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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Sep 13. 2024

프롤로그:사촌 오빠에게

감쪽같은 거짓말

방안에 스스로를 가둔 사촌오빠에게, 지난날의 나에게.

(이 글은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입니다.)


1.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나무로 된 몸은 차갑기만 했거든..., 체온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지. 제패토 할아버지가 자신을 쳐다볼 때 동공의 커짐, 코의 벌렁거림, 그때그때 달라지는 표정. 무엇보다 차가운 자신의 나무몸에 할아버지의 손이 닿을 때,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전해졌어. 그래서 피노키오는 그 순간 마음을 먹었지 '할아버지처럼 체온이 있는 진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피노키오는 그 이야기를 믿고 싶었을 거야. 아주 간절히. 나도 인간이 곧 될 수 있어라는 희망.., 그런데 오빠, 이건 동화 속 얘기만이 아니야. 나도 오빠도 그런 희망을 마음 깊은 곳, 비밀스러운 동굴 속 같은 곳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지.

'나도 곧, 사랑을 받을 수 있어',  '엄마는 곧 나를 봐줄 거야'같은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의 주문을.

우린 피노키오처럼 하고 또 갈구했어. '언젠가는....'  그 희망고문을 나조차도 모르는 아주 깊숙한 동굴 속에 파묻었지. 아무도 모르게 자물쇠로 잠가버렸지.


하지만, 기억해야 해. 그건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거란 걸. 애초에 전제가 틀렸으니깐.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조금만 더 멋져진다면, 조금만 더 내 부족함을 고치게 된다면... '그 조금만... '은 결코, 끝이 나지 않아. 알고 보니, 그 희망고문은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미끼였어. 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미끼...,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한 뼘씩 늘어났어.

피노키오는 코가 늘어나서, 거짓말이 너무나 티가 났지. 그런데 현실의 어른들은 코가 늘어나지 않아. 얼굴도 평범하기 그지없어. 어쩔 때는 눈 깜빡도 안 하고, 미소도 지으니깐. 안심이 되라고. 그런 감쪽같은 거짓말을 아이에게 하면,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그걸 믿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아이는 순수해. 아이는 어른이 아니니깐. 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말을 믿어. 널 위해서라고 해도 그 말을 믿어. 왜냐면 이 사람은 날 좋아하니깐. 그니깐 다시 말하지만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거야. '우린 널 사랑해'라는 전제. 그 말은 아주 달콤하지.


오빠. 오빠는 지금 엉뚱한 사람에게 구원의 밧줄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 배는 침몰하고 있는 배야. 그냥 밧줄을 기다리지 말고 옆의 다른 새 보트로 건너가면 되는 거야. 오빠 곁에 남아있는 엄마와 동생은 어떡하냐고..?

속지 마, 이미 그들은 구명조끼를 제일 먼저 입고, 오빠 자리는 만들지 않고, 새 배를 타려고 해. 그들 안중에 오빠란 사람은 있지도 않아. 오빠 혼자 그들을 걱정하고 있는 거야. 이미 오빠를 지운채 자기 몫을 다 챙기고 떠난 사람에게.


그래도 그래도, 오빠는 '우리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라고 여전히 속삭이고 있지?


물론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다는 거 알아. 나도 그랬으니깐..., 나도 절벽 아래 수십 미터로 떨어진 채 죽어가듯이 헐떡이고 아팠으니깐. 그런데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거든.

변명 아닌 변명을 이해하고 싶겠지. 그래도 엄마는 나한테... 해줬잖아'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대신하고 있겠지. 억지로 나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했던, 따뜻했던 장면을 찾아대고 있을 거야.

그게 철저히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사실보다는 덜 힘드니깐.


하지만, 오빠 그 말은 거짓말이야. 우린 애초부터 혼자야.

이모에게 오빠에 대한 기억 어떤 것이라도 좋은 게 있을까? 내가 그리고 우리가 들었을 땐 말이야. 매번 오빤 그냥 불쌍하고 모자라고 부끄러운 남보다 한참 뒤처지는 수치심만 드는 아들 같았어. 결코 좋은 게 자랑스러운 점이란 게 있는 사람처럼 들리지 않았지.(미안,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야)그리고 그건 오빠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야, 나도 똑같거든. 마냥 수치스럽고 숨기고 싶고 가족에게 피해만 끼치는, 매사에 뜯어고치고 바꿔야 할 실패작인 아이. 운 나쁘게 내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 우린 원망할 대상이자 조롱할 물건 같은 존재였어. 그 각인된 이미지는 결코 바뀌지 않아.


그러니깐 우린 혼자였어. 그건 믿고 싶지 않겠지. 이해해.


 하지만 받아들여야 돼. '나는 이 세상에 혼자다. 가족은 애초부터 없다'란 잔인한 사실을 말이야.



백번, 천 번 들어서 나조차도 그 거짓말을 믿어버렸다. 너는 실패작이고 부족한 아이야 라는 말을. 그렇게 내 몸 어딘가에 낙인이 찍힌 채 어린 시절, 청소년과 청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뱀 같은 그 거짓말은 진짜 같이 들렸다. 그래서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날조된 거짓이 반복되어, 진실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오빠' 지금 내 말이 들린다면, 이모의 그 화사한 달콤한 웃음 뒤에 따라오는 번뜩이는 눈을 봐, 너는 '부족한 애야'라는 그 온갖 조롱 섞인 농담들을 결코 믿지 마.  피노키오를 만든 사람의 거짓말일 뿐이니..., 오빤 결코 부족한 존재가 아니야. 부족한 사람이 아니야. 절대로. 그걸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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