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처럼, 크루아상

프랑스, 니스

by 나예

뭐든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만 빵은 더욱 그렇다. 나는 밥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오늘도 먹고 있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빵 중에서도 그나마 살이 덜 찌는 빵과 더 찌는 빵으로 나눠본다면 크루아상은 무조건 더 찌는 빵에 속한다. 크루아상은 버터 폭탄이다. 요즘 유행하는 저탄고지가 아니라 무려 고탄고지. 크루아상을 구워보면 알 수 있다. 그 층상 구조 사이사이에서 진한 버터 내음이 진동을 한다는 걸. 이런 걸 먹고 있으면서 살이 안 찌길 바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이기는 할 것이다.

오늘은 커피 금지


크루아상은 17세기 말 즈음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그 이름도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를 통해 프랑스로 전해졌다. 오스만투르크(지금의 터키)에 질린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오스만투르크를 씹어먹자!'라는 마음으로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을 본따 빵으로 만든 것이 크루아상의 시초라고 하는데 그닥 와닿지는 않는 얘기다. 누군가에 대한 반감과 악감정을 품고 만든 빵이라면 좀더 투박하고 거친 느낌에, 씹을 때도 와삭와삭 소리가 나야 조금이나마 그 분노가 해소될 것 같은데 크루아상은 세상 섬세하고 부드러우니까. 냄새부터 황홀하고 손가락에 묻은 버터까지 빨아 먹게 하는 빵의 시작점에 그런 사연이 숨어있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을 본딴 것이든 밤 하늘의 초승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든 분명 크루아상은 초승달을 닮았다. 크루아상(croissant)이라는 단어 자체가 초승달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초승달은 차올라 반달이 되고, 이내 보름달이 되었다가 반대 방식으로 빛을 덜어내며 끝내 그믐달이 된다. 본질은 같지만 그 모습과 느낌은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달처럼 크로와상의 변신 또한 그렇다. 큰 것과 작은 것, 표면에 시럽을 끼얹은 것이나 토핑을 올린 것, 초코 코팅을 입힌 것, 안쪽에 크림을 넣은 것 등.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호텔 조식으로 (무제한) 제공되는 크루아상임을 급 고백하며 이 글을 마친다.


※ 호텔 조식의 꽃은 역시 크루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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