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흐린 날이었다. 이상기후인지 몇 날이고 여름 같은 날이 이어졌고 나는 반팔 위에 얇은 셔츠를 걸쳐 입고 나갔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끼고 단골카페에 들렀는데, 주문을 하고 앉으니 하필이면 먹구름이 점점 하늘을 뒤덮는 모양새였다. 아직 1시인데, 정오의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비가 쏟아질 거 같았다.
'어쩌지,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나는 두어 시간을 노트북으로 딴짓만 하고 있었다. 할 일을 생각하고 왔건만 '모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면서...'
그러다 눈이 피곤하면 한 번씩 전환 하기위해 넓은 창밖을 봐주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 쾅쾅!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랬다. 장대비가 후두두둑 떨어지더니 무섭게 쏟아지는 것이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서 이대로 나가면, 보나마나 꼴딱 젖은 채, 바람을 얼굴로 대차게 맞으며 걸어가는 실연당한 여주인공이 될 거 같았다.'큰일이네.' 나는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산을 어쩌지.. 집에 갈 때까지 좀 더 여기서 버티기로 했다. 아마 한 시간이면 좀 멈추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큰 우산하나에 두 명이 붙어서 걸음을 재촉하는 게 보였다.
그건,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초등 고학년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책가방을 진 채, 자전거로 통학을 하다가 갑작스레 비가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들고 온 우산이 하나였고 그것도, 파라솔같이 크기만 큰멋없는 검정 우산이었다.(확실히 아이들용은 아니었다)
세찬 소나기에, 아버지의 한쪽 어깨가 흠뻑 젖어들었다. 아들은 그게 당연한지, 아버지에게 몸을 맡긴 채로 마치 어미새의 품을 파고드는 아기새처럼 연약하게 기대고 있었고. 걸어가는 내내 그의 곁이 안전하다는 걸 잘 알고, 자기 몸을 맡겨도 된다는너무 당연한 믿음 같은 게 보였다.
'벽돌보다 더 단단한 그 무언가가' 그 둘의 사이에는 끈끈하게 존재했다. 나는 느껴본 적 없는 단단한, 안전한 그 존재.
언제든 믿고 부를 수 있는,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아빠란 존재.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시큰해졌다.
나도모르게 그들의 귀갓길의 대화를 상상해 보았다. 아들은 종달새같이 재잘거리겠지.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그리고 우산은 이게 모야~'아들은 이런 부러운 투정을 부리고, 그럼 아버지는'아빠가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거나 들고 왔지 모~허허허' 웃겠지. 둘은 그렇게 찹쌀떡처럼 서로에게 밀착해서, 엄마의 따뜻한 밥을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히히힛, 허허허' '아, 배고프다' '그렇지, 뭐 먹을래? ' '허허허 학교에서 어땠는데?'이런 대화들을 나누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겐특별할 거 하나 없는 일상적인, 가족 간에 포근하고 소소한 대화들. 그래서 그들에게 한없이 눈길이 갔을까.., 아마 그날 내꿈엔 다정한 아빠와 딸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