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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임브랜더 Oct 27. 2022

100년 역사를 마시는 공간, 카페 레지오

Caffe Reggio (1927)

시대는 바뀌지만,
이야기는 남는 법이니까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흔히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철학이 담긴 이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이 진해지며, 역사를 등에 업어 전설로 남기 때문이다.


뉴욕에는 예술가들의 낭만을 품고 있는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가 있다.

길가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버스킹 공연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새벽 내내 머리를 쥐어짜 냈을 코미디 대본으로 관객들을 웃고 울리기도 한다.


역사를 마시는 공간

그리니치 빌리지 한 복판에 유독 짙은 초록색 상점이 눈에 뜨인다.

온갖 골동품을 쌓아 둔걸 보니, 골동품점인가 싶기도 해서 지나치기 쉽지만, 미국에 커피의 낭만을 처음 들여온 카페 레지오(Caffe Reggio)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인테리어는 오래된 낡은 시대적 냄새를 풍기며, 커피 향과 어우러졌다.


Caffe Reggio 외관. Photo by 장미인.


멋진 중절모를 쓰고 있는 카페 레지오 창업주가 오늘의 인터뷰이다.


카페 레지오 창업주 도미닉 파리시. Photo by caffe reggio.


인터뷰어 장미인, 이하  으로 표기

인터뷰이 1대 오너 도미닉 파리시 (Dominic Parisi) 사장님, 이하 네모칸으로 표기



 SCENE #1  예술이 주는 힘, 컬렉터의 철학

오~ 미인 씨 우리 가게에서 가장 비싼 자리에 앉아있네? 어떻게 알았지?


 네?! 카페 입구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로 앉은 건데!! 여기가 가장 비싸다고요?!

지금 당신이 앉아있는 그 벤치 말이야. 로렌초 메디치 (Lorenzo De Medici) 가문 소유였던 거 알고 앉은 거 아닌가?  
길다란 벤치는 메디치 가문 소유품. Photo by Gross&Daley Photo.


 어우.. 사장님 저 그 말 들으니 어지러우려고 해요! 이탈리아 르네상스 권력자 말씀이신 거죠??!

그 ‘위대한 로렌초’ 요! 그럼 엄청나게 귀한 유물 아니에요?! 왜 이렇게 막 두시는 거예요!! 박물관처럼 통제선 만들어놓고 못 앉게 하셔야죠?

(별 일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다들 그래, 얼마나 귀한 건지 모르고 평범한 의자겠거니~ 하고 앉지. 그런데 말이야.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어.
나는 우리 가게에 온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와 어우러지도록 하고 싶어.

때론, 귀한 것을 알게 되면
그 가치를 제대로 누릴 수 없거든

Caffe Reggio의 손님들. Photo by 장미인.


 지금 보니 카페가 골동품… 아니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네요?!  

여긴 그냥 카페가 아니야. 살아있는 박물관이지. 박물관에선 작품이랑 거리두기 하면서 눈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걸, 여기에선 직접 만져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같은 공간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잖아?! 얼마나 멋진 일이야?
예술 작품들로 가득찬 카페 내부. Photo by 장미인.


우리 가게 작품들만 세어보면 80여 개 정도 될 거야. 그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16세기 카라바조 그림이거든? 최근에 복원했지. 저 빛을 표현한 거 봐!! 일품이잖아?

Michelangelo da Caravaggio 카라바조 :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 화가로 빛과 그림자 대비 표현이 대표기법이다.


18세기 프란체스코 2세 (Francesco)의 "The Celebration of El Cid"라는 작품도 있고, 군주론의 모델, 체사레 보르자 (Cesare Borgia) 작품도 있지. 우리 가게 작품들을 설명하면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모자라!!


 특별히 카페에 예술품을 모으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나는 말이야. 사람들이 이 모든 걸 ‘작품’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오브제가 주는 힘이 있다고 믿어. 우리 카페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던 원동력이 바로 그 보이지 않은 힘이야. 16-17세기 작품들로부터 풍겨오는 에너지에 자신도 모르게 홀린달까?


 이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구매하신 거예요?! 작품을 고르신 기준도 궁금해요!


작품을 고를 땐,
어우러짐이 가장 중요해.
그저 비싸고 유명한 작가라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오브제들과 ‘어우러짐’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질서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지.
예술품 아래에서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Photo by 장미인.
저 창문 앞에 있는 흉상도 로마에 가서 직접 경매 참여하고, $1,000불 이상 내고 데려온 작품이야! 천장에 달려있는 실링팬도 60년대에 설치한 건데, 아직까지 잘 작동하고 있지.




 SCENE #2  정통의 자부심 


 처음부터 카페를 창업하실 생각이셨나요?

하하 아니, 내가 카페를 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우리 가족은 원래 이발소 (Barber shop)를 운영했었거든!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워온 면도 기술을 미국에서 써먹어야지! 하고 이발소를 시작하게 됐지. 꾸밀 줄 아는 이탈리아 남성들이 내 타깃이었어.


 이발소요? 바버샵과 카페는 정말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이발소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전부 이탈리안 남성들이라고 했잖아? 우린, 커피가 일상이거든. 지루하게 이발 순서 기다리는 동안 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한 잔, 두 잔 커피를 서비스로 제공하다 보니, 이게 사업이 되겠더라고!? 커피 판매를 하면 더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똑같은 매출을 낼 수 있겠다 판단했거든! 그래서 내 고향 이탈리아 Reggio Calabria 이름을 따서 레지오 카페를 시작하게 됐어!
현재의 레지오를 있게 한 카푸치노. Photo by 장미인.


 카페 창업 동기가 너무 재밌어요!! 이탈리아 본연의 문화가 이발소를 카페로 둔갑시켰네요?

레지오가 미국에 카푸치노를 처음 알린 카페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미인 씨, 우리가 카푸치노뿐만 아니라 정통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알린 거라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에스프레소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 알고 있지? '지금 사람들이 먹는 아메리카노'는 커피도 아니야.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건 커피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마시는
보리차 같은 거지!

 저.. 스타벅스 얼죽아.. 조용히 있겠습니다… (쭈글)

허허, 이것 참, 커피의 ㅋ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좀 해줘야겠네! 에스프레소가 왜 에스프레소인지는 아나?
크롬으로 장식된 뉴욕의 첫번째 에스프레소 머신. Photo by Caffe reggio.
19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빨리 (Express) 압착 추출하는 기계를 개발했는데, 이게 지금의 에스프레소 (Espresso) 어원이 된 거야. 지금 아무리 스타벅스, 블루보틀이 전 세계를 프랜차이즈화 하더라도 이 25ml의 낭만을 따라 올 순 없거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커피를 제공하고자 하는 사장님의 열의가 느껴져요!

그래?! 그래서 내가 전 재산을 탈탈 털어 이탈리아에서부터 저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 온 거야! 당시 돈으로 $1000불이니까 지금으로 치면 건물 하나를 샀을 가격이지! 당시 면도 값이 $0.10이었으니, 만 명의 손님을 받고, 기계를 산 꼴이 되겠네.
상단에는 천사, 주변은 용이 둘러싸고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 지금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Photo by 장미인.
(상기된 목소리) 바라만 봐도 참 아름답지 않아? 내가 매일 아침 10시 가게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저 기계를 닦는 일이었어. 때 빼고 광내고. 베스트 비즈니스 파트너야


 이렇게나 큰 기계로부터 시작된 거군요?! 이 손잡이 부분도 정말 앤틱…

(사장님이 지팡이로 내 손을 탁! 쳤다.)

어허, 이거 아무도 못 만져! 이 가게에서도 나만 만질 수 있다고! 내가 제일 아끼는 거라니까아? 1902년에 제작해서 미국에 카푸치노를 처음 알린 기계라고! 카페 레지오가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핵심이란 말이야! 내 몸보다 소중하게 다루는 거라고! 그만 만져!!


 아니, 저 16세기 작품들도 벽이며 바닥에 막 두시면서! 이 기계는 왜 못 만지게 하시는 거예요? 저 좀.. 억울해요!

내가 이걸 작동하기까지 3개월이나 걸렸다고! 내가 아플 동안에 친구가 카페를 대신 봐준다고 했을 때에도, 나 아닌 사람이 기계를 만지느니, 차라리 가게 문을 닫고 말지! 할 정도니까.. 미안하지만 어느 정돈지 알겠지?




 SCENE #3  카페보다 영화배우


 지금 사람들은 카페 레지오가 유명해졌던 이유를 매스컴의 위력이라고도 하는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건 사실이야. 대부 2 (God father 2)나 샤프트(Sharft) 등 대작들을 우리 가게에서 촬영했거든. 사실 나는 그런 건 문외한이라 크게 관심은 없었어. 촬영하러 누가 온다고 해도 시큰둥했어.
Caffee Reggio 필름 현장. Photo by Caffe Reggio.


 알 파치노, 존 레넌, 사무엘 잭슨 (Samuel L. Jackson)이 왔을 때에도요?!

뭐, 그러려니 했어! 특히 사무엘 잭슨이 우리 가게에서 샤프트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에도 사실 누군지도 몰랐어. 우리 직원이 ‘저 흑인 배우 굉장히 유명한 분이에요’ 했을 때, ‘그래서? 흑인이잖아?!’ 하고 넘겼거든.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그 당시는 흑인이 대중 매체에 오르는 일이 드물었지. 흑인들은 허드렛일을 주로 하는 게 일상적이었단 말이야. 나는 유럽 혈통이기 때문에 흑인이 우리 가게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거지.
John Huston 의 방문. Photo by Caffe reggio.


 와, 될놈될.. 그럼 정말 의외의 홍보 수단이 되었겠네요?

예상치 못하게 우리 가게에서 촬영했던 작품들이 대작이 되고 나니, 저절로 홍보가 되더군?!
이젠, 카페 레지오 자체가
‘주연 영화배우’인 셈이야!




 SCENE #4  역사가 전설이 된 이유 


 주변의 상점들이 여러 번 교체되고, 시대의 흐름이 달라졌는데도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일은 외롭고도 아름다운 일이에요. 카페 레지오가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미인 씨 말이 맞아! 스타벅스나 각종 체인점들이 가득한 뉴욕에서, 1927년부터 이어온 카푸치노를 마신다는 건 뉴요커들의 특권이지. 난 이제 주변에 어떤 가게들이 있었는지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지금껏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은
'1927년부터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일 거야

단순 커피가 아니라 ‘문화’가 됐기 때문에, 역사가 되었고, 전설로 불리는 것 아닐까?
1927년부터 시작된 Caffe reggio. Photo by 장미인.


 카페 레지오가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우리 카페 손님들이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과 함께 문화를 즐겼으면 해. 찍어내듯 만들어진 체인점들에선 느낄 수 없는 오롯이 우리만의 100년 이야기가 담긴 거니까 말이야.


시대는 바뀌지만,
이야기는 남는 법니까!



해당 내용은 필자가 실제 매장 방문 및 리서치를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로 각색하였습니다.

- 끄읕 -




카페 레지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affereggio.com



참고 자료

The sprit (The local paper for the Upper west side) - https://www.westsidespirit.com/news/at-caffe-reggio-a-rich-history-is-poured-into-every-cup-XG193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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