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줄 알았는데 정신머리 없는 우리 딸 여전하네
방심했네. 우리 딸을 너무 믿었나.
여행 중 가장 다이나믹했던 일이라면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이동하는 페리를 놓친 것 아닐까 싶다.
페리 시간은 오후 4시 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에 씐 것이나 다름없는 발상이지만 그때는 출발이 4시 반이니 4시 20분쯤 도착하면 되겠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페리를 서울에서 부산 가는 KTX 마냥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전에 페리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몇 번이나 페리를 타고 여행했고 그리스에서는 심지어 섬마다 정박하는 페리를 타고 여행을 했었다.
엄마아빠는 딸을 믿은 죄로 생고생을 했다. 내가 4시 반 전에만 가면 된다고 해서 아빠는 당연히 배가 5시 반쯤 출발하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철석같이 믿었던 딸이 국경을 넘는, 승선 전 여권 검사도 하는 대형 유람선을 타면서 출발 5분 전에 도착하면 된다는 기가 막힌 발상을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아빠는 전 세계를 배로 돌아다녔던 기관장이니 자랑스러운 기관장의 딸내미가 이렇게 멍청한 생각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허무하지만 이미 한참 늦은 시간인 4시 20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난리를 쳤다. 한참 늦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차라리 여유롭게 늦을 것을. 하필 그 날 스톡홀름에서는 큰 마라톤 행사가 있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항구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도, 택시를 타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이 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메일로 공지가 왔었는데 메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나는 그 자리에서 당황하고 말았다. 지하철 역 앞에 서서 부랴부랴 구글맵으로 도보거리를 검색했더니 '18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착각이었다.
마음은 조급하지, 항구에 배는 많지, 차도와 인도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은데 그 와중에 마라톤하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혼돈의 상황에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니 체력이 좋지 않은 엄마와 무거운 짐을 잔뜩 든 아빠를 데리고 못할 짓... 아니 미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난리를 치며 겨우겨우 도착한 선착장. 우리가 탈 배가 보이자 안도하며 선착장 입구로 들어섰다. 하지만 출발 5분 전에 도착해 굳게 닫힌 선착장 문을 보며 멍해졌다. 선착장 입구를 지키는 아저씨에게 불쌍한 표정으로 간청해보았지만 정신 차리라는 의미의 굳게 다문 입만 마주했다. 아빠는 그제야 우리 배가 4시 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한 웃음을 지었다.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엄마아빠를 편하게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페리 안의 럭셔리 저녁 뷔페까지 예약했지만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날 바로 헬싱키로 넘어갈 수 없으니 여행 일정이 꼬이는 것은 물론 당장 스톡홀름에서 묵을 숙소는 어떻게 할 것이며, 헬싱키에 이미 예약해놓은 숙소는... 온갖 문제가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와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나 말고도 배를 놓친 몇몇 팀이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한 와중에 나와 같은 그들에게 아주 잠시 동지애를 느꼈다. 한 팀은 미국 젊은이들이었는데 한참 전에 도착해 주변 슈퍼를 갔다 와도 되겠다 싶어 간식을 사러 간 사이 이 사달이 났다. 또 다른 팀은 인도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표소를 등지며 떠나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 인도 사람들처럼 포기하고 될 대로 돼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내 등 뒤에는 온전히 나만 믿다가 발등 제대로 찍힌 엄마아빠가 먼 산을 보고 앉아있었다. 숨을 고르고 매표소로 향했다. 정말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내 실수이긴 하지만 어떻게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조금이라도 내가 낸 표값을 보전하면서 어떻게든 빨리 핀란드로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말을 하며 저절로 발이 동동 굴러졌다. 매표소 언니는 처음에는 방법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곧 옆에 앉은 동료와 스웨덴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흘끔흘끔 나를 보는데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멍청해 보일까 싶었다. 그래도 나름 나의 불쌍함이 어필이 되었는지 노부모를 모시고 유럽을 떠도는 효심이 그들의 심금을 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매표소 언니는 못쓰게 된 내 배표를 저녁 8시, 핀란드 투르크로 가는 배표로 바꾸어주었다!! 투르크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바다만 건널 수 있다면! 표값을 조금이라도 보전할 수만 있다면! 넙죽 절을 할 판이었다. 친절한 언니는 추가되는 비용 없이 페리도, 저녁 뷔페도 똑같이 이용할 수 있다는 판타스틱한 소식도 함께 전해주었다. 매표소의 가림막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그 언니를 껴안고 노래를 부를 뻔했다.
결과적으로 절망적인 새드엔딩은 아니지만 과정으로 본다면 정말 최악이었던 하루. 엄마아빠는 이 일로 나를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투르크라는 새로운 도시도 가보고 핀란드에서 기차도 타보게 생겼으니 재미있겠다 하셨다. 물론 둘 다 온몸에 기운이 죄다 빠져나간 뒤였지만.
대신 나는 신뢰를 잃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엄마아빠는 내가 말하는 일정을 믿지 못하고 항상 실제 티켓을 보고 여러 번 시간을 확인했다. 딸바보 아빠마저 "우리 딸내미 여전히 정신이 없구나"라며 나를 불신했다. 자업자득이라 생각했고 어느 순간부터 나조차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지금 돌아보아도 그 날 엄마아빠에게 너무 미안해서 자꾸만 그 사건을 곱씹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헐렁했나, 철저하지 못했나 싶다. 그런 일이 왜 생겼을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아빠와 여행할 때 미리 생각해봐야 할 것들 (어쩌면 나 빼고 다들 이미 알고 있을)
평소 나는 굉장히 헐렁한 여행을 한다. 그것이 이 사태의 화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만 하고 여행을 가는데 가서 뭘 할지는 여행지에 도착해서 정한다. 그렇다 보니 미리 예측하지 못해 많이 걷게 되기도 하고 걷다가 갑자기 아무 데나 들어가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서는 구글맵에 의존해 길을 가기 때문에 사전에 여행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엄마아빠와의 여행은 이런 나 혼자만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룰이 적용되어야 했다.
첫째, 구글맵을 너무 믿지 말 것. '도보'는 최대한 짧게, '환승'은 최대한 적게 해야 한다.
구글맵의 도보 18분은 실제 18분이 아니다. 혼자 다닐 때는 몰랐는데 구글맵이 보여주는 거리와 시간은 아마도 젊은 남성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구글맵에서 도보 15분 이상이라고 나오면 냉정하게 생각해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보게 되었다.
둘째, 엄마아빠의 체력을 과대평가하지 말 것.
생각보다 엄마는 먼 거리를 걷지 못했다. 엄마는 '난 상관없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사실 엄청 상관이 있었다. 엄마가 상관없다길래 '그럼 이 정도는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여러 번 불평을 들었다. 좀 더 맛있는 곳, 뷰가 좋은 곳을 가기 위해 '조금 더' 걸어도 괜찮다는 건 내 생각이었을 뿐, 다리가 아픈 엄마는 나중에는 '대체 뭘 먹으려고 이렇게 멀리 가나' 하면서 쌍심지를 켜고 나를 쳐다보시더라(^^;) 아무리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걸 먹어도 그 과정이 힘겹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셋째, 미리 모든 정보를 숙지하고 돌발상황까지 생각해서 무엇이든 넉넉하게, 여유롭게 계획할 것.
젊고 팔팔하며 시간이 많은 나는 정보가 없어도 현지에서 찾아보면 그만이지만 엄마아빠와의 여행은 달랐다. 가장 최악의 수까지 생각해서 '편안한 여행'을 계획해야 했다. 돌발상황에서 순발력을 발휘할 수는 있었으나 결국 그것이 '편안한 여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엄마아빠와 함께 할 때는 순발력을 발휘할 필요 없이 플랜 B, C까지 모두 짜 놓아야 한다는 걸 확실히 체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