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일

리스본 Lisboa

by 나예

리스본의 대표적 상업 지구인 바이샤 지구를 걸었다.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리스본에서 유일하게 평지인 곳이다. 관광객을 유혹하는 목 좋은 곳들은 대개 tourist trap이라 불릴 만한 가격을 제시한다. 하지만 약간만 그 근처에서 벗어나면 가격이 훅 떨어지니 다들 너무나 대놓고 속 보이는 식의 장사를 하고 있다. 이걸 장삿속이라고 해야 할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자리가 좋고 전망이 좋으니 당연하잖아’, 라는 생각인 걸까.


커다란 개선문을 통과해 제법 넓은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에 도착하니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아니, 사실은 강이다. 하지만 강이 점점 넓어져 바다로 흘러드는 것인데 과연 어디까지를 강이라 하고 어디부터를 바다라 해야 할 것인가. 한국에선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강은 강이고 바다는 바다로 각각 존재했다. 이렇게 강과 바다가 이어진 곳을 본 적이 없기도 했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것 따위, 궁금하지도 않았다. 사실 강과 바다는 당연히 이어져있는 것. 하지만 그간 그런 모습을 상상해본 적도 없으니, 얼마나 빈곤한 상상력으로 살아왔는지 새삼 실감하고야 말았다. 아무튼 둘은 이어져있으니 모든 건 결국 사람이 정하기 나름이다. 여기까지는 아직 강으로 친다고 한다. 비록 바다처럼 엄청나게 넓고 파도도 치고 있지만 바다가 아니란다. 벨렘(Belem)부터를 진짜 바다로 인정한다고 한다. 벨렘은 며칠 뒤에 따로 시간을 내어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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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포르투갈에서 가장 도시다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편들이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도 그 점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아직 차가 없네. 그럼 기다려야지’하는 생각 외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물론 지금 시내 도로 곳곳이 공사 중이라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버스나 트램의 경우 배차 시간표가 정류장에 적혀있긴 하지만, 그 시간표를 시키는 걸 본 적이 없다. 늦게 오기도 하고 어떤 땐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찍 출발하기도 한다. 차와 트램, 자전거, 툭툭 등이 모두 같은 길을 쓰기 때문에 한 길에 뒤엉켜 서있는 모습도 제법 많이 봤는데 이럴 경우엔 하염없이 늦어지기도 한다.


만약 좁은 길에 누군가 주정차라도 해두었다면 여지없이 운전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주정차 대부분은 작은 트럭들인데 '누가 남들 지나다니지도 못하게 좁은 길에 비양심적으로 몰래 차를 세워?' 라기보다는 골목의 가게에 식자재 등을 납품하기 위해 잠시 세워두는 경우가 많아 당장 차를 빼라고 덮어놓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걸 뻔히 아는 마당에 그렇게 매정하게 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버스나 트램은 엔간해선 빵빵대지 않으며 승객들도 별 불만 없이 기다린다. 볼 일이 끝난 트럭들은 미안해하며 그제야 얼른 길을 비킨다. 그러면 모두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애당초 버스나 트램들이 시간을 딱딱 지킬 수는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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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은 언덕을 오르는 푸니쿨라 또한 마찬가지인데 푸니쿨라의 경우엔 아예 정해진 시간표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운전수가 보기에 ‘이 정도면 적당히 승객이 찼으니 슬슬 출발해야겠다’,라고 생각할 때 출발한다. 가끔은 승객이 푸니쿨라 안에 가득 찼을 때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서 10분 뒤 출발할게요’라고 통보하고 화장실로 향하기도 한다. 승객의 편의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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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늦게 왔다고 운전수를 폭행하고도 분이 안 풀려 ‘나의 분노를 고스란히 되돌려주리라’하는 마음으로 지독하게 클레임을 넣는다. 지루한 삶에 지친 누군가가 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어도 그 때문에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게 짜증 날 뿐. 1분만 늦어도 너 때문에 우리 본부의 ‘지각률’이 올라간다며 사람을 쥐 잡듯 잡고, 강제로 연차 처리까지 시키던 조직과 사회에 몸 담아오던 나에게 이곳은 아예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편의와 효율만을 따진다면 모두 기계에게 맡겨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우리 주변의 많은 일들은 사람이 직접 하고 있으니까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삶이란 건 때로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서로의 입장이 바뀌기도 하는 법이라 내가 일하고 있을 때 그들이 내 손님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건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삶이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이 아니던가.


리스본은 찬찬히, 느릿느릿 들여다볼 때 더욱 아름답다. 기다림 또한 여행의 한 요소로 생각하되, 이동 시간은 넉넉히 잡고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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