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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Apr 21. 2021

16_이상적인 생활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상적인 인물이 되기를 꿈꿨다. 물론 그 때의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때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돈에 집착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며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사람.

외모지상주의를 강도높게 비난하지만 ‘네가 못생겨서/뚱뚱해서 그렇지.’라는 소리는 결코 듣지 않는, 바늘구멍같은 한국사회 미의 기준을 통과한 사람.

인간관계에 목메지 않지만 ‘정말 친한’ 친구들이 여럿 있으며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사람.

굳이 예술적인 취향을 다듬고자 대놓고 노력하지 않지만 새로 나온 예술영화와 문단에서 화제가 되는 시와 소설, 고전들을 모두 꿰고 있는 사람. (이를테면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감독이나 작가의 이름만 듣고도 과시적인 열변을 토할 수 있어야 함.)

지금보다 더 어리고 혈기왕성했던 과거의 나는 이렇게 모순적인 욕망을 남몰래 품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저 살다보니 뾰족하게 곤두섰던 내 영혼의 잔털이 부드럽게 가라앉고, 자신에게 너무 가혹해지지 말자고 생각하게 된 것 뿐이다. 세속적인 과시욕을 품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히 전시하되 남들 보기에 고상하고 결점 없는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중일 테니까. 그런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고백할 때도 이런 식이다.

‘봐봐, 난 이렇게나 많이 망가졌어. (하지만 근사하지?)’

20대까지의 나는 스스로 결코 인정하지 않으면서 마음 속 깊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었다.


요즘의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 보다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관심이 있다.

전세계에 물건 버리기 열풍을 일으킨 곤도 마리에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의 힘> 등 자신의 책과 넷플릭스 티비 쇼등에서 항상 하는 말에 영향을 받았다.

“이상적인 생활을 상상해 보세요!”

처음 그녀의 책에서 그 말을 봤을 때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이상적인 나 자신’이 아닌, ‘이상적인 내 생활’을 상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생활이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랫동안 걸려있던 저주에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곤도 마리에가 말하는 ‘이상적인 생활’과는 결이 다르지만, 내 나름대로 정의한 ‘이상적인 생활’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삶은 내가 성취한 것들이 아닌 나를 숨쉬며 살게 하는 생활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성취해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버리자.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자. 그 때부터 막연히 결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생겨났다.

이상적인 생활. 나한텐 그게 뭐지? 아니, 이상적인 생활이라는게 나에게 줄 수 있는 궁극적인 이득은 무엇일까?

질문을 이어나가다보니 단순하다 못해 뻔한 답에 도달했다.

행복.

이상적인 생활이란 곧 최대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이 아닐까?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짧고 강렬한 행복인 헤도니아와, 장기적이고 충만한 행복인 에우다이모니아로 나누었다. 수천년 전의 인간이 세운 기준이지만 현대인에게 도입해도 잘 맞아 떨어진다. 나는 최대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 헤도니아와 에우다이모니아의 적절한 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행복만을 느끼다가는 행복을 감각하는 역치가 높아져 나중에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적절한 고통도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이 내 나름대로의 개똥 철학을 이용해 ‘내 행복의 조건 리스트’를 만들게 되었다.   

  

1. 적절한 고통:

적절한 고통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 낮 시간을 직장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것만으로도 매주 적정량을 공급받고 있으니 되었다. 일이 많을 때 받는 고통과 나보다 팔자 좋아보이는 이들을 보며 받는 스트레스는 굳이 여기에 적지 않겠다.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적절한 고통을 공급받으며 돈도 벌기 위함이다.

2. 강렬하고 순간적인 쾌락, 헤도니아:

1)요즘 즐기고 있는 헤도니아:

-고양이 안고 주물주물하기(자주 했다간 고양이가 나를 싫어하게 된다.)

-빔프로젝터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어느정도의 현질을 해가며 휴대폰 게임을 하기. (사족이지만 요즘은 수족관을 만드는 피쉬돔이라는 게임에 빠져있다.)

-다이소에 만원짜리 한 두장 들고 가 마음껏 쇼핑.

-한 달에 한번 부록이 딸려 있는 패션잡지 구입.

-귀이개로 귀 청소하기. (건강한 습관은 아니다.)

-스트레칭 하며 뚝뚝 소리가 날때의 시원함 만끽하기.(역시 건강하지는 않다.)

2)한때 즐겼지만 지금은 누리지 못하는 헤도니아:

-노래방 가서 목이 쉴때까지 노래 부르기

-친구들과 흥청망청 마시고 길거리에서 이 세상을 정복한 양 떠들고 뛰어다니며 젊음을 불사지르기.(코로나 이후로는 한번도 하지 못했다.)

-호감이 있는 상대와 허무하기 짝이없는 칭찬과 과장이 뒤섞인 삶의 비밀들을 주고 받으며 밥먹고 술먹고 놀러다니기. (연애라고도 한다.)

3. 안정적이고 충만하며 지속적인 행복인 에우다이모니아

-거주지를 이동해야 한다는 걱정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내 공간을 마련하고, 이 공간을 내 나름대로 가꿔가며 사는 것.

-매달 일정한 수익으로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느끼는 안정감.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채소를 충분히 먹고 필요한 영양제를 섭취하고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박하게나마 베풀고 함께 시간 보내기.

-매일 밥그릇을 채우고 배변을 치우며 고양이를 돌보는 일.

-지금 내가 사로잡혀 있는 생각들과 내 경험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꾸준히 기록해 사람들과 나누기.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하고 있다.)

-소설이든 인디영화든 한 달에 한 번은 ‘재미’보다 다른 목적이 더 큰(더럽게 재미없다는 뜻이다) 창작물 감상하기     


내게 이상적인, 즉 행복한 생활이란 ‘적절한 고통’과 ‘에우다이모니아’의 토대 위에 헤도니아를 양념처럼 촉촉이 뿌린 생활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어느 정도 충족되면 더 이상 탐닉하게 되지는 않는 행복이다. 하지만 헤도니아는 짧고 강렬하며 한번 맛보고 나면 그 이상의 강렬함을 원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행복이다. 한 봉지 먹던 과자가 두 봉지, 세 봉지가 되고 치킨 반마리가 치킨 한 마리가 된다. 한 달에 한 번 먹던 게 일주일에 한번으로, 결국에는 매일의 습관이 된다.

연애를 ‘헤도니아’로 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연애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점점 많은 걸 원하며 파멸을 향해 간다.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매력, 새로운 장소에서의 데이트 등을 추구하며 관계를 말려 죽이거나, 그 ‘더 많고 새로운 것’을 지금의 상대보다 더 풍족하게 제공할 수 있는 다른 상대에게 가곤 했다. 물론 나보다 더 심하게 헤도니아를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 배신을 당한 적도 있다.

삶에 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헤도니아를 누리는 것. 그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헤도니아에 대한 과한 탐닉으로 이상적인 생활은 수시로 위기를 맞는다. 이를테면 작년 하반기와 올 초까지는 주말의 치킨과 밤에 드라마 보며 먹는 과자에 탐닉해 여름 대비 정확히 10kg이 불었다. 그래서 며칠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간헐적 단식을 병행해 감량중이다.

반면 헤도니아의 탐닉이 에우다이모니아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귀멸의 칼날>을 엄청난 속도로 정주행하고 극장판까지 보고 온 후 같은 작품을 본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거리가 생겼다. '정주행'이라는 건 분명 쾌락 중심적인 행위지만, ‘지금 현재’ 생산되고 있는 작품을 즐기고 공유함으로서 ‘이 시대, 여기’의 현실에 대한 건강한 애착을 키우게 된다.


 이상적인 생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탐구와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무너지면 보수하고 질리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이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해도, 목표로 삼는 것 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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