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이 책을 집어들었을까.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무얼까 정체가.
그저 우연일수도, 혹은 필연일수도 있겠다.
어지간해서는
주위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이 사는 방식으로 똑같이,
그렇게 하루하루 웃어넘기며 살고 있을텐데.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을수도,
너무 '시궁창'일수도,
혹은 어떤 큰 계기가 당신의 머리를 야구배트로 후려친 것처럼
당신의 세상을 찌그러뜨렸을수도 있겠다.
아니면 주위 사람들과 서로서로
“그래, 다 이렇게 사는데 뭐” 하며
가까스로 외면하고 위안하며 버티다가
이제는 이 지리멸렬하고 미래에 기대할 게 없는
쳇바퀴같은 날들이 너무 지겨워져서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계기이든, 어떤 상황이든, 나는 당신을 환영한다.
나는 당신과 함께 '우리'이고 싶고 당신을 돕고 싶다.
우연이었다한들,
우주가 생겨난 것도 빅뱅이라는 '우연'에 불과했음을 생각해보면
나는 여전히 이렇게 종이 쪼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당신과 만난 게
가슴이 뛴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조건은 있다.
나라고 무조건 내 책을 펼친 모든 사람들을 전부 환영하는 건 아니다.
그건 내가 사람을 가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번지수를 잘못 찾아와 서로 오해한 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면
당신도 실망, 나도 실망이기 때문이다.
조건은
세가지다.
이 책은
내가 내거는 세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팔 매(賣), 봄 춘(春).
나의 봄을 파는 사람이어야 한다. (몸이 아니다. 봄이다.)
즉, 생계를 위해 시간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일 것.
혹은 지금 그러고 있지 않더라도,
머지 않아 나의 여생 중 가장 젊은날을,
나의 남은 인생 중 가장 풋풋한 봄날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 될 것.
(사랑하는 이가 당신 몫까지 짊어지고 봄을 팔고 있다면,
이 책을 당신이 읽기 전에 그에게 먼저 건네주길 바란다.)
내 생의 봄날을 팔고 있지만,
내 안에 잠들어있는 최고의 내모습이 드러나지도,
타고난 나의 예술성과 잠재력을 전혀 발휘되지도 못하고 있을 것.
즉, 그냥 억지로 일하고 소리없이 숨죽인 채 눈치보며 살고 있을 것.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지내는 게 지상목표인 것처럼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을 것.
매춘을 하며 질식해가는 이 상황이, 진절머리가 날 것.
이대로 죽을 때까지 수십년 더 버티는 걸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질 것.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 빠져 살다 가지 않게
그를 지켜내고 싶을 것.
도저히 이대로만 살다가 죽는 건 용납이 안 돼서,
어떻게든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을 것.
아니,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냐, 저걸 세가지 다 꼭 만족해야만 이 책을 볼 수 있다는거냐,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 대답은,
그렇다.
이 책은 저 세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다.
그러니 만약 세가지 조건 중 두가지만 충족한다거나 한다면,
이 책은 과감히 집어던져라.
이 책은 아직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