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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Feb 14. 2020

엄마 마음 좀 알아줄래

 아이가 동생을 받아들이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쏟은 눈물은 내 마음 한구석에 가득 차 있었고 울음소리는 가시가 되어 마음속을 헤집어 놓았다. 매일매일 아이가 쏟아내는 감정들은 눅눅한 장롱 속 방습제처럼 아무도 모르게 내 가슴 한편에 모여있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나는 둘째 아이를 업고 열심히 저녁 준비를 했고 부엌과 식탁 사이의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수백 미터쯤 걸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저녁식사가 차려졌다. 간신히 마지막 물을 떠 오고 그 긴 거리를 완주하고는 자리에 앉아 다 같이 밥을 먹는가 싶었는데 아이는 어김없이 밥을 먹지 않고 딴짓을 했다. 원래 잘 먹는 아이였는데 동생이 생긴 후로는 음식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잘 먹지 않아도, 한 숟갈만 먹더라도 갓 한 밥에 고기반찬을 먹이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다. 한 숟갈을 먹고 그만 먹을지라도 그 한 숟갈에 온갖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갔으면 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마음을 알고 맛있게 먹어줄까 싶어서, 혹은 그날은 먹고 싶은 마음이 우연히 들어서 먹지나 않을까 먹지 않고 버릴지라도 늘 똑같이 정성스럽게 밥을 차리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그래서 난 오늘 저녁도 열과 성을 다해 저녁을 준비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퍼놓은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모두 차갑게 식어버린 다음에야 맛이 없다며 먹지 않을 거고 나는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수저에 올린 밥과 반찬, 그리고 그러느라 반찬과 밥이 섞인 이 음식을 아이 입 대신 쓰레기봉투에 넣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밥이, 이 정성이 아이를 자라게 하고 아이를 살게 하고 아이를 존재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다.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밥을 차렸는데 아이는 전혀 관심도 없고 장난만 치고 있다. 

아이를 보니 서글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걱정도 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내 밥술에 얹어진다.

한술 떠먹어보니 맛있지만 답답하다.


 그런 마음으로 꾸역꾸역 반 그릇쯤 먹었나...

갑자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편이 한다. 그것도 소리를 질러가면서...

"아오!!! 밥 좀먹어!!!! 너 밥 안 먹을 거야?!!!! 안 먹으면 다 치워버릴 거야!!!!"

(아니, 내가 할 말을 왜 당신이 해? 내가 낼 화를 왜 당신이 내?)

하루 종일 아이를 보며 몇 번이고 참았던 화를 내가 아닌 남편이 낸다. 하루 종일 얼마나 참았는데... 꾹꾹 눌렀던 마음이 폭발해 엉뚱하게 남편에게 쏘아졌다.  

 "소리 좀 지르지 마!!!!! 소리 좀 지르지 말라고. 나는 매일매일 잘 참고 있는데. 왜 당신은 퇴근하고 와서 두세 시간 함께하면서 그걸 못 참아? 애가 이런 게 하루 이틀이야? 왜 별것도 아닌 일에 자꾸 소리를 질러!!! 난 참고 있잖아. 내가 하루 종일 애들에게 소리만 지르면 당신 좋겠어!!!!!" 

온 얼굴로 모든 감정을 토했다. 말을 심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몸속에 있는 장기가 튀어나올듯한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거의 울부짖었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 아니다. 모든 일이 맘에 들지 않아 스트레스가 차오르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난 오늘 하루 종일 애가 타고 화가 나고 걱정이 되었다가 아이가 조금 웃어 보이면 괜찮아졌다가 다시 절망하며 롤러코스터를 몇 번 탔는지 모르겠다. 멀미가 난다. 안 괜찮다. 난 지금 어쩌면 물이 꽉 차 버린 방습제처럼 마음에 더 이상 습기를 머금을 여력이 없는 걸 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순간 당황해서 밥을 먹다 숟가락을 던지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마음을 모두 토해내 버린 나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고함으로 식어버린 음식들 위에 날리는 엄마의 울분을 난생 처음 들은 아이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이를 달래줄 여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 책에서는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내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리 지르고는 방에 문을 닫고 들어와 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마음으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모두 소리를 지른 셈이었다. 


 식탁 위에는 내가 지른 소리가 계속 윙윙 울렸고 나는 그곳을 피해 방으로 들어왔다. 가라앉아있던 먼지들이 부유하듯 마음속에는 감당하고 있던 인내심들이 폴폴 날아다녔다. 멀뚱하게 앉아서 소란스러운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낙서를 하고 있으니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엄마, 기분 괜찮아? 내가 뽀뽀해줄까? 소리 지르면은~ 나쁜 사람이지?"

아이는 내가 늘 자기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달래주었다. 

내가 소리 질렀을 때 엄청 무서웠을 텐데... 아이와 엄마의 역할이 뒤바뀐 상황에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이의 말 한마디에 마음에 쌓여있던 분노와 눈물이 증발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우습게도 그 순간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곧 엉뚱하게 질러버린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맞아. 소리 질러서 미안해. 아빠가 먼저 소리 질러서 엄마가 화가 많이 났어."

(사실 너 때문에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어. 뽀뽀는 됐고 밥이나 좀 먹으면 어떨까...)

 "그래도 성현이가 엄마한테 뽀뽀해줘서 기분이 괜찮아진 것 같아."

(소리 지르고 나니 세상 시원하구나)

아이와 뽀뽀를 하며 하하 호호하는 얘기에 눈치 없이 남편이 들어왔다.

 "마누라, 기운이 넘쳐. 소리 지르는 거 보니 장난 아니네."

(여보, 밉지만 사랑한다.)


 그렇게 그 날 모든 걸 쏟아버리고 나니 조금 괜찮아졌다. 그리고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엄마, 기분 괜찮아?"

아이가 나의 마음을 조금 알아주는 것 같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소한 기분을 물어봐주는 것이 대단한 사랑처럼 느껴졌다. 정말 알고 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고 나의 마음을 물어보려고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말은 대단한 사랑처럼 느끼게 하는 말임에 틀림없었다. 

알아준다는 것.  

공감해준다는 것. 그것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서로의 힘든 점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건 분명하다. 


엄마는 힘이 든다. 최선을 다해 내는 마음을 아무도 몰라줘서 힘이 든다. 

자식들은 절대 부모가 되기 전 까지는 엄마의 마음을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알 줄 아는 나이가 되면 서로 마음을 알아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엄마 마음을 몰라준 죄에 대한 벌처럼...


생각해보니 몰라도 되겠다. 

엄마 마음 몰라도 되니 밥 좀 잘 먹자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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