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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Sep 20. 2024

동물의 왕국 1

아빠는 동물의 왕국 보는 걸 좋아했다.

주말 낮에, 어쩌다 함께 아빠와 둘이 집에 있는 날이 있었다. 식탁에 엄마가 차려둔 밥을 묻지 않고 각자 알아서 먹곤 했다. 청소년기라 부쩍 어색해진 것도 있었지만, 그냥 아빠는 그 방식이 편했기에 그런 것 뿐이었다. 그저, 누군가 배고프면 알아서 먹는 거였다. 그게 나도 편했다. 그렇게 슬그머니 내 방에서 나와 한 공간에 좀 떨어져서 '내 밥'을 먹고 있으면, 아빠는 티브이로 동물의 왕국을 보고 있었다.



나는 우걱우걱 밥알을 씹는다. 누가 모라고 한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라도 날까 서둘러 숟가락질을 해댔다. 조금 떨어진 거실 깊숙이, 아빠의 등이 보였다. 티브이를 등진채.나는 그의 등에 가려진 티비 모니터를 본다. 어쩌면 유일하게 자는 시간 제외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사방이 조용하다. 고개를 드니 티비 화면푸른 초원이 보였다. 다양한 동물들이 나오고 눈에 익은걸 보니,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인 듯했다. 얼룩말들, 다른 쪽엔 가젤, 물속엔 물소도 드나든다. 중앙에 풀을 조용히 뜯고 있는 가젤 몇 마리가 보이고, 거기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눈을 번뜩이는 게 보였다. 바로 사자였다.


 매서운 눈의 암사자가  풀잎의 그늘 속에 있었다. 잠시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고, 점차 보기가 두려워졌다. 왜냐면, 그 침묵과 평화로움은 곧 깨질 것을 난 알기 때문이었다. 볼 때마다 반복되는 스토리, 같은 패턴이었다. 그때마다 작은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한 숟갈, 두 숟갈 밥을 목구멍에 넘겼다.


사자는 한발, 두발 가까워졌다. 먹잇감에게.


초식동물들의 그 순진하고 나태하기까지 한 경계심 없는 모습.., 큰 화면 속 가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평화롭다. 점점 카메라 시선이 중앙의 가젤에서 구석의 사자로 바뀐다. 그 시선은 약간 날 불안하게했다.


나는 여전히, 밥을 소리 없이 먹는다.

사자도 밥이 필요하다. 그는 굶주렸다.

하나 둘 셋, 사자가 뛴다.

나는 잠시 눈을 지끈 감는다. '휴우...' 숨을 들이쉬었다 내쉰다.


눈을 살짝 뜨니, 가젤은 발버둥을 심하게 치고 있었다. 곧 발버둥이 그치고 고개가 꺾인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고통이 끝났을테니...,



동물에 관해서 말하자니, 아빠는 작은 동물들을 나름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거의 유일하게 애정을 주는 것 같았다. 어릴 적엔, 우리 집엔 시골도 아닌데 아빠가 데려온 병아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커가면서는 작은 물고기들, '십자매'같은 작은 새, 물론 햄스터도 몇 마리 키웠다. 귀여운 병아리들에게 식사를 주는 것은 아빠 몫이었다. 그는 익숙한 손길로 곡물들과 식빵 같은 걸 빻아서 가루로 주곤 했다. 냄새나는 새똥을 치우는 것도 아빠였다.

호기심 어린 애정으로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은 영원히 애완동물을 사랑할 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동물들은 시들어간다. 점차 잊히다가 사라지는 수순을 밟는다. 그 까다로운 뒤처리는 늘 아빠의 몫이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병들거나 지들끼리 쪼거나 해서 문제가 생기면, 미안함을 모르는척했다. 곧이어 '아빠가 손수 잘 묻어줄 거야...'라는 순진한 핑계를 마음속으로 댔다. 그래야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으니깐.


마지막으로 키운 햄스터 두 마리는 처음 모습과 다르게 잔인하고 이상한 동물이었다. 두 마리는 케이지 안, 어느 날 보니 새끼 여럿을 낳았다. 핑크색의 여리고 작디작은 생명체들. 자기들이 낳은 새끼들인지 아는지도 모르는 듯한 부모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다투고 쪼아대고 먹이를 서로 먹기에 바빠 보였다. 생명을 탄생시킨 기쁨은 그들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핑크색 몸을 한 새끼가 한 마리 사라져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린 나는 고민하다가, 다음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햄스터 새끼가 안 보여요?~ 네 마리 있었는데... 세 마리밖에 없어요..."


"그래?.., 부모들이 먹. 어. 치웠나 보지"

그는 별 미동 없이 답했다.


그리고 우린 잠시 침묵 속에 젖어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난 이상하게 이해가 잘 안 됐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은 복잡한 퍼즐 같은 걸 보고 있는 듯했다. 그 말을 드디어 소화시키고 난 후, '아...,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그를 보며 되물었다.


아빠는 허공을 보며 답했다.

"그럴 수 있지..,동물들이니깐. "


새끼가 아팠을 텐데... 난 잠들 때 조금 무서워졌다. 그런 상상을 떠올리는 게 내가. 그래서 또 익숙한 변명을 했다. '아빠가 잘 묻어주고 처리해 줬을 거야...'아빠는 응당 그런 걸 잘 해내니깐.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가 없었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피 묻고 팔다리가 사라져 있는 새끼.


그때 내 세계는,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틀속에  풀을 뜯는 가젤과 같았다.


나는 눈을 감는다. 어느덧, 나는 세렝게티의 풀을 뜯는 가젤이 되었다. '냠냠냠' 씹을수록 침이 나오고 허기짐이 사라진다. 초원의 햇빛은 어제처럼 따사롭다. 산들바람도 풀과 내 몸을 사르르 스친다. 자연이란 내게 참 좋은 것만 주는구나. 나는 맑고 커다란 눈망울로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순간 '버럭'하고 번개가 치듯 나의 몸에 그림자가 진다. 날리는 황금색 갈기와 엄청난 발톱이 내 얼굴을 스친다. 내 몸통을 찍어 누른다. 사파리의 왕, 사자는 내 목과 허리를 찢는다.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큰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다.


이 순진한 초식동물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걸. 커다란 산 같은 갈퀴를 올려다보면서. 그렇다, 여기는 동물의 세계였다. 그래야 할 무엇이 지켜지지 않고, 규칙도 선함도 없는 세계...., 그저 약하면 숨죽이고 물어뜯기는 세계.



사진: UnsplashMike van den 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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