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인간의 본능일까. 아이를 키우며 여지껏 손찌검을 한 적이 없는데, 아이는 점점 크며 자기 뜻이 생기고 고집이 생겨나면서부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했다.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엄마와 아빠를 때리거나, 할퀴거나, 꼬집거나, 긁어내렸다. 특히 더 놀고 싶은 걸 그만 놀게 할 때, 자리를 뜨려고 몸을 안아 일으키면 두 손의 손톱을 세워 얼굴을 얼른 긁었다. 애 아빠는 그렇게 여러번 얼굴에 상처가 난 채로 출근했고, 나는 그런 고양이같은 행동을 어디서 배운건지 의아했다. 우리는 폭력을 보인 적이 없으니, 이런 때 모든 원망은 어린이집으로 돌린다. 애를 맡아주니 내가 일도 하고 숨도 쉴 수 있지만, 그 어린이집에서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나쁜 것까찌 배워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못하게 막고 혼내고 타이르고 가르쳐도, 아이의 감정은 뇌를 거치지 않는 듯, 순간적으로 반사적으로 행동으로 나왔다. 흥분한 아이의 폭력을 감당하고 있다보면 내가 사람을 키우는 건지 원숭이나 개를 키우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상황이 좀 진정되면 아이에게 꼭 '왜그랬어?' 하고 이유를 묻는다. 교육을 위해서이기 전에, 내가 궁금해서다. 이 아이는 어떤 때 화가 나는 지 궁금하다. 그럼 아이는 활짝 웃고있다가도 바로 고개를 떨구며 '풀 죽은' 표정으로 쭈뼛쭈뼛 중얼거린다.
"화가 나서 그랬어요..."
왜 화가 났어? 아빠한테 화났어? 하면 "응" 하며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머니한테 인사하라고 해서 화가 났어요."
아이는 누구를 닮았는지(누굴 닮긴 나를 닮았겠지) 억지로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때 불같이 화를 낸다. 웃으며 잘 놀다가도 헐크로 돌변해 원숭이나 개로 변신해 마구 달려든다. 화가 날 땐 '나 화가 났어!'하고 말하고, 그래도 기분이 안 좋으면 "기분이 안 좋아, 화가 났어!"하고 소리를 치자고 해도 지금 아이에겐 역부족이다. 지금 나조차도 화가 나면 나를 어쩌지 못하는데, 엄마인 나도 못하면서 아이에게 이걸 당부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종종 아이 아빠와 그날 있던 일을 공유한다. 그래봤자 99%는 아이 얘기다. 오늘 그 일을 예전에 있던 일과 결부해 분석하고, 곱씹기도 한다. 크느라 그런 걸 거예요- 라고 항상 같은 원인으로 마무리하고 서로의 불안을 잠식하고 나면 편안한 마음이 된다. 오늘도 우리가 아이에 대해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아직 어려서 그런 걸 거이며, 자꾸 다독이고 가르치면 상당 부분이 앞으로 좋아질 거란 희망을 갖는다. 신생아 때, 돌 즈음에, 두 돌 즈음에 걱정하던 걸 지금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걸 보라. 그래.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좋아질 거란 희망인 듯 하다.
그런 시간 중 하루는 남편이 의미있는 말을 의미없게 던졌다. 형사인 남편은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별의별' 인간을 보고, 대하고, 조사하고, 가두고, 연행하는데. 그러다 보니 기자인 나보다 훨씬 많은 '인간쓰레기 경험치'를 갖고 있다. 그 스스로 자신의 업을 정의하길 '이 사회의 하수 처리장'이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매일 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되고, 짜증나는 지 알겠다. 경찰서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사건들이, 말 그대로 '밑도끝도 없이', '몰려'든다. 소위 '뽀대'나고 그럴 듯한 일은 경제팀이나 마약수사팀, 강력팀이 골라가고, 조심스러운 건 여청팀이 가져간다. 자동차 관련된 건 교통사고처리반이 삭 걸러간다. 결국 남편이 속한 형사팀이 감당해야 할 사건들은 뽀대도 나지 않고, 그럴 듯 하지도 않다. 뉴스에서 다루지도 않을 만큼 소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과 시간과 발품을 투자해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다. 이따금 아줌마가 자기 딸 남자친구를 주거침입죄로 고소하거나, 가수 ㅇㅇ이 호텔 화장실에서 발견됐다고 신고되거나, 연예인 ㅇㅇㅇ가 일반인을 스토커로 신고하거나, 2개월 된 자기 아이를 안고 한강에 뛰어들었다 아이만 죽고 자기는 살아나온 여성이 체포돼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밖에 대부분의 경우는 택시비 7800원을 안 내 택시기사에게 멱살잡혀 오는 주취자나, 칼 들고 싸우다 순경에게 잡혀오는 중국인들 사건이 대부분이다. 아. 가장 최근 기억 남는 사건은 도박사건이다. 남편이 야간당직 때 이걸로 아주 고생을 했다. 단체로 숨어서 도박하다 신고가 들어왔는데, 사건 하나에 7명이 연루돼있어 각각 조사받는라 밤 1시가 되도록 저녁밥도 못먹고 매달렸는데, 간신히 마무리하고 나니, 8명이 또 도박으로 체포되어 들어왔더랜다. 그날 당직에는 잠 한숨을 못자고 커피만 대여섯 잔을 내리 마시고 피골이 상접해 아침 11시에 퇴근했다. 퇴근하고서도 커피 후유증으로 잠을 못자 애를 먹었다는. 슬픈. 형사 이야기.
샛길로 샌 이야기를 다시 잡아와서, 의미없게 던진 의미있는 말은 이거다. "왜 때렸냐고 물어보면 '화 나서 때렸다'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그런 사람들 보면 '이 사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화 났을 때 때리면 안된다는 교육을 못받고 지금까지 그냥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 ㅇㅇ이 잘 키워야겠구나 다짐하게 돼요."
우리 모두는 어린시절을 지나왔다. 내가 신뢰하는 소아정신과의사인 서천석 박사는 소아정신과를 택한 이유로 '사람들의 정신적 문제 대부분이 어린시절 겪은 일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자, 어릴 때 마음과 정신을 잘 도와주면 어른들이 만드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잘 도와주고 해결해주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잘 성장한 어른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 문제 상당부분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인사이트.
나는 당장 소아정신과의사가 될 수가 없고, 그래서 미래에 우리 사회문제까지 해결할 상당히 중요한 단초를 지금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저절로 고쳐지는 건 없다'는 걸 우리모두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른이 되어 저절로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아이가 개월수를 거듭하며 저절로 고쳐진 건 없다. 내가, 아빠가, 외갓집 식구들이,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이 누차 지적하고 타이르고, 붇돋아주며 아이는 '좋아졌다'. 길을 지나가며 손으로 눈으로 인사한 모르는 어른들, '아이구 예뻐라' 한마디 던져주는 어르신들의 칭찬과 따스한 눈빛이 쌓이고 쌓여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변화할 힘을 준거다. 내가 '저절로 좋아질 거야'라고 믿었던 건, 사실 아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대전제로 깔고 있었던 거다. 그러므로 화가 난다고 바로 주먹이 나가지 않도록, 그 행동이 성격이 되기 전에 반복하고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이 점을 잊어서 안된다.
오늘도 다짐한다. 우리 아이를 문제있는 어른으로 키우지 않겠다고. 아직 어린 시절에 있는 우리 아이를 잘 키우면, 적어도 다른 사람과의 문제가 생겼을 때 보다 잘 해결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겠지. 화가 난다고 주먹이 먼저 나가지 않는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나부터, 지금부터, 오늘부터 기분이 상했다고 당장 화부터 내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