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한 눈짓을 동생한테 '찡긋'하면서...,그러자 여동생은 그 예쁜. 얼굴에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지.. 얘는 책만 읽어서..' 좀 걱정이라는 투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둘의 오가는 시선을 피하며 눈을 돌렸다. 그래도 순간의 감정을 아예 감출 순 없었나 보다. 볼에서부터 시작된 열이 불그레 귀까지 뜨거워진 것이다.
이어지는 하하호호 즐거운 대화들.
"어릴 땐 공부 잘한다고 학교에서 칭찬도 꽤, 받았는데 활발하게 나가고 해야 했나 봐. 성격이 점점..., "
"그니깐... 책만 봐서는 이상해진다니깐 크큭"
이번에는 둘 다 나를 가리키듯 시선을 나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웃음소리는 조금씩 더 커졌다. 둘이 팔로 서로를 밀치며, 어쩔 줄 몰라하며 '하하하하하하' 그중 한 명은 웃다가 흘러나온 눈물을 닦기까지 했다. 한눈에 봐도, 정말 웃긴 농담이었나보다. 나만 웃지 못하는농담.
처음은 '내얘긴가?'반신반의 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나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카는 책에 정말 푹 빠져있어서 어른들 사이 그 어떤 얘기도 못 들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 와서 보면 그냥 그 상황이 민망해서 모른척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다시,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이 내 대답을 재촉하는 여자 두 명. 그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난 법정에 출두해 답변을 해야 되는 피고인처럼, 몇 초간 판사인 그들 앞에 서있었다. 그 짧은 찰나에, 무거운 추같은 돌멩이가 내 가슴에 '쿵' 내려앉았다. 몇 초간의 침묵...., 나는 이 웃지 못할 연극을 마쳐야 하는 연극배우이자 피고인이 되었다.
어떤 대답이 나를 제외한 그 모녀를 웃기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러자 지겨워진 판사가 날카로운 비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시 한번 나를 '쿠욱' 찌른다. 동생의 까르르르 경쾌한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마구 울린다.
"본인이 이상한 거 모르나 봐 ㅎ"
얼굴을 푹 숙인 채로, 죄를 지은 피고인은 하는 수없이 말했다.
"내가 왜..(이상해)"
그러자 그 둘의 깔깔깔 소리가 넓은 거실에 한가득 퍼져나갔다. 이제 둘 다 웃겨 죽겠다는 듯 밤색 두터운 식탁을 '탁탁탁'하며 내리친다. 여전히 조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책의 활자만 보고 있었다.
"저것 봐! 또 본인 인. 정 못하고, 쯧 넘 예민하다니깐"
"성격이 활발하고 좋은 게 최고야! 역시ㅎㅎ"
있는지조차 몰랐던 약간의 자존심이 그 말에 '부르르르'일어섰다. 누구든지 한 대라도 맞아라.
"엄마 닮. 았.겠지~그 성. 격"
그러자 이 하이에나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 표정으로 '저것 봐!' '역시 본인을 인정을 안 해' 그들에겐, 다행히 예상했던 대답이었는지 연신 속삭이며 까르르르 웃어댔다. 나는 그 순간 내 귀를 막고, 내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초라한 대답으로 연극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내 만족한 그들은 잡힌 사냥감을 한 번씩 찔러대며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이때부터는 무슨 말이나 반응을 보여도 조롱거리만 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이상한 성격을 역시나 증명했다고 할 것이고, 화를 내면 역시 성격이 개차반인 애.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가 될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 정도 말도 못 받아들이는 너는 역시나 정신이 뭔가가 틀어져, 문제가 있는 듯 말할 것이다. 사회성도 극히 떨어져서 흔한 농담을 농담처럼 받지 못하고 '버럭질'하는 애로 몰고 갈 것이다. 슬프게도 너무 익숙한 순서였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이 '무력감'.
오늘은 점심을 잘 먹이더니 '점심값'은 이걸로 하라는 거구나. 공짜로 주는 법은 없으니. 평생해온 대로'꾸꾹' 참고 듣고 모르는 척하라고. 이상하게도, 맛있었던 점심이 위를 누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들과의 만남, 대화 후에는 항상 이어진 신체 반응이었다. 30년 넘게, 그 이유를 난 몰랐으나 속이 불편한 체증과 두통과 멍함이 이어졌고, 소화는 그날 밤까지 되지 않았다. '위가 그저 약한 거지' 평생 내 위탓을 했다. 아무 죄 없는.
어린 시절부터 체념을 몸으로 배우고 습득했다. 그들의 세계는 아빠가 자주 보던 야생의 세계, '세렝게티'와도 같은 세계. 약자는 늘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약자 처지를. 그래야 한 번씩 동정 비슷한 손길이나 시선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깐. 이곳은 세렝게티 초원. 나는 쫓기는 얼룩말. 순하디 순한 초식동물. 아무도 해치지 못하고 피해도 주지 않지만 언젠간 물려야 하는 초식동물. 어릴 때부터 줄곧, 이 순간만 버티면 내 방이란 동굴에서 밤만이라도 쉴 수 있었다. 어떤 날카롭고 경멸적인 시선도, 나만 웃지 못하는 농담도. 비난과 고성의 세렝게티는 나 같은 '약자'를 허용하지 않았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