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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ul 20. 201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써로게이트>

조나단 모스토우 / 2009

미래. 사람들은 모두 누워서 산다. 그들의 연약한 육체를 대신하는 써로게이트가 있기 때문이다. 써로게이트는 로봇이기 때문에 늙지도 살찌지도 않는다. 지치지도 않는다. 인간보다 월등한 육체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부서지면 고치거나 다른 써로게이트를 사면 된다. 덕분에 ‘나’는 방 안에 편안하게 누워서 살아갈 수 있다. 거리에는 엄청나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다닌다. 그들은 모두 써로게이트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구도를, 스스로를 기계에 종속시켜버리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기계와 인간의 전쟁은 SF 영화에 있어서 영원불멸의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써로게이트’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강해지고 싶은 욕망,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 편하게 쉬고 싶은 욕망, 이 모든 것이 써로게이트를 통해 해결된다. 써로게이트만 있다면 사람들은 성형을 하거나 미친 듯이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외모를 가꿀 필요가 없다. 고단하고 위험한 일들로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늙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우주로 날아가기보다는 써로게이트를 소유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기계적’인 것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으로 극복한다는 단순하고 유아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인공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막연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기계적인 것, 인공적인 것을 단순하게 인간적인 것의 반대편에 위치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안경을 쓰거나 렌즈를 사용하고, 부서진 치아를 뽑고 인공 치아를 심는다. 보청기를 쓰거나 보정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인간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도 과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적인 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없을 만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미래에는 조금 더 복잡한 기계로 조금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만큼의 도움을, 어떤 기계로부터 받을 때 우리는 인간적이지 못한 상태가 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한다. 장기 이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 사람도 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줄인다. 이렇게 과학 기술에 의존한 삶은 인간적이지 못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로게이트라는 대역으로 살아가는 미래의 삶은 분명히, 우리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옛날 사람들이 안경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를, 더 이상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을 고민했어야 했다. 정답을 찾을 수 없더라도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 영화는 어느 만큼 자기의 몫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메트릭스>가 수많은 <애니 메트릭스>의 뿌리가 된 것처럼 ‘써로게이트’라는 소재 자체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화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하다. 인간을, 인간이 가진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기술은 인간에게 보다 더 인간다운 삶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인간다움을 잃게 하는 것인가. 우리들의 모습은 써로게이트라는 대역을 가진 영화 속 주인공들과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른가.


엄청나게 많은 SF 영화들이 만들어진다. 발전한 과학 기술이 인간의 제어를 벗어나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과 대립하는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가 많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오해하고 있다. 과학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과학 기술 자체가 특정 가치를 지향하는 방향성을 띨 수는 없다. 기계나 기술이 인간을 괴롭히려는 의지를 가질 이유도 없다. 기계가 인간을 괴롭히게 된다면 그 시작은 분명히 인간일 것이고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역시 인간일 것이다.

두려워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인간. 걸음을 걷는 동안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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