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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Oct 23. 2024

돼지를 길들이는 법

그들이 한 거짓말 1.


이모는 재밌다는듯 깔깔깔 웃었다.

"얘도(너희 엄마도)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면, 그렇게 속없이 좋아했어~"

엄마의 큰 언니인 이모가 신난 이유는, 조카인 나와 엄마 간에 공통점을 자신이 발견했다는 반가움에서였다. 엄마는 두 딸들 앞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일화가 이내 부끄러운지 좀 머뭇거리다가,

 곧 이모의 웃음소리에 멋쩍게 화답했다.

"맞아, 그랬지. 그게 맛있더라고..."


이모의 엄마에 대한 일화를 들으며, 몬가 익숙한 데자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게 왜 그런지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작년 내 생일날이 떠올랐다. 엄마는 현관문에서부터 과하게 호호거리는 얼굴로 한 손에는 큰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이상했다, 엄마가 이럴땐(눈치를 볼 때는) 대체로 그다음은 문제가 있을 때였다.


"엄마 그건 모야?"

"응, 너 좋아하는 아구찜 포장해 왔어. 일부러 거기 맛집 알지? 멀리까지 갔었다야~"

"엥, 나가서 먹는 거 아니었어?"

"아니.. 아빠가..."


엄마는 내집에 온 지 일분만에, 자꾸 현관을 쳐다보며 빨리 나가야 할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내뿜는 것이었다. 어제 통화로 '어디 식당에서 맛있는 거 먹자'라고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얼마 전, 엄마가 내게 한 잘못을 '먹는걸'로 대충 무마하고 가려는 거구나...'라는 느낌이었다. 마침 '띠리리'하며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고, 쫓기는 사람처럼 '나 갈게, 챙겨 먹어라'라며 현관을 나섰다. 휴대폰 스피커로 아빠의 고래고래 성화가 들렸다."빨리빨리 안 나오고 모하는 거야!! " 그 순간, 나도 엄마도 얼굴이 불그레해지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치, 나와 엄마가 꾸물거린 것 같은 재촉의  뉘앙스 때문이었다.


엄마가 나간 직후, 나는 매스꺼움 같이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조급해지고 내가 바보가 듯한 느낌이었다. 남은 것은 엄마의 쇼핑백, 거기엔 아구찜 박스가 있었다.


이모가 말한, 엄마의 어린시절 일화는 온 가족이 그녀를 구박한 후, 희생양을 손쉽게 달래는 방법이었다. 그 방식이 엄마의 이 '쇼핑백' 과 일치했다. 엄마나 이모는 그게 무슨 재밌는 일화인 것처럼 유쾌하게 떠들었지만, 사실 이모는 엄마의 그런 '단순함'을 비웃는 것을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얘는 내가 얼마든지 괴롭히고, 욕하고 버럭버럭을 해도, 아이스크림 하나에 풀리는 애지...' 안타깝게도, 그런 이모의 속뜻을 엄마는 짐작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이모가 어린 자신을 챙겨주는 뜻으로 고맙게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듣는 딸들에게는 달랐다. 교활한 '비웃음'이 느껴져 전혀 유쾌하지도 좋게 받여들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장 무도회처럼 다들 그 순간 이모를 따라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그저 웃으면 즐거운 농담이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러기 위해 누군가 하나는 희생해야 했다. 그 희생양이었던 엄마는 어린 시절에 형제들에게 수시로 매질을 당하거나 욕받이가 됬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버린 것 같았다. 그저 아이스크림 하나에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그러나 나는 그녀와 달랐다. 작년 내가 연락을 차단한 후, 엄마는 몇 차례 반찬이 포장된 쇼핑백을 문앞에 두고 갔다. 한 번은 외출 중에, 다른 한 번은 노크소리를 고의로 무시하는 중에.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안 되겠는지, 비밀번호를 몇 차례 누르다가 성공한 것이었다. 몇 차례의 서로의 오고 가는 속사포와 고성들, 그리고 엄마는 분노로 눈이 뒤집힌 채 버럭 소리쳤다.


"내가 그래도 너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안 했냐!! 이 싹수없는 #@야!!"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먹이고 입혀줬다. 예상한 말이었고, 들어도 별 타격도 없는 게 나도 어지간히 내성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억울해 보였다. 내가 일 년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되물었던 것도 그 말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나 밥 해주고 굶기진 않았는데...,학교도 보내줬는데..'

내가 너무 한 게 아닌가, 내가 너무 오버해서 내 과거를 과장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저들 말대로 내가 '피해의식'은 아닌가.., 지난 겨울 수없이 묻고 또 물었던 바였다. 그렇게 누구도 확답을 해줄 수 없는 나만이 아는 정답을 구하느라, 끝나지 않는 괴로움에 허덕였다. 그렇게 퍼즐게임을 하듯 일년여를 보냈다. 그들의 거짓말은 정말 진실같았고, 그 증거를 찾지 않으면 믿을 수 밖에는 없어보였다.


그들의 거짓말 중 하나는 내가 무척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부르던 별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쥐새끼'나 '돼지새끼'로 불렀다.

'쥐새끼'가 된 까닭은 사춘기시절, 내가 밤늦게 주방을 뒤적거리는 게 쥐새끼 같다며 부르던 별명이었다. 다른 돼지새끼는, 20대 후반에 내방에서 간식을 먹으며 영화등을 보는걸 보고 '게으름뱅이'의미로 불렸다.

나는 내가 심하게 게을러 빠져서, 백수같은 삶을 사는 사람인 로만 알았다. 39살까지도 그렇게 여겼다. 엄마는 내가 게으름뱅이라는 증거로 손가락이 길기에 '게으른 팔자'라고 늘상 떠들어댔고, 동생은 내가 늦은 시간에 몰래 주방에 나와서 부스럭댄다고 '쥐새끼'라며 아빠와 함께 웃어댔다.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그들이 말한 증거들을 찾으며 깨달았다. 나는 심하게 게으르다고 모두가 핀잔을 때도, 놀면서 용돈만 받고 있었던 적이나 백수로 지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걸 알았다. 젤 심하게 핀잔을 들을때도, 나는 4일을 학원에서 일하고 이틀은 과외수업을 하느라 나가 있었다. 후에 밤중에 들어와 잠깐 쉬면서, 미처 못챙긴 밥을 늦게 먹고 티브이를 본 게 다였다. 모습을 보고 먹고 뒹굴기만 한다고 '돼지새끼'란 별명을 지은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이 키우는, 돼지가 돼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그 돼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또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들은 내 마음은 관심도 없으면서, 내 외모나 옷차림에만 온통 집중하는 특징이 있었다.내가 꼼짝하지 못한 건, 한마디라도 토를 달면 어김없이 호통을 치며 '농담한 거 가지고 왜저래!' 라며 이차, 삼차로 피해의식 있는 사람이 되는 레퍼토리가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에 나는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돼지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맞는 거였다.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도 나를 그런 게으르고 피해만 주는 인간으로 생각했다. 그게 학습된 세뇌였다는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너무 진실같고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 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진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의심을 품고, 마치 남처럼 일 년여를 파헤치자, 이것 말도 안 되는 날조된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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