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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Oct 11. 2024

사자의 마지막 선물

사자의 장례식2.

아빠가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커다란 '사탕 박스'였다.


6개월 전쯤 이었다. 

아빠가 준,  투명한 사탕상자에는 캐러멜과 사탕과 껌 같은 게 가득 차 있었다. 보고 헛웃음만 나왔다. 그는 대체 나를 몇 살로 보고 있는 건지.. 그는 이 은밀한 사과의 선물을 엄마에게 전달했다. 아이의 단순함 같은 것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그것의 실제 의미는 지난 일에 대한 '사과'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나를 비웃을 요양이었다. 마흔한 살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뚜껑을 열고 캐러멜 하나를 꺼냈다. 포장을 뜯으려 하니,  굳은 은박지가 조금도 벗겨지지 않았다. 다른 사탕도 꺼내보니, 이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건, 사실상 쓰레기였다. 오래 방치된, 유통기한을 훌쩍 넘긴 예쁜 쓰레기. 엄마에게 이게 대체, 어디서 난 건지 물었다. (그녀는 아빠와 사이, 의사소통을 대신해 주는 대리인이었다.)


"몰라, 어디서 아는 누나가 줬다나... "

'아..., 자기가 어디선가 받고 처치 불가라,

나한테 버린 거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이 장난짓은 어린 남자아이와 비슷했다. 물론, 거기에 더해진 사악함이 돋보이지만. 덕분에 나는 처치불가의 큰 쓰레기를 안게 되었다. 선물의 속 의미는, 내가 널 마음대로 인형처럼 '휙휙' 휘두르고, 버럭버럭 눈깔을 뒤집고 소리를 치고, 너무했다 싶을 땐 살살 구슬리면 돌아오는 애라는 뜻이다. 저 공갈빵 같은 선물은 일종의 표식이자 증거였던 셈이다. 너한텐 '이런 것도 과분해'라는...,


촌극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드러났다,
그 진실이

아빠의 장례가 끝나고, 화장터로 가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검은색 상복의 가족들 모두와 아빠의 수많은 지인, 친구들은 기다란 버스를 타고 화장터로 향했다. 다행히도 구름이 껴서, 한여름 폭염이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착하니, 기나긴 줄의 유족들이 사방에 가득 차, 시외버스 정류장같이 넓은 공간에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더운 한여름에도 돌아가시는 분들이 참 많구나...'


잇단 길고 긴 기다림을 끝낸 후, 이제야 유골을 화장하는 차례였다. 작은 동굴 같은 곳에 가까운 가족들만 있었다. 차가운 시신이 들어간 직 엄마가 갑자기 오열을 터뜨렸다.

"아이고...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가!!

 매정한 사람아..., "


수개월 전까지 연락도 두절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너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평생에 걸쳐, 받지 못한 사랑이 너무나 애석했던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음에도, 숱한 병시중을 했음에도,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전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나선, 자유롭게 하늘로 가버렸기에. 나는 그때만큼은 모든 애증을 풀고, 엄마의 두 손을 '' 잡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한 줌의 재로, 이제 유골함을 안장하러 가는 순서였고, 마지막 망자의 길을 지키고 싶었던 이들이 한 줄로 줄지어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 안장하는 건물로 걸어가는 길에, 아저씨가 무언가 툭툭 엄마에게 말했고, 갑자기 엄마는 부르르 떨면서 "이 자리에서 이런 말을 왜 하는 거야~~!" 하며 화를 버럭 냈다. 아빠의 지인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친구를 가볍게 제지했고, 엄마에게 대신 사과했다. 나는 살짝 앞서서 있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왜요, 그래?!" 하며 가족들에게 물었다. 동생과 그녀의 남편이 허탈한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엄마는 반쯤 주저앉은 채, 화를 식히고 있었다.


연유인즉슨, 아저씨는 아빠의 친친구 중 한 명인데, 느닷없이 사실고백 같은 걸 했단다. 일찌기, 아빠의 지나간 바람피운 역사에 대해서 '그 정도까지 둘이 진지한 아니었다며...' 아빠의 유골함 앞에서 말이다.


'아빠는 대체,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연을 맺고 살아왔던 것인가...'

그 친구는, 아빠의 오래된 과오를 밝히면서, 오히려 그를 생각해 주는 척하고 있었다. 두꺼운 낯짝의 야비한 눈을 숨긴 채, 술을 좀 먹었다면서.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다른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오랜만에 봐도 얼굴이 낯익고, 점잖은 축에 속하는 아빠의 다른 가까운 지인 한 명이 내게 급하게 다가왔다.

행렬에서 벗어난 곳에서, 그는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oo야, 너희 아빠랑 나는 속마음을 터놓고 깊은 얘기도 많이 했어. 너희 아빠는 '네가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라더라. 아빠가 표현을 정말 안 하는 사람인건 나도 알고, 무뚝뚝한 사람이라 내가 표현을 제발 좀, 하라고 충고도 몇 번이나 했었다... 끝내, 못하고 간 거 같지만."


예상치 못한 아빠의 지인의 고백에, 나는 무척 당황했고 금새 눈물이 솟구쳤다. 길 위라 그리 긴 얘기는 나누지 못했고, 그 친한 지인은 못내 가슴이 아픈지 내내 울고 있었다. 즉각, 이 분은 나와 비슷한 부류인 걸 느꼈다. 아빠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끼고 그를 도와주려 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이렇게, 아빠의 상반된 두 친구들은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했고, 연이은 큰 고백들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또한 조금 전, 엄마만큼이나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내가 미처 아빠의 깊은 속마음을 못 헤아린 게 아닐까...' 하는. 억지로 막아둔 댐이 막, 무너져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지막의 순간에. 나는 그에게 철회했던 애정이 실은 깊숙한데 남아있음을 순간에 발견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무너져 내리던 나는, 눈물범벅의 쓰디쓴 얼굴이 되어, 이동하던 차탑승했다.


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울고 있는데, 나머지 가족들은 나를 보면서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난, 울먹울먹 한 채로,  '아빠가...' 하면서, 좌석에 앉아있는 동생과 엄마, 이모에게 차례차레 말하려 했지만, 다들 동상 같은 차가움으로 대했고 이내 고개를 '모른 척' 돌려버렸다. '우린 너의 슬픔 따위엔, 관심이 없어..., '라는 듯한 매몰찬 태도였다. 나는 3박 4일을 같이 보내서,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사이였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었다. 남은 게 허울뿐 이어도...,


나는 장례식에서 그들의 손을 숱하게 잡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숱하게, 그들의 거짓말과 기만들을 모두 잊으려 했음에도. 그때서야 나에게 돌아오는 건, 철저한 무관심과 냉소뿐이란 걸 깨닳았다. 순간, 두 다리는 어디로 갈지 몰라 잠시 머뭇 머뭇대다가, 아무 좌석에나 불쑥 앉았다.


그들의 공통된 차가움과 침묵에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디딜곳은 없는 것 같았다. 잘못 와있는 '이방인'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이방인같은 느낌이 너무나 익숙했다. 평생이라는 동안, 내가 느꼈던 이 소외감이 또 한 번 결정적일 때 드러났다. 역시나, 나는 그들을 위로하고, 다정하게 대해주고 웃어주고 하는 '광대'이자, 상담사이자 좋은 리스너일 뿐.., 그것들은 내 역할이지, 내게  되돌아오는 건 없다. 약자의 굳은 의무일 뿐이었다. 씁쓸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 오히려 고마웠다, 내가 마지막에 조금이라도 착각이나 기대를 하지 않게 돼서. 그렇다, 이것은 좋은 아픔이고, 현실자각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장례가 끝났고, 난 차가워진 머리로 돌아왔다. 그게 그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같은 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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