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글리 Dec 05. 2018

엄마 아빠, 우리 유럽여행이나 갈까?

엄마 아빠와의 여행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지 몰랐다

엄마.

엄마란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은 엄마가 아프면서부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는 내게 있어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당연한 존재, 공기 같은 존재였다. 엄마가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는 내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함께 TV를 보고 "엄마~!"하고 부르면 언제든 "또 왜!"하며 내 방문을 열어젖히는, 언제든 내가 닿는 곳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도 엄마는 내가 전화를 하면 바로 받지 않는 때가 없었다. 반대로 내 핸드폰엔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엄마는 내게 당연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다. '엄마'란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맺힌다는 이야기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때문이 아닌 미안함때문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엄마는 아팠다. 뭐든 어려움 없이 해내고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엄마, 언제든 그 뒤에 숨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던 엄마의 등이 한없이 작아졌다. 우리 가족이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서울에 따로 산다는 이유로 나는 그 고통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엄마는 TV 보는 걸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여행 다니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한국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테마기행이었다. 나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런 TV 프로그램을 보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엄마는 전부터 TV 속에 나오는 곳은 다 가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의 여행은 '우리 딸내미 대학 가면', '우리 아들 졸업하면', '너네 아빠 일 그만두면', 여러 이유로 계속 미루어졌고 엄마가 아프면서는 더 이상 입 밖으로 그 시기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와, 저런 곳도 있네', '어머, 저기는 어디야' 감탄하면서 TV를 볼 때면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거나 괜히 퉁명스럽게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


TV 화면으로만 보던 그 곳, 


엄마가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이었고 우리 가족 모두 이 시기를 마음 졸이며 보냈다. 수술 이후 1년 간은 감염 위험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했고 시간 맞춰 여러 가지 알약을 챙겨 먹어야 했다. 나는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이 시기 또한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다. 엄마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프기 전과 같은 건강 상태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나의 해외 생활이 마무리될 즈음, 엄마는 내가 돌아오기 전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와! 내가 표 끊어줄 테니까 와!"라고 신이 나서 대답했다. 하지만 엄마가 유럽행을 결정하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 일단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의사보다 더 완고했던 아빠를 설득해야 했다. 나는 의사보다 허락을 얻기 어려운 것이 아빠일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는 엄마는 여전히 환자이고 길게 여행을 다니기엔 아직 무리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를 데리고 다니는 나도 고생, 돌아다니는 엄마도 고생일 거라고.


우리,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시작된 여러 고민들 (source: Pixabay)


여행은 이렇게 시작부터, 여행을 시작할지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엄마 아빠는 매일 그 문제 때문에 다투고 각자 내게 전화해 서로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나 또한 엄마 아빠, 양쪽 다 이해 가고 어느 정도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의 편을 들기도 난감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달이 흘렀고 둘의 다툼에 지쳐가던 나는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엄마 아빠와 유럽 여행을 하고 싶었고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모두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설레 하던 엄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아빠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발표 실력(?)으로 어떻게 '편안하게' 여행할지 설명했고 다들 '즐거울'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물론 근거가 빈약한 이야기였고 결론적으로는 실패한 확신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여행은 출발 2주 전 비행기표를 끊으면서 마침내 결정되었고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결코 '편안하지도', 항상 '즐겁웠다고' 말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처음 여행을 결정했을 때는 엄마 아빠와 여행하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