조금 더 강해져야 하고 조금 더 따듯해지고 조금 더 깊어져야 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랑으로 지켜야 할 것이 또 하나 늘었구나...'

나 또한 이렇게 아이 둘의 엄마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단단히 준비된 두 아이의 엄마처럼... 어딘가 모르게 숨겨져 있던 버튼이 눌린 것처럼 말이다.


 첫째 아이가 밟혀 결국 조리원을 포기하고 집에 왔다. 아이들과 떨어져 조리원 침대에서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박 3일의 눈물의 입원을 끝내고 돌아와 나는 기꺼이 현실 엄마가 되어 아침마다 첫째 아이와 등원 전쟁을 하고 고된 새벽 수유를 시작했다.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연약한 내 아가들을 지키는 장군 같은 엄마가 될 거라고 다짐하면서 그날부터 아이 둘 엄마의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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