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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리 Jan 13. 2019

내 짐은 내가 들게

아직은 뭐든 해주고픈 아빠. 그리고 이제는 독립적으로 살아가고픈 나


"이리 줘"

아빠가 여행 중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하면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아빠의 배려심과 책임감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병약한 엄마와 딸의 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빠는 딸내미 또한 '자기 짐은 자기가 들어야 한다'라는 꽤나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일단 물리적인 힘이 어지간히 좋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뭔가 대신해주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내 짐은 내가 들어야 하며, 내 밥값은 내가 내야 하고, 과도한 친절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엄마 짐과 내 짐, 아빠 본인의 짐까지 다 들고 복잡한 파리의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아빠의 모습은 내 마음을 불편하다 못해 화나게 만들었다.


내가 내 몸만한 배낭을 메고 다녔던 걸 안다면 아빠는 얼마나 놀랄까


하지만 머리로는 아빠를 충분히 이해한다. 아빠의 책임감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빠는 30년 이상 기관사로 일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시간이 함께 한 시간보다 길었다. 1년 12개월 중 10개월은 먼 바다 위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나와 동생이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상황에서도 불평 없이, 묵묵하게 가정을 돌보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그때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특히 나를 낳았을 때에는 늦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내가 나오는 바람에 가족들 모두 출산 이후에야 병원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때도 아빠는 없었다. 엄마에게 그 기억은 꽤나 강렬하고 서글펐던 것 같다. 


아빠는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12개월 중 2개월, 집에서 쉬는 동안에 아빠는 친구도 만나지 않고 항상 집에만 있었다. 덕분에 일을 그만둔 후에도 만날 친구가 별로 없는 아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가족과 아이들을 좋아했던 아빠가 어떻게 30년 넘게 그 힘든 일을 했는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그만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우리가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지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다시금 책임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빠 껌딱지들. 아빠는 저 2개월의 기억으로 바다 위에서의 10개월을 버텨냈던 것 아닐까.


아빠는 내가 힘들까봐, 성가실까봐 유럽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버텼었다. 두 남매 중에서도 유독 첫째 딸을 아끼는 딸바보 아빠는 아픈 엄마만큼이나 나이 든 엄마아빠와 여행하며 힘들 딸을 걱정했다. 그런 아빠가 힘든 여행 중에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짐을 들어주는 것이었으리라.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빠에게 아빠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이야기가 있다.


서른을 넘긴 딸, 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서울로 대학을 가며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고 이제 서른이 넘었으니 그 기간도 10년이 넘어간다. 그 기간 동안 혼자 버티기 힘든 일도 많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이 아픈 엄마와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외롭게 일하고 있는 아빠에게 내 걱정까지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전화통화를 할 때면 항상 좋은 얘기만, 즐거운 얘기만 했다. 힘든 일이 생겨도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 톤을 더 높였다.


그것은 부단 엄마아빠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될 때가 있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레 도움을 받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심적으로도 더 의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결코 나 자신을 위해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이러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기우뚱하게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졌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일까? 독립적인 개인의 삶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 아니었나?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에게 기대어서는 내가 원하는 길을 똑바르게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나 스스로 똑바로 설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키워준 엄마아빠에게 내가 그런 어른이 되었노라 보여주고 싶었다.


오르막길에서 걷기 힘들어하는 엄마의 등을 '항상' 밀어주는 배려의 아이콘 아부지   


그러나,

돌아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잘' 의지하는 방법, 서로 '잘' 돕는 방법을 알게 되기도 했다. 아빠는 기운찬 딸내미에게, 나는 아픈 엄마에게, 엄마는 서로 짐을 들겠다고 싸우는 우리 둘에게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힘들 때에는 힘들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서로를 위해 꾹 참고 스스로를 다지는 것은 적어도 이 여행 동안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묵묵히 짐을 들어주는 아빠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계속 걷기 힘들 때에는 힘드니 쉬어가자고 이야기하고, 조금만 더 가보자고 다 왔다고 서로를 다독이기도 하고 말이다.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함께 산다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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