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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리 Jan 13. 2019

우리, 어디서 자야 할까?

엄마아빠와 유럽여행, 우리는 어디서 묵어야 할까


이번 여행은 다르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참 많은 후회를 해왔다.

그중 최악은 런던에서 호스텔 18인실 도미토리에 묵었다가 악취와 코 고는 소리에 한숨도 못잤던 경험이다. 그 호스텔은 지하였는데 특이하게 천장에 조그마한 창문이 뚫려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경험이란 거의 실존하는 설국열차 3등석을 체험하는 수준이었다. 바퀴벌레 영양바가 조식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처음 경험해본 3층 침대. 3층에서 자다 떨어질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현실은 이 사진보다 훨 지독하다.


사진만 보고 숙소를 예약했다 낭패를 본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에어비앤비를 즐겨 찾는데, 에어비엔비 어플 속 예쁜 사진들을 감상하다가 실제로 가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만족한 적도 많지만). 한 번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멋진 숙소를 예약했다가 자는 동안 정말 얼어죽을 뻔 했다.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입고 이불을 둘둘 두르고 자야했는데 그 후로 리뷰가 없는 숙소는 예약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이 호텔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때의 경험으로 깨닫기도 했다. 호텔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에어비엔비를 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여행하기보다 확실하게 보장되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진으로는 숙소의 온도과 향을 알 수 없다 - 내가 묵었던 덴마크의 예쁜 에어비엔비 숙소, 하지만 너무 추웠다


이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엄마아빠와는 어떤 숙소에서 묵어야할지 많이 고민했다. 처음에는 엄마아빠는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아 여행을 하며 나보다 많이 피곤해할테니 좋은 숙소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이나 새로운 경험보다는 확실히 보장되는 숙소 질이 중요하다 싶었다. 하지만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엄마는 TV에서 본 것만큼 다양하고 기발한 경험을 원했다. 호텔은 전에도 많이 묵었으니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도 묵어보고 싶다고, 에어비엔비도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긴 여행에 들 비용 걱정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두 가지가 고민이었다. 우리가 가는 여행지가 파리, 바르셀로나, 스톡홀름... 이렇다 보니 숙소가 대부분 비쌌다. 통 크게 예산을 짜려고 해도 하루이틀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한 달을 돌아다니는 것이니 매일 4성급, 5성급 호텔에 묵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 말대로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수 없다는 생각도 확고했다. 우리는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필요했고 엄마아빠는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는 주의였기에 주방이나 조식  하나는 꼭 있어야 했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나 또한 엄마아빠에게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사실이었다. 엄마 말대로 주로 패키지여행을 통해 호텔에서 묵어왔을 엄마아빠에게 현지인의 집에서 머무는 경험이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특이한 숙소에서 묵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건 새로운 재미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호텔, 리조트, 에어비엔비를 모두 찾아보았다. 며칠은 호텔에서 자고 그 후 며칠은 에어비엔비에서 자는 식으로 혹시 모를 위험요소를 분산시키려 계획을 짰다. 계획을 짜면서 여행을 상상하니 재미있었다. 엄마아빠가 이런 새로운 형태의 숙소를 경험하며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과연 좋아할까, 아니면 실망해서 다시는 나랑 여행 안간다고 하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이 어느 정도 시작됐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묵었던 여러 가지 종류의 숙소들. 에어비엔비-호텔-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곳에서 묵어보았다 (이 중 최악의 숙소도 있다)


물론 엄마아빠의 반응이 내 마음, 내 상상과 항상 같지는 않았다.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특이한 포인트에서 매우 만족했고 종종 예상 못한 것에 굉장히 까다로웠다. 엄마는 대체적으로 '신축'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아빠는 특이한 구조의 집을 연구하듯이 들여다보았다.


파리의 사진이 멋졌던 오래된 에어비엔비 숙소에서는 오래되고 낡은 주방 덕분에 엄마아빠가 싸우기도 했고, 핀란드에서는 뜻하지 않은 주인의 배려로 와인을 선물받고 행복해하기도 했으며, 스톡홀름에서는 도심에서 말도 안되게 먼 숙소를 예약하는 바람에 짐을 짊어지고 숲 속을 헤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파리의 오래되고 낡은 숙소에서 파리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고 고치며 살아가는지 관찰했고, 핀란드 사람들이 어떤 와인과 식물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힘든 여행 중에 스톡홀름 외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힐링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지만, 우리는 유럽 이곳저곳의 다양한 숙소에서 지내며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누고 또 유럽 사람들의 진짜 삶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엄마아빠에게 이 경험이 얼마나 새로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을 우리 모두가 느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의 숙소는 저 멋진 벽돌집이 아닌 구석에 저 창고 같은 작은 집-_-


*이 경험을 통해 생각하게 된 엄마아빠와의 유럽여행에서 숙소를 정할 때 유의할 점들


1. 숙소가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

유럽의 오래된 건물이나 집에 묵는 것은 새롭고 멋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울 수 있으니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고 그 상태를 점검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엄마처럼 몸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숙소의 온도란 굉장히 중요하다.


2. 도심에서의 거리를 확인하고 교통, 도시 상황도 꼼꼼히 확인할 것

전에도 말했지만, 구글맵이란 때때로 믿을 것이 못된다. 구글맵을 믿고 스톡홀름 도심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숙소를 예약했는데 교통편이 엉망이라 난감해졌다. 스톡홀름 여행 중에 도시 전체에 큰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이 덕분에 모든 것이 꼬였고 타려고 했던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 다음에는 무조건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숙소를 예약해야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3. 때로는 도전해보는 것도 엄마아빠와 나눌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엄마아빠를 위해(혹은 자신을 위해) 호텔을 예약한다. 물론 경험을 통해 나 또한 그것이 일견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아빠가 나랑 여행할 때 아니면 이런 다양한 형태의 숙소에 묵을 일이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망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긴 하지만 엄마아빠와 호텔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숙소에 묵어보는 것도 다른 여행에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한 추억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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