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Your Way? Run My Way!
2024년 5월 12일, 나는 생애 첫 마라톤대회에 나갔다. 연습도 없이, 10km 코스로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실전
참고로 난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살면서 5km 이상은 딱 두 번, 그것도 겨우 겨우 뛰어봤던 내가 갑자기 덜컥 마라톤 10km를 신청했다. 그러면 연습을 해야 하는데, 직장인 대학원생은 진짜 매일매일 바빴다. 연습은 커녕, 휴식도 잘 못취한 상태로 과연 내가 10km를 뛸 수 있을까? 마라톤 당일 아침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또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살면서 이런 거 따진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안되면 걷지'라는 마음으로 일단 출발했다. 그래, 인생은 실전이지!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할수록, 뛰러 나온 복장으로 나온 사람들이 몰렸다. 20대에 한창 수영대회를 다니던 시절, 수영복 입은 포스만 봐도 수영 실력이 대충 보였는데- 마라톤 업계도 마찬가지 인가보다. 출전자들을 구경하며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대회장에 도착했다.
3.2.1. 출발!
출발선에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치며 뛰기 시작하는데 그 분위기가 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총성과 함께 환호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그리워 마라톤을 또 나가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RUN YOUR WAY
분명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안되면 걷지 뭐'라고 마음먹고 나왔는데, 막상 뛰다보니 오기가 생겨서 '걷지만 말자'로 마음이 바뀌었다. 혼자 뛸 땐 달리기가 참 재미없었는데, 다른 참가자들과 같이 뛰니까 묘하게 힘이 되었다. 내 앞에 나와 속도가 비슷해 보이는 회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나만의 pacer (pace maker)로 잡았다. '그래, 저 사람만 따라가다 보면 완주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뛰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의 다음 pacer는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으로 계속 바뀌었다. 문득 앞사람의 티셔츠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RUN YOUR WAY. 뉴발란스에서 문구를 참 잘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 그래, 바로 이거다. RUN MY WAY!
나만의 pacer
그렇다. 마라톤은 함께 달리지만 남들만 따라가다보면 나만의 pace를 놓치고 만다. RUN MY WAY,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뛰다 보니 나의 pacer는 타인이 아닌 결국 나 자신이 되었다. 사실 첫 대회는 어차피 완주만 해도 신기록이 아닌가? 기록은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끝까지 걷지만 말자며 마음속으로 되뇌며 결승선이 보일 때까지 뜀을 멈추지 않았다.
8km, 9km, 9.5km, 9.8km... 10km! 완주!
첫 출전한 마라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pacer가 될만한 사람만 찾아서 남들만 따라 뛰고 있었는데 천천히 나만의 호흡에 발을 맞추다 보니 나만의 속도로 완주하게 되었다. 나에게 달릴 수 있는 힘이 있는 줄 몰랐다. 내가 10km를 쉬지 않고 뛰다니! 앞으로는 너무 나를 과소평가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라고 내 편에서 응원해 주기로 했다. 아침에 출전을 포기했다면 한동안 나에게 10km 마라톤은 머나먼 목표였겠지?
혹시 삶이 권태롭거나 용기와 희망이 필요하다면 마라톤을 도전해 보는 것을 조심스레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