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화
유산 후,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았다.
출근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이 가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밤이면 뒤척이며 잠을 설치고, 아침이면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아이를 잃었다는 현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퇴근길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가끔은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했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내가 견디면 달라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시간은 해결해주지 않았다. 점점 쌓여가는 피로와 무기력함이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간단한 문서 작업조차 한없이 느려졌다.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병가를 내는 건 망설여졌다.
‘이런 걸로 회사를 쉬어도 될까?’
나약해진 것 같아 자꾸만 스스로를 다그쳤다. 버티는 게 답일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것이 공포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나는 팀장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팀장은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겠다. 일단 2주만 쉬어보자. 내가 상무님께 추가 연장을 요청해볼게.” 그의 말에 그동안 꾹 참았던 감정이 무너질 뻔했다. 다행이었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하지만 상무의 반응은 달랐다. "2주 단위로 쉬는 게 어떻겠어? 너무 오래 비우면 업무 공백이 크잖아." 그렇게 내 병가는 허락이 아니라, 배려라는 이름의 조건부 허가가 되었다.
팀장은 상무에게 추가 연장을 요청했고, 결국 2주를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병가는 한 달이 되었다. 회사는 한 달 이상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내 몸을 위해 쉬는 것이었지만, 내 연차를 소진하면서까지 눈치를 봐야 했다. 참 씁쓸했다.
한 달을 쉬면서 내 몸은 점차 회복되었다. 심박수를 올리기 위해 경사를 높인 런닝머신을 걸었고, 요가를 하며 긴장을 풀었다. 물론 고개를 젖히는 동작 때문에 이석증이 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일수록 기운이 돌아왔다. 몸이 나아지는 걸 느끼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쉬니까 나아지는구나. 그런데, 다시 돌아가도 괜찮을까?’
몸은 나아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정말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