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갑자기 레트로 열풍이 불며 주스나 우유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일명 레트로 유리컵들의 몸 값이 뛰어올랐다. 8~90년대 즈음에 판촉용이나 사은품으로 돌리기 위해 만든 것들이라 본래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은 아니었으나 시일이 지나고 일부러 이런 물건들을 찾는 사람들이 생기니 이젠 돈값하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본가 부엌 깊숙한 곳이나 시골 할머니 집 찬장 속에 이런 컵들이 잔뜩 있어 “여기가 노다지다!” 하고 냉큼 쓸어왔다는 간증 글들이 한동안 줄을 잇기도 했다.
이전에 몇번 밝힌 적이 있지만 내 할머니는 이런 방면에 꽤 고급스런 취향을 갖고 있는 분이었어서 이런 ‘공짜’ 들을 당신 집에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 집 찬장에는 진짜 ‘밀크 글라스’가 있었다. '밀크 글라스'를 한국 말로 하면 '우유잔'이 되겠지만 진짜 그 우유잔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16세기 경 베니스에서 탄생한 밀크 글라스는 도자기와 유리 사이 그 어딘가 즈음 위치하는 소재를 일컫는 말이다. 우유(보단 사실 밀키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처럼 뽀얀 색감이면서도 빛이 절반 정도는 투과되어 반투명과 불투명의 매력을 동시에 뽐내는 일타쌍피스런 맛이 있는 녀석이다. 삐까번쩍한 새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빈티지한 물건들이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유 중엔 따뜻한 느낌이랄까,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왔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비롯하는 온기같은 것이 한 몫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지점엔 분명 밀크 글라스가 자아내는 느낌과 닮은 부분이 있다. 가벼운 플라스틱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는데 그렇기에 더 앙증맞고 새초롬해 가끔은 장난감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간에 할머니 집에 있던 밀크 글라스는 D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머그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접시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 당시엔 내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어느 정도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고 나서 다시 보니 머그들은 파이렉스였고 접시들은 아코팔이었다. 특히 접시는 아코팔 중에서도 흰 바탕에 색색깔의 아네모네가 과하지 않게 표현된 물건이었는데 이 접시에 반찬이나 요리가 담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대신 디저트 류를 올렸다. 가족이 전부 모이는 날은 흔치 않았고 대개는 명절이었던지라 이 접시에는 디저트 중에서도 주로 과일이나 떡이 올랐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명절 음식이나 반찬, 김치 따위를 한 보따리씩 싸주는 그런 할머니는 아니었고 도리어 깍쟁이 같은 구석이 있는 양반이었는데 그 와중에 음식 솜씨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음식 솜씨란 시골 할머니의 손맛, 따스한 집밥의 맛 같은 것이 아니라 다소 전문 요리사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지금 돌아보면 음식들이 노인네 음식 같지 않게 전부 깔끔하고 세련된 맛이 있었다. 까탈스런 할머니의 비위를 맞추느라 한 평생을 시달린 엄마조차도 "그래도 그 할머니가 음식은 진짜 잘하셨지"라고 할 정도니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그런 할머니가 아코팔 아네모네에 가장 자주 올린 것은 떡 중에서도 직접 빚은 송편이었다. 방앗간에서 빻아온 맵쌀을 더운 물로 반죽하고 꿀에 버무린 깨며 삶은 콩이며 팥이며 하는 소를 넣어 면보 위에 솔잎을 잔뜩 깔고 찐 진짜 수제 송편이었다. 명절 전날에 부엌에 끌려들어가 송편 속을 채우면서 너무 크네, 너무 작네, 모양이 어떻네 저떻네 하는 핀잔을 끊임 없이 들었던 나였지만 그래도 갓 찜통에서 나와 김이 모락모락나는 송편이 아코팔 아네모네에 담겨 나오는 순간은 마냥 좋았다. 떡 반죽도 어떤 것은 하얀 색을 그대로 썼고 어떤 것은 쑥을 넣어 녹색으로 만들고 또 어떤 것은 뭘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핑크빛을 내거나 노랗게도 만들었기에 제법 알록달록했는데 그게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는 흰 접시와 무척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아코팔의 할리퀸 찻잔 6조 세트를 들였다. 작고 동글거리는 모양새와 몽글몽글한 색상이 예전의 그 송편을 연상시킨다. 누군가는 마카롱이라 하겠지만 내 눈에는 딱 송편이다. 유감스럽게도 할머니가 그립다거나 하는 느낌은 별로 없다. 그리워하고 말고 할 만큼의 교류가 없었던게 사실이고 까놓고 말해 우린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도리어 그 때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똘똘하다는 것 외에는 워낙에 귀염성이 없는 손녀였기도 하니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양가의 어르신들, 그러니까 조부모들이 아무 조건 없이 몸과 마음을 다해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나니,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할머니가 무조건적으로 주는 푸근한 사랑 같은 것에 대한 결핍을 채울 기회는 나에게 끝내 주어지지 못했지만 내 아이는 그런 결핍 없이 자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지만 그렇게 별로였던 할머니였음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나마 한번씩이라도 안부를 묻던 친척들의 얼굴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과 갓 찜통에서 나와 김이 모락모락나는 진짜 수제 송편을 우유빛깔 접시에 담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은 조금 먹먹하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진짜 그 레트로 유리컵은 끝내 못구한거냐 묻는다면 No. 시어머님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오래도록 가지고 계셨던 것들이 몇 박스나 되어서 이것들을 잔뜩 받았다. 비락우유부터 시작해서... 바른손의 리틀 토미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파카 글라스에.. “디지털 017”이라 적힌 곰돌이 머그까지 차고 넘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