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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후 찾아온 몸의 이상 신호

1장 2화

by 곤즈르

2024년 6월, 나는 첫 번째 유산을 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두 줄이었지만, 아기집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수치만 올라갈 뿐, 내 몸은 임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모든 가능성을 붙잡고 싶었지만,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유산을 받아들이고, 소파술을 받는 것.


소파술 전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미주 신경성 실신을 경험했다. 위장이 쥐어짜듯 아팠고, 온몸이 축 늘어졌다. 시야가 흐려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갑작스러운 설사와 함께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응급실이었다.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반깁스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날 예정된 소파술을 준비해야 했다.


수술 전, 싸이토텍(자궁 수축제)을 삽입했지만, 통증은 더욱 거세졌다. 자궁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 속에서 걸을 수도 없었다. 결국 119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고, 그대로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가 들어가면서 모든 감각이 사라졌지만, 깨어난 후의 고통은 여전했다. 빈자리처럼 느껴지는 배, 깊숙한 곳에서 오는 공허함. 나는 그제야 내 몸과 마음이 철저히 무너졌음을 실감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9월, 유산 후 세 달이 지나 출근길에 오르던 어느 날. 다시 미주 신경성 실신의 전조 증상이 찾아왔다.

속이 니글거렸고, 위장이 불편했다. 몸이 무거웠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환승역에 도착하자마자 시야가 흐려졌다. 지난번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급히 화장실을 찾아갔지만, 설사와 함께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끝까지 창백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웠지만 도저히 갈 수 없었다. 결국 팀장님께 연락을 남겼다.


역무실에서 잠시 누워 있었지만 증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남편에게 연락해 근처에서 수액을 맞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간 동안 수액을 맞았지만, 여전히 몸이 무거웠고 기운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빗속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들처럼 성실하게 살았을 뿐인데,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도착할 무렵,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다. 마치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통이 심해졌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명치 부근도 콕콕 쑤셨다. 남편도 걱정이 되어 밤늦게 바로 집으로 왔다. 결국 다음 날 신경외과를 찾아 뇌혈류 검사, 뇌파 검사, 자율신경계 검사, 기립성 저혈압 검사까지 받았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저 혈압 27. 의사도 놀랄 정도였다. 진단은 기립성 빈맥 증후군. 자율신경계가 무너져 있고, 기립성 빈맥이 있는 사람들은 미주 신경성 실신을 겪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실신하는 것이 아니기에 약 처방은 어렵다고 했다. 치료법은 단 하나, 잘 쉬고, 잘 먹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뿐이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앞으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몸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회복이란 게 이렇게 더딘 걸까.


나는 언제쯤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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