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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Mar 04. 2021

13_내 집에서 즐기는 혼삶_ 나의 혼밥과 혼살림

자취를 오래하면 요리 실력은 자연스럽게 느는 줄 알았다. 대학시절의 어리석은 착각 때문이다. 대학생 때 휴학을 반복해 10년넘게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선배가 있었다. 그는 후배들을 초대해 집밥을 해먹이는 관대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다지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남자 선배였다.)

입학한지 몇 주 되지 않아 새내기 두명과 나는, 그 선배가 다른선배와 함께 사는 집에 초대받았다. 그때 나는 기숙사에 살았고, 누군가의 자취방에 가는 건 처음이라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니, 고백하자면 호기심보다는 편견이 가득했다.

'남자 둘이 사는 집이니 보나마나 더럽겠지. 선배가 부르니까 가는데 가기 싫다, 그냥 돈까스나 사줄 것이지 왜 집에서 밥을 먹자는 겨... 보나마나 맨날 데모나가고 매년 한명씩은 삭발하는 운동권 동아리 가입하라고 할텐데 뭐라 해야 하나... ' (주의: 대학 환경이 특이했을 뿐 필자는 386이 아닌 90년대 초반 생임.)

속으로 욕을 하며 현관에 들어섰다. 그리고 의외의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반질반질 잘 닦은 바닥과 가구들, 정돈된 살림살이들, 갓 지은 밥냄새와 따뜻한 훈기.

근사한 인테리어의 예쁜 집은 아니었지만 누가봐도 ‘살림을 잘 한’ 깨끗한 보금자리였다. 일본 영화 속의 낡았지만 분위기있는 가정집처럼 아주 단정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가 다가와 발목에 머리를 비볐다. 더 이상 완벽할 수는 없었다.

“차린 건 별거 없지만 많이 먹어.”

잘 구운 조기구이를 여러마리 내오며 선배가 말했다. 이미 차려진 반찬도 여러 개인데, 생선구이란 살림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집밥 아이템이 아닌가? 매우 겸손한 사람이군. 감탄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세상에 그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그 흰쌀밥의 촉촉한 감촉과 생선구이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혀 끝을 멤돈다.

자취해도 근사한 집밥을 차려먹으며 살림을 잘 할 수 있구나.
아저씨도 저정도 하는데 나는 야무지게 더 잘하겠지?

지금 생각하면 그 선배에겐 너무나 죄송하지만 갓 스물이 된 나는 고작 서른인 그 선배를 ‘아저씨’로 분류했고, ‘아저씨’란 종족의 살림능력을 개무시했기에 저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전국의 살림고수 아저씨들께 사과드립니다...) 나는 더 잘하겠지?라고 생각한 뒤 10년이 지나 내 집까지 갖게 되었으나 지금 내 살림 능력은 그 선배의 발톱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때 내가 ‘아저씨’라 생각했던 그 선배와 지금의 나는 동갑인데 나는 조기 구이는커녕 생선을 만지지도 못하는 살림고자이기 때문이다. 전기밥솥 덕분에 밥은 할줄 알지만 할줄아는 반찬이나 찌개가 하나도 없다. 밥을 하면 김자반에 참기름을 뿌려 먹는게 고작이다. 지금도 내 밥솥에는 2주 전에 한 밥이 눌어붙어있는데 치우기는 싫고 곰팡이가 생기면 답이 없을 것같아 일단 보온을 끄고 뚜껑을 열어 말려두었다. 거실 바닥은 매일 쓸고 닦으면서(닦으면 반짝거리는게 좋아서 닦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 밥솥에 2주된 밥을 말려두는 나란 인간의 살림능력은 제로라고 하기에도 부끄럽다. 내가 살림에 있어 가장 잘하는 분야는 청소인데, 그나마도 현생인류의 수준으로 해내는게 다일 뿐 잘하지도 자주 하지도 않는다.

요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요리를 즐기지 않는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긴 하나 이해는 되지 않는다. 준비도 번거롭고 뒤처리는 더 번거로우며 재료를 제때 사용하지 않으면 재앙이 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게 먹고자 하는 의지는 어지간한 집밥고수보다 더 강하다!

<내 생활에 자극을 준 건강도서 리스트>
1.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 : 이 책을 읽으면 채식을 해야할 것만 같다.
2.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 : 1과 같은 저자의 책으로 좀 더 구체적인 사례들과 채식 팁을 담고 있다.
3. 비만코드 : 살을 찌우는 것은 칼로리가 아니라 인슐린이라고 한다. 이걸 읽으면 알고 있던 비만에 대한 상식과 다이어트 지식들이 전부 뒤집어지는 기분.
4. 독소를 비우는 몸: 단식요법에 대해 전문지식과 구체적인 사례를 담고 있다. 간헐적 단식 좋다는 건 알았어도 단식에 대해 편견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단식을 해보고 싶어졌다.
5. 어떤 몸으로 나이들 것인가: 건강하고 탱탱하게? 장수하는 방법에 대해 어떤 술을 마시고 어떤 꿀을 먹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요즘 유행하는 키토제닉과, 채식 둘 다를 분석하고 장단점을 알려주어서 좋았다. 결론은 둘 중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좋다, 였지만.
6. 식사 순서 혁명: 건강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야채를 먼저 다량 섭취하고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대로 먹는 식사법으로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와 팁을 담고 있다. 현실 직장인 점심시간에도 적용 가능한 식사법이라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건강 유튜브 채널>
-장항준 내과 TV: 처음에는 뭐, 미국이라면 덮어두고 칭송하는 대한민국에서 '미국 의사'로 나오는 것도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사짜인가 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는 게 느껴졌다. 먹는 것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의사를 넘어 학자로서의 집요한 관심이 느껴져서 좋달까.

*좋아하는 건강 유튜브가 있다면 댓글로 추천 부탁드려요! (건강 지식 덕후)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나의 욕망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식생활과 건강에 대한 책을 두루두루 읽으며 유행하는 각종 식사법과 그 효과를 꿰고 있다. 각종 영양제와 슈퍼푸드라 불리우는 식품군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다.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야채를 많이 먹고 가공식품을 피할 것. 커피는 원두를 내려 마시는 것보다는 드립이나 블랙커피로 매일 마실 것, 맛있는게 먹고 싶을 때는 정제 탄수화물(빵, 케익 등)을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기를 먹을 것, 술은 맥주보다는 소주를 소주보다는 드라이한 와인을 마실 것.

내 나름대로 식생활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 하고 있다. 물론 저걸 다 지켰으면 지금 나는 10킬로그램은 덜 나가고 아주 건강할 거다. 되도록 지키려고 하지만 이 시대의 가공 탄수화물 식품이 주는 쉽고 빠른 쾌락 앞에서 나는 매우 연약한 인간이다. 수시로 과자의 유혹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든다. 발암물질인 소시지와 햄이 든 떡볶이를 먹을 땐 이런 의문이 든다.

이걸 안 먹고 사는 건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를 포기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지는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야식으로 과자를 두 봉지 먹었다면 다음날 아침엔 죄책감에 시달리는 대신 비트를 갈아마시는 식이다. 어떤 과자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먹다가 안먹고, 또 다른 과자에 꽂히고 하는 식이다. 한동안 편의점에서 파는 갈릭 프레첼 과자에 중독돼 있었고, 요즘은 갈릭 바게트 맛 썬칩에 중독되어 있다.

지금까지 저만큼은 먹은 것 같다. 정말 완벽한 내 취향 과자.

집밥을 안 먹으니 과자 쪼가리나 먹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틀렸다. 나는 집밥을 잘 먹어도 추가로 과자를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라 밥을 잘 챙겨먹어봤자 살만 더 찔 뿐이다. 집밥으로 저녁밥을 먹고 야식으로 과자를 먹느니 집밥을 스킵하고 야식으로 과자를 먹는 것이다. 어차피 먹는 과자의 양은 비슷하다. 안 좋은 음식을 먹는 만큼 케일, 비트 등의 야채를 엄청나게 갈아마시고 있기에 그나마 건강이 유지되는 것 같다.     


'다량의 채소 섭취'는 내가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여러권의 건강서를 읽고 나서 어떤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 등의 책에서 말하는 채식 식사법은 ‘인간은 초식 동물이므로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해야한다. 가공된 정제 탄수화물이 나쁜거지 고구마 등의 탄수화물은 몸에 좋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약물을 투여해 기른 고기와 항생제가 들어간 유제품을 피하고 채식을 하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키토제닉>으로 통용되는 지방 식사법은 ‘지방은 죄가 없다. 가공된 정제 탄수화물이 혈당을 올려 살이 찌는 것이지 지방은 흡수되지 않고 좋은 에너지원이 된다. 견과류와 좋은 고기를 많이 먹고 탄수화물의 절대양을 줄이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다. 다만 다량의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식사법이든 채소를 충분히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탄수화물 식사를 해야한다는 채식 식사법도, 지방 식사를 해야한다는 키토제닉 식사법도 공통적으로 ‘풀떼기를 많이 먹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채소 챙겨먹기 시작한 초반에는 의욕이 넘쳐 매일 채소 도시락을 만들었다.
일단 채소를 어떻게든 챙겨먹는 것.

집에는 항상 사과와 케일, 당근, 비트, 오이 등을 사놓고 아침마다 이것저것 갈아먹는다. 생야채를 너무나 싫어하기에 어쩔 수없이 택한 방법이다. 그냥 먹는 것보단 영양이 덜하겠지만 잘게 갈린 식이섬유나마 안 먹는 것보단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양파괴가 덜하다는 진공블렌더를 쓰고 있다. 아침은 그렇게 그린스무디를 먹고 점심은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먹는다. 저녁은 다이어트를 할 때엔 먹지 않고, 보통은 현미밥을 챙겨먹으려 노력한다. 무너지는 날이 많지만, 내 생활의 기본은 ‘건강한 식사’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쁜 음식을 먹는 날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주말에는 키토제닉 식사를 하려고 한다. 컬리플라워 돼지고기 볶음밥(냉동)을 데워먹거나 연어, 모짜렐라 치즈를 충분히 먹으며 탄수화물을 제한한다. 구운 치킨을 먹을 때도 있고 탄수화물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돼지껍데기 과자를 먹기도 한다. 이런 날에는 과일을 갈아넣은 그린스무디보다는 생 야채로 식이섬유를 보충한다. 쌈 케일이나 양상추를 주로 먹는다.

대충 보이겠지만, 나는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발버둥 치면서도 야채를 갈아먹는 것 외에는 요리 비슷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쁘게 먹는 것에는 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자른 야채와 치즈를 흰 접시에 최대한 깔끔하게 담아낸다.


그릭요거트에 블루베리와 딸기를 나름대로 데코해서 먹기도 하고, 먹을 때 눈이 즐겁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요리랑은 거리가 멀지만, 식생활을 나름대로 즐겁게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집밥 잘해먹고 요리 잘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집밥을 해먹어야 건강하다’는 말에는 근본적인 의심을 품고 있다. 집밥에도 각종 인공 첨가물과 가공식품이 들어가고, 흰 쌀밥은 그 자체로 위험한 정제 탄수화물이다. 나물 요리와 현미밥을 주식으로 먹으면 몸에 좋겠지만 보통의 집밥에는 설탕을 잔뜩 넣은 고기 반찬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구운 햄’이라는 발암물질 그 자체가 포함되기도 한다. 중금속 가득한 참치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김치찌개는 맛있긴 하지만 결코 건강한 음식은 아니다. 이런 집밥보다는 그린 스무디에 생고구마, 삶은 계란을 먹는 게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리 못하는 자의 자격지심이 듬뿍 담긴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과식하고 싶은 날의 푸짐한 식사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혼자 꾸려나가는 나만을 위한 살림’에
굳이 등급을 매길 필요는 없다는 것.

혼살림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현미밥에 생선구이, 나물반찬을 야무지게 해먹든 대충 야채를 썰어 마켓컬리 연어랑 같이 먹든 ‘건강한 식사’를 하면 그만이다. 색깔별로 나누어 세탁한 옷에 다리미로 칼선을 만들어 입든 세탁기에 돌려도 구김이 가지 않는 소재로 된 옷만 사 입든 깔끔하게만 다니면 그만이다. 혼자 살림의 장점은 내 멋대로 해도 불만을 가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깨끗한 집에 있고 싶은 날은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청소를 하고 책상 위에 올라간 모든 것을 집어 넣는다. 건조대에 널려있는 수건과 옷을 곱게 개어 수납한다. 반면 책상에 이것 저것 늘어놓고 옆에는 다 마른 수건이 널려있는 건조대를 그대로 두고 있는 날도 있다. 편의점 샐러드와 삶은 계란, 굽네치킨으로 식사를 떼우는 날도 있고, 정성껏 야채며 과일을 씻어 자르고 고기를 구워 곁들이는 날도 있다.

예쁜 도시락 만들기에 관심을 가졌던 시절, 거금(3만원)을 들여 야채를 예쁘게 자르는 도구를 잔뜩 사놨는데 ...당근마켓에 내놓아야 하는걸까?

살림고자라도 괜찮아. 건강하게, 오늘 내가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기. 이게 내 ‘혼살림’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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