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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Apr 08. 2020

엄마가 되고 달라진 것

"엄마가 되고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뭐야?"

출산을 마치고 처음 외출을 한 나에게 친구는 물었다.

"많이 달라졌는데... 내가 이 썰을 풀면 너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집에 돌아왔지만 그 질문은 물 묻은 신발로 밟은 기다란 휴지처럼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그날 밤 일기장을 열어 '내 인생이 아주 많이 달라졌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많은 게 달라지듯 그 사랑은 내 마음과 몸을 변화시키고 우주를 변화시켰지.'라고 말했어야 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 뭘까. 엄마가 되고 이 코딱지만 한 아이에게 갖는 이 엄청난 감정이 도대체 뭘까.

처음 느껴보는 진한, 아니 이 찐~~ 한 감정. 

여태 알고 있었던 사랑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마음.

마치 배추가 김치가 되고 겉절이가 묵은지가 되는 것처럼 예상할 수 없는 맛이 나는 마음이었다. 


겉절이 시절, 나름 뜨거웠던 남편과의 사랑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사랑은 함께 있어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었고 나눠도 나눠도 또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하루에 열두 번은 더 심장이 두근거렸고 주머니 속에 감춰놓은 사탕처럼 자꾸만 꺼내보고 싶었고 그만큼 너무 맛있고 달콤했다. 하지만 언제 쉴까 걱정되는 겉절이 같이 늘 긴장되고 애타고 예민했다. 김치가 특별히 식탁의 주인공이 되는 겉절이처럼 돌이켜보면 솔직히 그때는 '사랑의 대상'보다도 내가 느끼고 있는 '사랑의 감정'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부터 사랑은 더 이상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대상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

육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

존재는 변해도 그 마음은 절대적이고 지속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희로애락을 넘어선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의 대상이었으며 단순히 가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엄마, 돌아가신 아빠 그리고 형제들을 비롯해 내 자식들에게 까지 점점 확장되었다. 서로가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있던 인연들로 말이다.

예전엔 사랑이 주고받을 수 있는 무언가였다면 이젠 하루하루 함께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쉽게 주고받을 수 없는 감정이었고 실체가 없는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의심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사랑의 시그널은 사방에서 일어났다.

봄날 따듯한 햇살처럼 은은하게 우리 사이에 감돌았고 공기처럼 사방에 떠다녀서 숨을 쉬면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이란 지각할 수 없는 우주 같아서 함부로 가늠할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대화를 나누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마음이었다.

모든 일상은 우리의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며 삶의 이유가 우리가 되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깜박이는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앉아있고 서있는 동안, 그 사이에서 마주하는 것이 타성에 젖은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것임을 아는 순간 드는 묘하고 알 수 없는 깊고 어려운 마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고 흔들리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뚜렷한 마음이었고 그 마음 중에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었다.

그렇게 마음은 더 커지고 복잡해졌지만 오히려 표현하는 방법은 너무 쉬웠다.

서로 깜박이는 눈 사이로 따듯한 온기를 보내거나 그저 눈가에 지는 엷은 주름 사이로 퍼지는 미소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날들에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사랑했냐 물으면

지금 이 글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사랑을 진하게 하는 적은 처음이야. 엄마의 우주는 지금 너희들로 가득 차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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