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실시간으로, 보도할 만큼 큰 비가 새벽부터 '후두두두'내리며, 아침부터 길을 나서는 모두의 걸음을 늦추게 했다. 겨우 한두 명,장례식장에 들어서서 넓은 공간이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첫날이고 비가 이리도 오니... 어쩔 수없지..' 저녁이 되자, 서서히 안면이 있는 아빠의 지인 몇몇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친척들, 그중에서도 고모들이었다.어릴 적보고 십 년 넘게 못 본,고모들은 막내나 다름없는 동생의 장례에 한참을 달려왔다.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흰머리가 지긋한 두 고모들은 '꺼억꺼억'울음을 토했다.
조문 인사를 끝낸 이들은 삼삼오오 검은색 차림들로 모여 앉아 육개장이나 수육등의 상차림을 받고 있었다.'이놈의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해', '아니, 얼마 전까지 멀쩡한 얼굴이었는데.. 갑자기 가시다니..., ' 다들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고 웅얼거림이 이내 고모들의 목높인 곡소리로 덮였다.
"아이고, 내~동생아~내. 동생~~ 아... 어디갈꼬..~~"
늙은 고모들의 통곡은 이제 슬픔의 애가가 되었다.아빠의 장례식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나는 퀭한 눈으로 조문인사를 꾸역 구역 해나가고 있었고, 이 모든 순서가 비현실적인 하나의 드라마 같았다. 애석하게도, 난 별로 몰입이 안 되는.
"그렇게 착해빠져 갖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를 못하는 선하디 선한 사람이었는데..., 왜!!"
그녀들이 기억하는 선량하기 그지없는 아빠는 몇 살 때의 기억일까. 고모들의 한탄은 나에게 지진을 일으켰다. '그는 왜, 이렇게 두 얼굴이 극명하게 다른 걸까' 고모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조문 행렬..., 작은 구멍가게 같은 회사를 수년 운영했던 최근까지. 사람들은 그를 호인 중에 호인이라고 칭했고. 자기 이익을 못 챙기고, 사람들의 사정엔 한없이 배려하느라 후한, 그러면서 사람들이 따르는 매력이 많은 사람임을 앞다퉈 전했다. 물론 아빠는 그랬을 것이다. 그의 두 얼굴 중 한 면이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안 마신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
그는 한마디로, 요조 같은 사람이었다. 내게는 그게 분명히 보였다.('인간실격'책을 읽고, 나는 몇 번이나'아'하며, 무릎을 쳤다) 그렇기에 나는 최근까지도 그를 진짜로는 미워하지 못했고(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안쓰러워하고 이해하려 했다. 아빠는 주변인들에게 약간 '불가사의한 매력'을 행사했다. 모두의 마음을 사고, 챙겨주게 하는, 유약한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묘한, 순수한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특히, 이성인 여자들에게 그 힘은 더욱 커졌다. 40년 넘게 충성을 다한, 내 모친만 봐도 말이다.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애정을 그에게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소설 속 요조의 주변인들인 여자들만 봐도 똑같다. 그러고 보니, 유약함의 매력이란 감탄할만하다. 그리고 내 생각에, 아빠는 속으로는 그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기. 적절하게, 용도마다 맞게 사용했다. 자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튿날, 아빠의 동기 여자친구들이 쏟아져 들어와 조문인사를 했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 중 한 40대 후반이나 돼 보이는 여자분이 절을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울고 있었다. 고모들은 통곡을 여전히 꺼이꺼이, 온통 여자들이었다.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울고 있는 이들 모두가. 거기에 우리 모녀까지. 젤 이상했던 건 그 회사 여직원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친부모의 상처럼 '꺽꺽' 거리며 울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슬픔의 눈물이었고, 그러기까지 많은 사연과 대화와 기억이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딸인 나보다 더, 그녀가 오히려 진짜. 딸처럼 보였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아빠에게서 본 것일까...'
삼일장 내내 그 의문은 나를 따라다녔고, 지친 와중에도 그녀의 슬픈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 나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40년 인생을 살면서 아주 드물게 이게 그의 진면목 얼굴이 아닐까, 하는 그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순수하고 선하기 그지없고 동정심 많은 소년의 얼굴.
그러나, 그의 두번째 얼굴은 아예 달랐다.
몇 년 전, 그의 70세 칠순잔치 겸 가족끼리 하는 소소한 식사자리였다. 가족모임 잔치를 많이 하는 고깃집의 한방을 빌렸다. 그런데, 주인공인 그는 역시나 약속시간인 6시가 넘어도 등장하지 않았다. 아빠는 다른 이들과의 시간 약속은 철저히 지킨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르다.
"또 이런 식이야, 항상 제때 오는 법이 없어. 다 기다리는데 어휴..., "
동생은 시계를 보며, 재차 전화를 했다.
한 이십 분이 지나고, 그는 여유 있게 등장했다. 아빠를 지켜보고 재촉하느라 긴장한 얼굴의 엄마와는 달리.
선물 꾸러미들과 봉투들이 오가고, 식사는 그런대로 화기애애한 모드였다. 집으로 옮긴 자리엔, 동생 부부와 조카, 나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차려진 큰상에 이런저런 간식거리들이 있었고, 아빠는 자기가 주인공인 자리니, 그날만큼은 넉넉한 미소를 띤 채, 즐기고 있어 보였다. 우리는 예의 젊은 시절 아빠의 외모를 칭찬했고, 아빠는 기분이 좋은지 몇 안 남은 젊은 시절 사진을 보였다. 그중에 군대에서 찍은 희귀한 흑백사진이 있었는데,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고 경직된 얼굴로 찍혀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차츰차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거야....' 특유의 긍정적 사고였다. 그때까지는..,
아빠는 자신의 일화 하나를 얘기했다. 젊은 시절, 군부대에서 아빠는 px(지금으로 치면) 보급물품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대여섯의 어린 훈련병들이 자신의 아래 있었는데, 자신의 명령에 발 빠르게 행동하는 모양을 막 손짓으로 흉내 냈다. 어김없는 익살꾼의 재롱이었다.
"아래 애들이 내가 눈 부라리면서 모라고 ~~ 명령을 내리면, 다들 부리나케 움직이는 거야~"
"오 그래요?"
"그렇지~ 다들 내 말에 잔뜩 쫄. 아갖고. 담배 하나 받자고, 아주 설설 기더라고"
'오 '대단하다~'이런 감탄도 했더랬다. 그래도 좀, 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는데, 그건 그가 그 장면을 연극하듯이 환희에 젖어있달까, 하는 그 표정 때문이었다. 정말 행복에 취한 얼굴이었다.
'무슨 연극배우가 대사를 하는 것 같네...'나는 속으로 조금, 웃기게 생각했다. 철없는 70대의 얼마남은 허세 같은 거라니 좋게 넘겼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그는 찬물을 끼얹는 말을 던졌다.대화 화제가 드디어, 아빠의 군대 활약상에서, 초등학생인 조카의 순서로 화제로 넘어갔을찰나였다.
'잘했다~oo야~', '와~ 선생님이 그런 말을?'좋은 성적을 받은 조카에게 칭찬과 관심이 집중됬다.
"어릴 때는 말을 잘 들으니 이쁘지.., 좀만 더 크면,
싸가지가 없어져. 무슨 짐승새끼같이.., "
아빠는 아무렇지않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분위기가 물을 끼얹은 듯, 단번에'싸'해졌다. 전혀 앞뒤가 맞는 상황도 대화주제도 아니었다. 그의 표정은 단박에 차가운 콘크리트처럼 변해 있었다.
장례식이 드디어 끝나고, 고모는 그의 초등학교 시절 일화를 얘기해 줬다. 어린 시절 그는 시골동네에서 시내로 학교를 멀리 다녔는데, 하루는 학교 선생님이 그에게 웃으며 물었다.
"어쩜, oo는 매번 옷가지나 운동화가 다 깔끔하고 신사 같이 단정하니.., "
그 옛날, 다른 아이들은 대체로 단정하지도 얼굴이나 옷가지 한 두 군대는, 깔끔하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