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이 아닌 엄마아빠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여행
엄마아빠를 위해 급하게 유럽행 표를 끊었다.
마음 같아선 대한항공 직항으로 유럽까지 편하게 모시고 싶지만 일단 내가 사는 곳까지 직항이 없다. 가까운 나라에서 환승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건 또 너무 비싸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정보, 내가 가진 예산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엄마아빠는 여행 비용을 본인들이 내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낼 생각이었다. 평생 받아온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엄마아빠는 독일에서 환승해야 했다. 사실 표를 끊을 때까지만 해도 환승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고려했다. 환승할 때 시간이 많이 남으면 기다리기가 힘들고 시간이 너무 촉박하면 그건 그대로 스트레스이니깐... 하지만 '환승'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엄마아빠 둘이서 해야 하는 독일에서의 환승,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여행할 때는 나 혼자 여행할 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친하게 지내던 일본 언니가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엄마를 위해 무리해서 직항 표(도쿄에서 오는 직항은 있었다)를 샀다고 이야기할 때야 '아, 그런 것도 고려해야 하는구나' 깨달았다. 일단 환승할 때 생기는 언어적인 어려움, 시간적인 촉박함,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넘어서야만 가능한 입국심사.
엄마가 아프기 전 엄마아빠 두 분은 주로 패키지여행을 다니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패키지여행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유는 일단 일찍 일어나야 하고 내가 시간을 더 오래 보내고 싶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없다는 것, 가끔은 사고 싶지 않은 물건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아빠가 패키지여행을 가는 데에는 또 그만큼 다양한 이점들이 있다. 비행기를 탈 때도 내릴 때도, 환승을 할 때에도 가이드가 모든 과정을 도와준다. 현지에서 언어적인 어려움 없이 편하게 돌아다니고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패키지여행의 장점. 그동안 엄마아빠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현명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을 나는 '패키지여행을 왜 가?'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미안하고 또 부끄러워졌다.
나는 이 유럽여행 전에 엄마아빠와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사실 함께 국내 여행을 간 적도 많지 않다. 어릴 때 아빠의 절친한 친구분이 사시는 제주도를 자주 갔었던 것 외에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 제주도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며 엄마아빠 뒤를 쫓아다녔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아빠가 젊었을 그때의 여행과는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에서의 환승과 입국심사. 엄마아빠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는 영어를 어느 정도 하신다. 하지만 청력이 좋지 않다.
엄마는 청력에 문제가 없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하신다.
이 둘이 어떻게 내가 있는 곳까지 잘 찾아올 수 있을까, 괜찮겠지 괜찮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여행 준비를 할 때에도 여행 중에도 세심하게 엄마아빠를 배려하는 딸이 되지 못했다. '내 생각에', '내 경우'만 생각하다 보니 엄마아빠가 겪게 될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매사가 그렇지만 너무 걱정이 없어도 문제, 이렇게 너무 걱정을 (시작)해도 문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다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의 엄마아빠는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것에 능숙해 보이던 중년 부부에서 갑자기 신문물에 당황하는 노부부가 되고 말았다. 이건 어쩌지, 저건 어쩌지 생각하다 보니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 환승할 때, 내릴 때, 모든 돌발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그에 알맞은 A안, A-1안, A-2안... 모든 죵류의 대처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메시지 폭탄. 결국 엄마에게 "내가 바본 줄 아냐!"라는 분노의 답장이 왔다.
독자들을 흥미롭게 할 좌충우돌 환승기까지는 없지만 엄마아빠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나름 내 가슴을 쫄깃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엄마아빠가 독일에서 환승을 하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분명 메시지를 보내기로 약속을 했는데 연락이 없으니 연착이 되었는지, 예상치 못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환승하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통화가 된 엄마아빠는 공항 와이파이를 연결하지 못해서 연락을 못했다고. 현지에서 심카드를 사기로 해서 로밍은 하지 않았고 공항 와이파이를 연결하려고 하니 연결이 안 되어서 곤란해하다가 결국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봐서 연결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부랴부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메일을 등록하는 등의 복잡한 공용 와이파이 로그인 과정이 처음이었던 엄마아빠. 이 또한 우리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그래서 엄마아빠와 유럽여행을 하는 중에 여러 번 공용 와이파이 로그인하는 방법을 설명해드렸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두면 편리할 테니.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조금 멀리서 보는 것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평소 서로 투닥거리거나 내 문제에 있어서는 함께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젊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엄마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가끔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엄마아빠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엄마아빠가 그 자리가 어색하지 않은 노년, 혹은 중년의 끝자락에 걸터 있음 또한 여실히 느낀다.
어릴 적 비행기를 처음 타서 겁에 질린 나를 제주도에 데려갔던 부모님. 이제는 내가 엄마아빠를 이끌고 유럽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독일 환승 사건을 겪으면서 나와는 다른, 엄마아빠 입장에서 겪게 될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조금은 더 세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 나를 데리고 제주도를 떠났을 때 만약에 대비해 가방 가득 엄마아빠가 챙겨야 했던 물건들, 미리 했을 걱정들, 그것들에 비하면 나의 배려와 걱정은 아직도 부족하다.
나이가 들면 부모가 아이가 된다, 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 경험상 엄마아빠가 모든 것에 미숙한 아이가 된다기보다 오래 유지해온 자신들의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다. 말하자면 적응력이 낮아진 상태.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기에 오히려 모든 걸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는 정 반대 상태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에 나는 엄마아빠의 방식을 존중해야 했고 엄마아빠 또한 다 큰 딸내미와 여행하기 위해 여러 새로운 것들에 적응해야 했다. 물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