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둘에도 여전히, "내 맘대로 하고싶어어어!"

아이는 시골에서 땅만 파며 30여분을 혼자 놀고, 나는 시소에앉아 졸고.

by bbulddae

아이에게 자주 읽어주던 그림책 중 '내 맘대로 하고 싶어'가 있다. 주인공이 온 종일 식구들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청개구리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다 나중에 엄마 품에 안겨 와앙 울음을 터트리는 내용이다. 엄마, 할아버지, 오빠, 이웃집 언니, 고양이에게 심술을 부리다 모두 자기를 외면하자 아이는 다급해져서 소리지른다.


"송이는 나쁜 애 아냐,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싶어. 내 맘대로 하고 싶어!!!"


아이의 행동이 아무리 제멋대로여도 무조건 혼내기보다 그 마음을 먼저 읽어주라는 메시지같은데, 아이가 이 책을 즐겨보던 돌에서 두 돌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나도. 그러나 세 돌이 가까워지는 요즘은 이게 참 쉽지 않다. 아직 사람사는 사회의 규칙은 다 이해하지 못하고 몸에 익지 않았는데 신체조건은 날로 좋아지고 재밌는게 늘어나니, 보호자가 이 작은 아이를 컨트롤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책에 나오는 송이 엄마처럼 "송이 마음이 크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래. 곧 송이 마음도 착해질 거래"하며 아이를 끌어안고 행복하게 미소짓기보다는 고함과 눈흘김이 내면에서 먼저 터져나온다. 아이는 나쁜 의도에서가 아닌, 그저 맘대로 하고싶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뿐이니 내가 백번을 참고 기다려줘야 하지만. 그것 참...한숨만 나온다.


6일이나 되는 연휴가 언제 지나갔나 싶게 돌아보니 하고자 계획한 일 중 제대로 한 건 거실 정리 하나 뿐이다. 친정에 가서 음식을 노나먹고, 왕복 10시간 걸려 시댁에 오가며 시어머님께 아이를 보여드리고 원치도 않는 음식을 잔뜩 싸온 거 말고는 말이다. 아이가 자라며 늘어나는 장난감이 감당이 안되어 수납장을 마련해놓고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참이다. 가구 늘리는 게 싫어 버티고 버텼는데, 요즘은 또 당근이 어쩜 그리 좋은 물건을 헐값에 턱턱 내어놓는지, 아이의 욕망과 부모로서의 욕망이 만나 집안은 어느새 새것 헌것 얻어온 것 사온 것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종류와 크기의 자동차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그런 거실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것 만으로 스트레스가 차올랐다. 아이 있는 집은 어쩔 수 없다지만, 가뜩이나 오래된 집에 색색깔, 통일성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마구 엉켜 이젠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


고르고 골라 가장 단순한 수납장을 시켜 설치한 게 더운 날이었는데, 이제 찬바람이 부는 걸 보니 나는 그동안 보낸 몇 번의 주말에도 장난감 정리에 실패해왔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다 싶었던 추석연휴. 정신 차리고 보니 연휴의 마지막 날 오후 1시. 아이가 낮잠에 들자 나는 안방문을 조심스레 꼭 닫고 나와 있는 장난감을 모두 펼쳐놓았다. 그리고 재질 별로 분류해 수납장에 넣기 시작했다. 아무리 참아주려 해도 봐줄 수 없는, 분류할 수 없는 잡동사니는 과감히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재활용 봉지 두개가 가득 찼고, 쓰레기 봉투 10리터짜리가 하나 나왔다. 그리고 내친 김에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수첩과 책도 한껏 위로위로 밀어올렸다. 아래 3칸을 비워 아이의 책을 차례대로 꽂아 시간은 오후 6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이미 아이는 낮잠에서 깨서 TV가 있는 거실방에서 간식을 먹고 있고, 아이 아빠는 저녁 겸 자신의 요리 로망을 뽐내며 약밥을 만들고 있었다.(웬 약밥...;;;) 청소기까지 돌리고 손을 씻자 거실이 한껏 넓어진 게 눈에 들어왔다. 와...근 몇년 사이 이렇게 뿌듯한 적이 있을까. 거실 두어평이 더 넓어진 듯한 기분에 성취감이 만땅 차올랐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새 장난감이 두렵지 않았다. 수납장 두 칸을 비워놓았으니, 당분간 추가될 새 로봇도 감당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밤이 되어서까지도 뿌듯함과 설렘에 잠이 오지않았다. 기실, 아침에 아이와 공원에 가며 산 이마트24 커피때문이었지만(이거 진짜 카페인 최강이다. 한 모금만 마실걸. 나는 새벽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정말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잠이 오지 않는 와중에도 거실을 들락이며 깨끗해진 바닥과 물건이 차있지 않고 깔끔하게 드러난 모서리를 바라보며 기분이가 좋아졌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반대로, 그저 집안 정리 하나 못했을 뿐인데 나는 왜 늘 마음 한켠이 찝찝하고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본질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다. 내가 어지르고 싶을 때 어지르고, 치우고 싶을 때 치울 수 있다면 그 많은 장난감이 허구헌날 쌓여있어도 전혀 괘념치 않았을 거다. 일을 시작하기 전엔 책상 정리부터 하는 내 성향 탓에 정리와 청소가 내 의무가 되어버렸지만, 나도 편하게 있고싶을 땐 정리 안된 공간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게 되었다.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썼던 '웨이터는 손님을, 주방장은 웨이터를 증오하듯' 이란 글처럼 말이다. 내가 있는 공간을 내 맘대로 해놓고 보니 그렇게 마음이 흡족할 수 없었다.


하고싶은 걸 하려고, 또는 하기 싫은 걸 안 하려고 있는 힘껏 떼를 쓰는 35개월 아이처럼, 마흔둘이나 된 나도 여전히 내 맘대로 하고 싶다, 모든 걸. 내 눈에 보이는 내귀에 들리는 내가 느끼는 것들을 가능한, 최대한, 오랫동안 내 맘대로 하고 싶다. 고등학고 국사시간에 권력의 기본 특성이 집중, 강화, 유지라고 배웠는데, 나의 이 성향도 권려욕의 일종 아닐까. 모든 권력(지배력)이 나에게 집중되도록 애쓰고, 집중되고 나면 더 많은 범위까지 강화하려 하고, 강화된 권력(지배력)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습성. 나의 지배욕이 아이에게 과하게 미칠까 걱정이다. 수 많은 권력자가 결국 권력의 특성을 쫓다 쇄락하지 않았나. 나의 지배력이 내 주변 사람들을 다치지 않도록 오늘도 도를 닦고 인내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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