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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김사장 Jul 20. 2018

에스프레소를 입에 한가득 넣고 털어버리는 일

로마식 고진감래를 소개합니다.

유달리 더웠던 초여름의 6월, 젤라토를 먹으며 로마의 길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한 나는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커알못이 모르고 뛰어들어간 카페는 타짜도로라는 카페였다, 타짜도로는 판테온 신전의 점심을 알리는 1시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로마 커피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나는 쭈뼛쭈뼛 가게로 들어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즐겨마신다.'

라는 단 하나의 지식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Buon. (안녕), Espresso per favore! (에스프레소 하나 주세요) "

   나는 어색한 이탈리아어를 뱉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갈빛의 에스프레소가 한잔 놓여있었다. 하얘진 머릿속과 대비되어 에스프레소의 갈빛은 더욱 짙게 보였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그것과 어쩔 줄 몰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설탕을 넣고 한입에 털어 넣어"

   점원이 이야기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에스프레소 잔에 설탕 한 봉지를 가득 넣었다. 그러고는 다이빙을 하는 사람처럼 심호흡을 뱉었다.

이내 나는 뜨뜻미지근한 에스프레소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 얼굴은 쓰디쓴 깊은 맛을 담아내기에는 표정이 부족했다. 쓴 한약을 코막음 없이 먹었을 때와 고수를 한 움큼 씹었을 때, 생 인삼을 와그작하고 씹었을 때와 같은 씁쓸함은 비교할 수 없었다. 쓰디쓰다. 몹시 쓰다. 그 어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소주가 받치지 않은 날 억지로 들이킨 한잔처럼, 강하게 찡그린 눈과 더 이상 움츠릴 장소가 없는 미간이 표정을 만들어냈다. 에스프레소가 혀를 지나 목을 거쳐갈 때쯤 혀끝에서부터 미묘한 미지근함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 맛은 이내 달콤함으로 다가왔고 입안 전체에 다디단 느낌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쓰디쓴 소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뒤 톡 쏘는 콜라의 맛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로마식 고진감래의 발견이었다.

   "부오노! 부오노! 부오노! (맛있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연달아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번 달 초,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보여주신 귀하의 인사이트와 열정에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한정된 선발 계획상 귀하께서는 본선 합격의 대상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아쉬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1차 서류를 합격했던 S사 인턴십에 떨어졌다. 평소라면 금방 털고 일어났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확실히 붙을 수 있다며 기대에 가득 찼었기 때문이다.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쓰디쓴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이제까지 느껴왔던 실패 중 가장 강했다.

   "떨어졌네 떨어졌어. 아들이 떨어졌네. 하하하"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기색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만해요, 가뜩이나 짜증 나 죽겠는데"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잘 떨어졌는데"

    엄마의 얼굴에 능청함이 스쳐갔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나의 어조는 핑계를 대려는 것 같은 스타일로 차츰 바뀌고 있었다.

   "너. 만약에 붙었어봐. 기고만장하게 주제도 모르고 한껏 코만 높아졌을걸? 또, 네가 제대로 준비하고 면접을 보러 갔냐고. 그건 또 아니지. 실컷 놀 거 다 놀면서 그렇게 입 벌리고 있으면 떨어질 거 같아? 둘 중 하나만 골라서 해 이것저것 손 벌리지 말고. 하나만 딱 잡으란 말이야."

   엄마가 이렇게 밀어붙이며 나에게 논리로 무장한 팩트를 쏟아냈다. 나는 밥맛이 하나도 없었고, 그 어떤 대화 때보다도 기분이 뻑뻑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아무론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기분도 씁쓸한 게 엄마의 꾸중까지 들으니 더욱 마음이 써졌다. 그때는 그랬다. 이후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 위치를 알려고 노력했다. 내가 현재 가진 게 무엇이 있는지 파악했다. 그리고는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차렸다. 그렇게 나의 슬럼프는 차츰 줄어들었다.


  시간이 흘러 메모장에 적힌 로마식 고진감래를 들여다보았다. 쓰디쓴 씁쓸함 뒤에 찾아오는 단내가 마치 내가 겪었던 슬럼프 같았다. 엄마의 충고는 쓰디쓴 실패 후 나를 위로하는 설탕이였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이런 경험이 종종 있다. 좋아했던 사람에게 이별을 받았을 때나 일을 하다가 큰 실수를 했었을 때, 영문도 모르는 고통를 겪었을 때, 엄마가 크게 아팠을 때. 모두 그랬었다. 그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나를 강하게 휘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끝에는 미묘한 단내가 존재했다. 위기를 극복했거나 당시 과오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배웠을 때가 그랬다. 에스프레소를 맛봤던 그 경험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영감을 받은 듯 메모장에 기록했던 기저에는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경험의 동질감이 있었다. 그 덕에 요즘은 나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는 나름의 해소 방법이 생겼다. 그것은 에스프레소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하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커피 마시듯 털고 나면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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