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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Sep 27. 2024

동물의 왕국 2

 '우린  동물처럼 살아왔어' 그녀는 말했다.

변명 같지만, 우리는 꼭 동물들처럼 살았어.

반년만에 얼굴을 본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며, 그렇게 말했다. 특유의 아련하고 가련한 표정으로. 엄마의 말은 내 뇌리에서 수십 번 반복되어 돌림송 같이 시시때때로 들렸다. 처음엔 바로 이해가 안돼서, 그다음은 이해해 보려고. 점차 문장은 반복되며 축약되었고, '우린 동물들이었어' '우린... 동물들' 그다음엔 그냥 '동물'이란 단어로 줄여졌다. 단어가 되자,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 후에는 지난 고통의 세월이 그 한 단어로 축약됐다. '동물'의 삶으로.


어찌 보면 나름의 정직한 표현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변명 중에 가장. 꽁꽁 숨겨둔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풀리는 단서 같기도 했다. 왜냐면, 그동안 난 추리소설의 한가운데서 퍼즐을 풀어나가는 주인공 같았기 때문이었다.'가족'이라는 수상쩍은 퍼즐을 난 위에서, 옆에서, 아래서 보고 또 살폈다. 그래도 전체를 하나의 시각으로 보기가 죽도록 힘들었다. 하지만 이 수상쩍은 퍼즐조각을 난 맞추어야만 했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아이답게 아무 생각 없이 길바닥에서 공기 연습인가를 하고 있었다. 혼자 있던 내게, 저 멀리서 아빠는 웬일인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빠는 원래가 다가온다거나, 말을 건다거나 하지 않는다 좀처럼. 그런 건 격이 떨어지는 아래 애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상하네, 웬일일까'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거기 돌로, 누군가 널 무시하면 모서리로 이마를 '콱' 찍어버려라!"


나는 까닭을 전혀 몰랐다. 아빠는 왜, 그런 말을 던졌는지. 그리고 아빠는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신기하게도, 그 말은 반복되어 내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일종의 암시가 되었다. 나는 늘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때론 공격이라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지지 않기 위해서. 또는 공격당하고 맞지 않기 위해서. 초등학생들의 세계관 치고는 너무 거칠고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사촌들, 동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매일 어울려 놀았지만 전학을 간 새 초등학교에서 이상하게 몇몇 남자애들과 문제가 생겼다.


 교실의 아이들은, 때때로 원초적인 동물들과 비슷했다.
2학년이 되고, 나는 익숙한 동네를 훌쩍 떠났다. 멀리, 새 지역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몇 달 후 나름의 적응 후, 친한 친구들이 생겨서 속으로는 '이제 괜찮아'하고 안심을 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날 학급 무슨 담당 같은 걸 시키셨는데, 한 남자애가 날 죽일 듯이 째려보기 시작했다. 인상은 키가 작고(나만 했다), '쥐'같은 인상의 남자애였다. 짧은 탐색이 지나고 보니, 그 애는 같은 남자애들한테 늘 어딘가 쫄아 있고, 두들겨 맞을까 봐 피해 다니는 애였다. 그 모습을 보면 좀 안쓰럽지만, 어이없게도 여자애들한텐 늘 기세등등이었다.

'말그대로 쥐'를 닮은 그 녀석은 욕설은 예사고, 못된 단어들을 짝꿍인 나에게 내뱉었다. '쥐새끼'는 모든 창의력을, 욕설로 내뱉는데 활용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나이 답지 않게 너무 교활했다. 선생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 안 들릴 정도로 말하거나 이상한 손짓으로 표현하기에 선수였다. 심지어, 쇠 막대자나 볼펜 끝으로 내 손등과 다리가 넘어왔다며,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참다 참다 선생님께 호소를 해도 그때뿐이었다. 그러면 약 오른 쥐새끼는 두 배, 세배로 앙갚음을 하고, '너 두고 봐'하면서 복수한다는 얘기로 늘 모기처럼 괴롭혔다.


모기도 이런 크고 지독한 모기가 없었다. 그 쥐새끼의 장난은 날이 갈수록 지독해져서, 내 겨드랑이나 엉덩이 같은 예민한 부위를 '쿡' 찌르거나, 엄마욕이 들어간 저질스러운 노래를 내 옆에서 부르는 둥, 날 자극했다. 그런 일방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착한 말만 하며, 불쌍한 척 연기하는 쥐새끼와 연이어 짝을 지어주곤 했다.


덕분에 나는 어른이 없는 무정부 상태로 일 년 이상을 버텨야 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쥐새끼의 미칠듯한 집착이었는데, 등교, 하굣길에 각목 따위를 들고 숨어서 날 기다리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배틀로열'영화도 아니고, 난 늘 사방을 미어캣처럼 보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녀석 때문에 긴장을 놓지 못했다.

어쩌면, 아빠가 말한 대로인지 몰랐다. '얕잡아 보이면 안 되는 것...'그건 나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린 나는 모든 게 교과서의 내용이나 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라서 혼란스러워졌다.



사파리의 사자들은 서열이 철저히 정해져 있다. 숫사자 한 마리는 암사자 여럿을 거느리고, 왕처럼 지낸다. 암사자들은 힘을 합쳐 무리로 사냥을 한다. 힘든 사냥이 끝난 후, 숫사자는 사냥해 온 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가장 먼저 먹어치운다. 그런다고 불평하는 이들은 무리 중엔 없었다. 티비로 본 중엔 그랬다. 나머지들은 늘 그렇듯이, 자기 차례를 얌전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 숫사자, 아빠만의 왕국에서 가족 구성원은 점점 뒤틀리고, 한 명을 무리가 배재하고, 공격하거나 뭉쳐서 괴롭히는 이상한 형태가 시작된 게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다. 언제나 귀엽기만 했던 여동생은 더 이상 작은 아이가 아니었다.


 "밖에서는 빌빌 거리고 힘도 없는 게,
못 이기면 쭈그리고 살아!"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왜 싸웠는지, 둘 중에 누가 먼저 시비를 건지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모두 교복을 입은 채 중학교를 다니는, 두 살 차 여동생과 시끄럽게 말싸움을 한 뒤였다. 동생은 언제부턴가 키도 날 앞지르고, 덩치도 쑥쑥 커졌다. 어느 집이나 사춘기 형제들의 알력 다툼이 있다는 걸 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 정도가 더더욱 심했다. 아빠를 닮은 데가 있는 동생은 갈수록 거칠고 목소리가 커져 사나운 들개 같았다. 그녀는 밖에서 떼로, 들개들처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녀는 아빠 숫사자와 닮은 데가 많았기에.


엄마는 우리 자매나 학교, 친구관계 등에 영, 관심이 없었다. 그저 늘 조용하기만을 원했다. 왜냐면, 엄마는 온통 신경이 사자에게만 가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숫사자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하면 안 됐다. 숫사자는 어슬렁어슬렁 밖으로만 돌았고, 집안을 다스려야 하는 암사자는 외로운 나머지 새끼 사자들 중 덩치가 아이를 아빠의 대체품으로 삼았다. 점점더 덩치가 작은 새끼사자는 오갈 데가 없는 듯 했다.


난 그 집에서 엄마의 그 말대로 '쭈그러진 채' 살았다. 그래야 더 조롱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걷는 모양, 밥 먹는 생김새조차도 웃음거리로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교실의 '쥐새끼'인 그 녀석보다 더 고약하고 교활한 두 명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떠날 수가 없었기에 하소연은 혼자의 중얼거림으로, 매일밤 침대  고인 눈물이 되었다.


이라는 그늘 속에 숨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숫사자도 암사자도, 커버린 형제 사자도 모두가 나를 노린다. 근데 더욱 이상한 것은, 나는 그들을 그때도 사랑했다. 미움은 마땅히 미워야할 상대를 미워하지 못해서 대신 약한 나로 향했다. '괜찮다, 좀 역겨워도...' 생존을 위해선. 그게 초식동물들이 사는 법이니깐. 문 밖에선 표정을 감춰야 해,  내게 수시로 속삭였다. 여기선 감정을 내보이면 안 된다. 바로, 물어 뜯길테니..,


그것이 '동물의 왕국'의 첫 번째 수칙이었다. 약자들이 지켜야할.





Pixabay로부터 입수된 Brigitte JAUFFRINEAU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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