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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임브랜더 Oct 20. 2022

씁쓸한 과거를 견뎌낸 달콤한 디저트 가게, Egidio

Egidio Pastry shop (1912)

비록 이 달콤한 가게의 과거는 쓰더라도,
괜찮아요.
내 고객에게는 100년간의 달콤함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요.
 Maria Carmela Lucciola (4th owner)
 

미국 하면 ‘이민자들의 나라’, ‘아메리칸드림’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미국이란 대강국의 이민자 수는 매년 140만 명으로 추정되며, 전체 인구의 약 13%가 미국 이외의 국적을 지닌다.


이 중 이탈리아 혈통의 미국인들은 뉴욕 곳곳에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해두었는데, 영화계의 전설 ‘대부 God father’ 역시 미국으로 이민 온 이탈리안 마피아 문화를 다룬 대작이다.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긴 디저트 샵

19세기 말, 대체로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 지역 출신들이 기존 이민자들의 텃세에 밀려, 막노동, 유흥업 등 거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통일 이탈리아 정부의 토지개혁 실패로 인해, 북부보다 산업화가 늦었던 남부 인구들이 내쫓기듯 이민 오게 된 탓이었다. 이들은 백인 문화 중에서도 상당한 차별을 견뎌내야 했으며, 특유의 보수적 친족 중심 문화와 가톨릭 문화 (당시 미국 주류 교단은 개신교)로 인해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주류 계층과 어울리지 못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차별받은 역사로 인해,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대규모 친인척 집단으로 모여 살며, 친족 혼인 등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에지디오 페스츄리 샵 (Egidio Pastry shop)는 187가 어써 에비뉴 한 자리에 뿌리내린 전통 이탈리안 디저트 가게이다. 1912년부터 시작해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아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며, 현 소유주 마리아는 ‘에지디오’의 후손이 아님에도 오리지널 레시피와 깨끗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622 E 187th Street, The Bronx New york 매장. Photo by 장미인


오늘은, 씁쓸한 100년 과거를 지닌 달콤한 디저트 가게 Egidio Pastry shop을 인터뷰해본다.

 

인터뷰어 장미인, 이하  으로 표기

인터뷰이 4대 오너 마리아 사장님 (Maria Carmela Lucciola), 이하 네모칸으로 표기



 SCENE #1  에지디오의 시작.


 안녕하세요, 마리아 사장님!

어서 와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나 몰라?!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나한테 다~ 물어봐요! 내가 다~ 대답해줄 테니! 호호!

푸근한 풍채에 호탕한 웃음소리로 마리아(Maria Carmela Lucciola) 사장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가게 내부에 있던 친절한 Maria 사장님의 사진. Photo by 장미인


 요즘 제가 뉴욕의 이탈리안 문화에 푹 빠져있거든요!

오늘 Egidio를 인터뷰하면서 뉴욕 브롱스(Bronx)에 이탈리안 문화 공간이 있는 걸 처음 알았어요!

리틀 이태리 (Little Italy)하면, 당연히 맨해튼 아래만 생각했거든요! 최근에 한국에서는 톡파원 25시에 방영되기도 했고요!

에이, 무슨 서운한 소리?! 거기는 이제 이탈리아 문화라곤 찾아볼 수도 없어!
디즈니월드나 마찬가지라고! 죄다 상업적으로 바뀌어서 장삿속이 그득한 곳이야!
그런 곳이랑 비교도 하지 말아~~!!! 이 구역만큼 이탈리안 집합체가 없어요! 전문 투어도 있다니까?


 그럼, 여기 브롱스 이탈리안 문화는 진짜 찐인가봐요?

말해 뭐해? 우리만 해도 여기 어써 에비뉴(Arthur Ave)에 100년 넘은 터줏대감인걸?
1909년에 창업주, 돈 에지디오 사장님 (Don Pasquale Egidio )이 가장 이탈리아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금 이곳에 이민 온 후로 첫 사업을 시작하신 거야! 이탈리아에서 부모님이 카페를 운영하셨다고 하더라고. 그걸 보고 자랐으니, 미국에 와서 할 줄 아는 게 카페 밖에 없었겠지. 당시 20대였고, 막 이민 온 터라 돈이 없으니, 부자 삼촌한테 졸라서 가게를 내달라고 했대.


초기 창업주 Don Pasquale Egidio. Photo by Egidio website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카페를 차리긴 했는데, 처음에 뭐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고작 파는 게 커피랑 간단한 다과 차림이었어! 그런데, 워낙 이탈리안 밀집도가 높다 보니까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커피 한 잔 먹고, 당 떨어질 때 과자 하나 사 먹고 하면서 가게가 알려지기 시작한 거야!


지금까지도 오리지널 레시피 그대로 만들었으니,
이탈리아 본토의 맛이라고 자부할 수 있지!
오리지널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진 Egidio 과자들, 그 중 화이트 카놀리가 가장 일품이다. Photo by 장미인


이 때다 싶어서 오븐을 설치했어!
베이킹이 가능해지니까 꿀 바른 도넛 (Strufolle), 아몬드 비스코티, 전통 시칠리안 카놀리를 만들기 시작했어. 달콤한 향기가 그득한 곳에서 커피와 위스키 샷, 시가 담배를 곁들인 정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핫플이 된 거야!


지금 이때 산 오븐으로 아직까지 쓰고 있다고?!
내가 70살이 넘었는데, 나보다도 할머니 오븐이야, 껄껄!


 역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뭘 해도 된다고 하던데, 처음부터 자리 선점이 탁월하셨네요?  

그렇지? 당시에는 여기가 브롱스 동물원(Bronx Zoo), 뉴욕 보태니컬 가든 (New York Botanical Garde)에  석공 작업하는 이탈리안들이 모여 살았어!
그런데 꼭 가게가 잘 되란 법은 없었나 봐.
내가 이 가게를 인수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족 불화가 조금 있었거든.



 SCENE #2  운영진 내부의 불화 


 100년이나 지켜온 브랜드에 어떤 이면이 있을까 궁금해요, 조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우리 이탈리안 문화가 워낙 가족 중심인 거 알지? 게다가 남성 위주로 보수적이기까지 해.
창업주 돈 사장님한테 8명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큰 딸이 굉장히 똑똑하고 자주적이었거든.
큰 딸이 가게 일을 거의 50년간 다 도맡아 했는데, 가게를 팔았을 때 돈은 한 푼도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데, 이 작은 공간에서 매일 에스프레소 잔을 닦고 그릇 치우는 일만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 거야?


가게 내부의 모습, Photo by 장미인.


 어머나, 듣기만 해도 속상해요. 어떻게 참고 견디셨죠?

큰 딸은 아직도 아버지 사진을 오려서 지갑에 넣고 다녀.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더라고. 고등학교 중퇴까지 하면서 가게 일에 전념했는데,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케이크 장식으로 승화시켰지!
지금 있는 우리 가게의 케이크 좀 봐! 너무 예쁘잖아?!


에지디오 고유의 케이터링 장식이 돋보인다. Photo by Egidio Instagram


 일을 즐길 줄 아는 분이셨네요!

왜 누구보다 가게를 잘 알고, 일을 사랑하는 큰 딸이 가게를 물려받지 않으셨을까요?

우리가 좀 보수적이잖아. 유산은 아들에게 상속되는 법이야. 안타깝지만, 여성들의 공로는 인정받지 못한 때였거든. 결국 남동생이 가게를 상속받고, 큰 딸은 가게 점원으로 일만 했어.
그런데, 남동생 게리(2대 사장)가 가게 제빵사 데이비드 팔라초 (3대 사장)에게 가게를 팔았고, 그때 내가 이 가게를 알게 된 거야!



 SCENE #3  전통 브랜드의 영향력


 마리아 사장님은 에지디오 후손도 아니신데, 어떻게 가게를 인수하게 되셨어요?

내 전 남편 팔롬보가 지역 교수였거든.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이탈리아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했는데, 지도자 계층에 대한 야망이 있는 남자였어. 우리 결혼식이 뉴욕 타임스에 대서특필될 만큼  영향력 있는 남자였지. 마침 에지디오는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단골 가게고, 뿌리부터 이탈리안이라는 좋은 정치계 밑그림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가게 인수를 결정한 거야.


뉴욕시에서 인증한 EGIDIO PASTRY SHOP 공로상. Photo by 장미인.



 와 정말 달콤할 줄만 알았던 디저트 가게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깊숙이 있었네요!

글쎄.. 새까만 에스프레소가 씁쓸하지만 매일 찾게 되는 매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던 것 아닐까?


비록 이 달콤한 가게의 과거는 쓰더라도, 괜찮아요.
내 고객에게는 100년간의 달콤함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손님이 말없이 빈 접시를 내밀었다.

마리아 사장님은 밝게 웃으며 단골 손님을 맞이했다.

할머님, 오늘 세례식 잘 끝내셨어요? 초콜릿 카놀리 좋아하죠?
오늘은 날씨도 따뜻하니, 조금 더 가볍고 색다른 것 어떠세요? 예를 들면 과일 타르트?

 



에디지오는 오늘 하루 지나치는 방문객에게 그저 전통 메뉴들과 진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찬 멋진 공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내면 깊숙한 곳에 이민자들의 애환과 서글픈 역사가 묻어난다. 이탈리아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보물창고, 에지디오 페스츄리 샵의 네온사인은 100년이 지난 오늘도 반짝인다.



해당 내용은 필자가 실제 매장 방문 및 리서치를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로 각색하였습니다.

- 끄읕 -




에지디오 페스츄리 샵 공식 홈페이지

https://egidiopastry.com


에지디오 페스츄리 샵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gidiopastryshop/


Arthur ave 전문 투어 공식홈페이지 Oteri

https://www.arthuravenuetour.com



참고 자료

뉴욕타임즈 https://www.nytimes.com/2004/10/17/nyregion/thecity/love-discord-and-cannoli.html?smid=url-share

뉴욕포스트 https://nypost.com/2018/04/06/the-best-treats-at-nycs-oldest-bakeries/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미국으로의_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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