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안과 밖에서 글쓰기 영감을 찾는 법
여름이 오면 저희 가족은 참 바쁩니다. 가족들 생일이 여름에 거의 다 몰려 있거든요. 어려서부터 그랬습니다. 엄마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생일날만큼은 푸짐한 잔칫상을 받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하루를 보냈죠. 식구들끼리 선물도 주고받고 기념사진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고 다들 생업이 바쁘다 보니 생일을 모두 챙기긴 불가능해졌어요. 그래도 생일날은 잊지 않고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고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짜를 정해 가족 잔치를 벌입니다. 잔치라고 별 것 있겠어요? 함께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풍경 좋은 곳에서 산책을 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코스입니다.
올여름도 '행복이란 게 참 별 것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가족들을 바라보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으로 남기는 찰나가 다른 겁니다. 평소에도 랜드마크 앞에서 단체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제 남편은 매번 온 가족을 카메라 앞에 모이게 하죠. 직업이 요리사인 남동생은 내내 점잖게 있다가 식당만 들어서면 눈은 소년처럼 반짝거리고 핸드폰도 모자라 차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 꺼내옵니다. 새 요리가 나올 때마다 이리저리 구도를 달리하며 찍는 동생의 모습이 어찌나 신중한지 모두 숨죽이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얼음’이 되어 기다리곤 해요. 70대인 엄마는 노년 여성들의 핸드폰에 가장 많다는 꽃 사진을 찍느라 산책길에서 제일 분주하죠.
그럼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무얼 찍느냐고요? 저는 가족들의 뒷모습에 집착을 한답니다. 뒷모습까지 신경 쓰거나 치장하는 사람은 잘 없잖아요? 일부러 가족들을 뒤따르며 혹은 몰래 다가가 파파라치처럼 뒷모습을 찍으면 다들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들이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과 손을 잡거나 어깨에 팔을 두르는 몸짓의 관찰자가 되어 그 기억을 사진 속에 가두고 싶은 게 제 욕심이랍니다.
이렇게 찍은 사람들의 뒷모습 사진은 나중에 제가 글을 쓸 때 좋은 소재가 되죠. 예를 들어 처음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간 가족들이 귀국길에 찍은 사진은 몇 년 후 쓴 제 에세이집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조카와 친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스마트폰을 보는 풍경을 촬영한 후에는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책을 쓰기도 했죠. 그러고 보니 그동안 찍은 사진들의 용도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삶 속에서 애정하는 대상이나 좋아하는 시간을 주위 사람들의 뒷모습과 연결해 글로 표현하도록 돕는 '애호의 표상'이 아니었을까요?
혹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나 잊지 못할 시절에 관하여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은데,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사진첩을 열어보세요! 저처럼 언젠가 무심코 찍은 과거의 사진이 현재의 내 감정과 이성을 건드려 창작 욕구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활용해 일상에서 글쓰기 영감을 모으거나 사진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들은 꽤 많습니다. 가령 제가 평소 팬이라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정세랑 소설가는 가끔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립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흘리거나 버리고 간 물건들을 촬영한 사진을 여러 장 연결해 소개하는 거죠. 낡은 머리끈이나 곱게 접은 손수건, 부러진 우산처럼 익숙한 물건부터 멀쩡한 과일이나 채소, 따지 않은 캔음료, 곱게 벗어놓은 신발까지 도대체 누가, 어쩌다 흘리고 갔는지 궁금한 사물들도 있습니다. 작가가 길 위의 다양한 물건들을 찍어서 하나의 주제로 묶어 제시하면, 보는 이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을 펼쳐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이번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사례를 들어볼까요? 그는 '자전적 소설'의 대가로 불리고 작가 역시 자신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아니 에르노의 작품 중 <<사진의 용도>>는 연인인 마크 마리와 함께 쓴 책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 후의 풍경을 카메라로 찍고, 사진 속에 보이는 장면과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작가가 개인의 사진과 경험담을 도구로 사랑과 욕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사진과 글이 더 많은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고, 읽는 이에 따라 그 의미가 무한대로 확장되어 나갑니다.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 일! 이렇게 매력적인데 우리도 안 해볼 수 없겠죠? 일단 사진첩에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사진을 고릅니다. 그리곤 그 장면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서술하는 연습부터 해봅시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이라면, 가만히 들여다보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찍은 것인지부터 설명해 봅니다. 장면 속 사물들은 무엇이고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좋습니다. 독자들이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장면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끝났다면 이제 사진 바깥의 세계로 이야기를 펼쳐 볼까요?
사진 너머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풀어낸다면 사진이 하는 표현과 글이 하는 표현이 더해져 보다 풍성한 정보와 여운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방법은 방송작가나 시나리오 작가들에겐 익숙한 방법이에요. 가끔 방송이나 영화를 보다 ‘이 작품은 초보 작가가 썼나 보군’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이미지를 그대로 성우의 내레이션이나 배우들의 대화로 한번 더 이야기할 때입니다. 반면 내공이 있는 작가들은 장면의 의미를 짚어주거나 시청자나 관객들이 프레임 밖까지 상상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답니다. 이미지와 글이 반복되는 내용 없이 서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때 보다 깊고 넓은 작품이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아니 에르노가 쓴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고 해요. '고작 사진 한 장'이 아니라 당신만의 근사한 세계로 독자를 이끌 ‘무한한 가능성의 안내자’로서 자신의 사진첩을 마음껏 탐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저 단순히 사진에서 그리고 현재의 구체적인 흔적에서 내가 이중으로 매료되었던 것들을 탐색하여 하나의 텍스트 안에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지음. 신유진 옮김.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