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미 Jul 08. 2022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고난은 느닷없이 다가온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라 여기고 가벼이 아침을 열었으나 돌아보면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큰 태풍을 만나 방향키를 돌리고 예상치 못한 물길로 떠내려가야 하는 날. 엄마와 나의 가족에게는 2020년 12월 10일이 그랬다.

목요일이었고 겨울 초입의 추위가 느껴지는 오후였다. 12월의 바람을 우습게 본 죄로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어깨를 움츠렸다. 목도리를 챙기지 않은 아침의 나를 속으로 나무라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엄마는 잔병치레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일이 잦았다. 매번 그 과정을 도맡아 해 온 나였기에 그날 역시 입원 절차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과로를 하거나 겨울이 찾아오면 말썽을 부리는 엄마의 방광이 이번에도 문제였다. 며칠 전부터 아랫배와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에 가족들 모두 엄마의 방광염이 또 도졌구나 직감했다.


별 의심 없이 다니던 종합병원의 신장내과로 향했고 엄마를 오래 봐온 의료진은 “재발했네요. 무리하셨나 봐요. 통원 치료하시겠어요, 아니면 저번처럼 며칠 입원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홀로 생활하는 엄마가 식사를 챙기기에도, 한밤중 찾아오는 통증을 달래기에도 집보다는 병원이 좋을 것 같았다. 엄마도 아플 때 혼자 있으

면 서럽다며 입원에 동의했다.


우리 모녀에게 병원 생활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허리에 인공뼈를 삽입하는 수술과 폐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며 엄마는 환자로, 나는 보호자로 병실을 내방처럼 누볐던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다. 대상포진이나 신장결석같이 우리 가족에게는 이제 사소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엔 입원을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실로 향하기 전, 처음 받는 검사에 엄마가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통과의례일 뿐이라며 안심시켰다. 검사 후에는 엄마도 해보니 별것 아니었다며 가벼이 웃어넘겼다. TV 뉴스에서 보던 면봉으로 코를 찌르는 모습을 드디어 본인도 재연해 봤다고 말하면서.


체온도 정상이고 아랫배 외에 통증도 거의 없었기에 입원 수속을 마치고 엄마를 혼자 병실에 두고 오는 마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덕에 보호자가 병실에 같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고마움마저 느꼈다.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식탁 위에 놓아둔 달달한 빵을 먹고 뜨뜻한 이불속에 눕겠다는 의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가족 채팅방에 엄마의 경미한 증상들을 읊은 후 병원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후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란 소식을 전했다. 오늘의 보호자 역할을 무사히 마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오늘 미션은 잘 끝냈구나. 그래도 이번엔 이만하길 다행이다!’     


다행이라 안심하던 나의 속삭임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불행을 맞이하는 외침으로 바뀔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다음날 아침 8시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어제의 피로로 잠이 덜 깬 채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미야, 미야. 뭔가 이상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왜 엄마? 의사 선생님 다녀갔어?"


"아니, 간호사가 왔는데, 뭐라 뭐라 하면서 이 방에 못 있는다고 짐을 챙기라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방을 옮기라고? 아, 다인실에 자리 나면 옮겨 달랬는데 그 말인가?”


“아니, 어제 코로나 검사한 거 있잖아. 엄마랑 같이 검사한 사람들 중에 누가 확진이 나왔나 본데, 그래서 병실을 옮겨야 된다는데? 빨리 준비하라고만 하고 휙 나가버려서 자세히 묻지도 못했다.”


“뭐? 엄마랑 같이 검사받았던 입원 환자 중 확진자가 있었나? 알았어요. 일단 진정하고 계셔 봐요. 간호사실에 지금 통화해 볼게요.”     


목소리에서 엄마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간호사실로 전화를 걸었다.     


“저, 609호 환자 보호자인데요. 혹시 어제 입원환자 중에서 확진자가 나왔나요? 엄마에게 병실을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요.”

“네. 보호자분이 어제 오셨던 따님이세요? 그게, 어머니 어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코로나 확진입니다. 저희도 조금 전에 통보받아서 보호자분께 곧 연락을 드리려고 했어요.”

“네? 잠시만요! 어제 입원한다고 검사했던 분들 중 한 명이 아니라, 바로 저희 엄마가 확진이라고요?”

“네.”

“혹시 검사 결과가 잘못되거나 다른 분과 바뀌었을 가능성은 없나요? 저희 엄마 열도 없고, 기침이나 인후통도 없고 증상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다른 분들은 다 이상 없고요. 환자분만 확진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저희 병원에서 격리할 수 있는 공간인 1인실에서 대기를 하시다 저희도 보건소 안내에 따라 차후 조치를 할 거고요, 보호자에게도 지역구 보건소에서 전화가 갈 겁니다. 보호자 분도 접촉자이시니 어디 가지 말고 대기해 주세요.”     


우르르 쾅!

엄마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소리가 나의 머리에 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손을 떨며 들고 있던 전화기 화면을 보니, 2020년 12월 11일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수다를 즐기던 엄마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살며 가족과 이웃 사이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소한 그 행복을 한동안, 아니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보건소 전화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아차, 내가 또 뒤통수를 맞았구나! 이번엔 별일 없을 것이라며 병원을 나서던 나의 안일한 태도가 하늘의 비웃음을 샀구나.’     


엄마와 나의 삶 앞에 예상치 못할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오가지도 못하고 엄마 홀로 위태롭게 서 있어야 하는, 외롭고도 기나긴 코로나 회복을 향한 항해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