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아무리 피곤해도 밤엔 죽어도 잠들지 않는, 우리가 망하는 이유
앞서 말했듯이,
지겹도록 평범한 우리 인생을
새롭게 리셋하기 위해
잠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치명적인 중요성 때문에,
첫번째 지침(생각중독)을 제외하면
잠은 가장 중요한 지침이다.
잠을 잘 자야만,
깨어있는 시간의, 아니 삶 전체의 질을
전혀 다른 차원의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
활기찬 에너지와 깊은 수준의 영감을
삶으로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잠에 들지 않는다.
우리의 밤은 언제나 불이 켜져 있다.
잠은 우리에게 언제나,
마지못해 청하는 못마땅한 녀석일 뿐이다.
실제로,
모든 선진국 성인들 중 약 3분의 2는
하루 권장수면시간인 8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고 한다.
직장인은 더욱 심각하다.
2020년 '사람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74%는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하루 평균수면시간은 6시간에 불과하다.
이는 매일 2시간씩 수면부채가 쌓인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수면시간을 줄이는
유일무이한 종이다.
하지만 잠에 관해서만큼은,
인간적일 필요가 없다.
아니, 인간적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건강검진 결과표에 자꾸
이런저런 문제들이 나타난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치솟고,
어떤 때는 염증수치나 간수치가 높고,
신장에 물혹도 생겼다고 했다.
폐활량도 저하되었고, 안압도 올랐단다.
이상했다.
나는 술담배도 하지 않고,
운동을 좋아라 하고,
음식도 가급적 해서 먹는데,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이 생기는걸까.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그나마
의심이 갔던 부분은 단 하나,
잠이었다.
사실 나는 언제나,
자는 게 싫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을 적게 자기로 유명했다.
군대생활을 할 때 내 룸메이트였던 형은
내가 허구한날 밤새는 걸 보고
그러다가 너 죽을지도 모른다, 진심이야
고 말하곤 했다.
나는 이따금씩
한번에 이틀씩 밤을 새기도 했고,
하루에 많아야 4~5시간 정도를 자는 생활을
20대 때는 정말 거의 7,8년 이상
지속했던 것 같다.
어렸으니까,
몸이 버텨냈다.
하루 정도 밤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언제나 하고싶은 게 많았던 나는
자주 밤을 새거나 2,3시간만 자곤 했다.
결국 나는,
이유 모를 온갖 자가면역질환과
피검사 수치 이상, 이명, 고지혈증 등
온갖 것들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몸으로도 만성피로와 체력저하,
무기력증 등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건강악화 때문에
마지못해 잠을 청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잠을 자야 한다는 걸.
몸 컨디션이 회복되는 걸 보며,
반대로 잠을 계속 안 자다간 큰일나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잠을 자느라
대략 100년 중 30년 이상을 할애한다.
진화적으로 보면, 희안한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잠을 자는 일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맹수나 적으로부터 날 지킬 수 없는
위험천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고,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를 구할 수도 없다.
무리와 함께 어떤 활동을 할 수도,
지켜야할 가족을 보호할수도 없다.
도대체 이런 결점투성이인 것 같은 잠을
오랜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여전히 유지해오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사실 잠은,
저런 엄청난 단점들을 상쇄하고 남을만큼
인생의 3분의 1을 할당받아도 될만큼
엄청난 가치와 힘을 지니고 있다.
현대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할 수 없는 것을
잠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다.
가령, 나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후,
즉 취직을 한 후에
큰 고민 중 하나가 이거였다.
퇴근하고 나면 너무 진이 빠져서, 날 위한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학생일 때는 잘 몰랐지만,
내 힘으로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보니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치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내 육체적 에너지와 정서적 자원은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나면
거의 다 소진되어버리곤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내 인생과 삶을 위해 무언가를 밀도있게 한다는 건
나에겐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보였다.
물론 그럴수록 이악물고 더욱 더
열심히 애를 쓰긴 했으나,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계약을 내가 한건데.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 주위의 그 누구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안 먹던 영양제도,
친구녀석이 매주 맞던 값비싼 영양주사도
애당초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듯했다.
이러한 좌절에서 날 구해준 건,
굳센 다짐도, 체계적 계획도, 운동도 아닌,
다름 아닌 '잠'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깨닫고
잠을 충분히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로운 시간,
퇴근 후 시간을 좀 더 가치있게 원하는대로
채워나갈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정신없이 바쁜 회사일 중간에도
꽤 명료한 의식상태로
내 삶을 위한 활동에 틈틈이
에너지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헤매는 기분만 들고,
도무지 회사일만 하기에도
너무 지치고 녹초가 되어버려서
이대로 영원히 회사일만 하다가
늙어버릴 것 같던 좌절과 공포는,
내가 잠을 충분히 자면서 사라졌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비하에 빠졌을 때,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질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여행? 술? ..? 그 어떤 것보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뒤 깊은 잠을 자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그런 후 잠에서 깨어나면 한결 충만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저 문장들을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몸소 경험했다.
도무지 어떻게 해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일상의 굴레와 속박의 어려움을,
나는 그냥 잠을 충분히 자는 것으로
완전히 극복했다.
혹시 지금 처한 상황에 압도당해서,
도무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하루들이
원치 않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 같다면,
내가 가장 추천하는 일은
우습게도 "잠드는 것"이다.
그 어떤 멋지고 체계적이고 복잡한 설계보다
가장 간단명료한 해법이다.
오늘부터,
잠자리에 일찍 들어라.
유튜브 보지 말고, 티비 틀지 말고,
친구랑 전화하지 말고,
술마시지 말고,
게임하지 말고,
그냥 잠자리에 일찍 들어라.
무얼 상상하든,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5분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