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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Nov 27. 2021

18_요리하는 사람

자타공인 요리 고자, 요리를 취미로 삼다.

이 정도면 아주 좋은 휴일이다. 오전 10시경 느지막이 일어나 이틀 내로 해치우지 않으면 음식 쓰레기가 될 양배추로 양배추 양파 전을 해 먹었다. 굴소스에 쯔유를 섞어 곁들이니 제법 오코노미야끼 맛이 났다.


 요리를 할 줄 모르던 시절에는,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먹고싶은 건 뭐든 해먹을 수 있으니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내 메뉴는 대체로 냉장고 생태계에 따라 결정된다. 사망 직전인 식재료가 있으면 그것부터 사용하는 거다. 대충 부엌에 서서 프라이팬에 소스만 뿌려 후다닥 먹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면 설거짓거리도 프라이팬 하나밖에 안 나오고 식사를 빨리 끝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새하얀 접시에 요리를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 

다소곳이 앉아 예쁘게 사진도 찍고, 소스를 발라 한 젓가락, 한 젓가락 정성껏 먹었다. 그저 배를 채우는 일이 나를 돌보는 성스러운 의식이 되었다. 요리할 줄 안다는 것은 곧 나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다는 말이구나. 괜히 뿌듯했다.     

예전에 나는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썼었다.

“나는 요리를 즐기지 않는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긴 하나 이해는 되지 않는다. 준비도 번거롭고 뒤처리는 더 번거로우며 재료를 제때 사용하지 않으면 재앙이 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평생 요리 따윈 절대 하지 않을 것처럼 단정하는 어투. 그 때 그 때의 기분과 상태일 뿐임을 인정하지 않고 현 상태가 나의 본질인 양, 중이병 환자처럼 시니컬한 말투로 확신하는 건 내 ‘꼴보기 싫은 부분 베스트 10’ 안에 든다. 근데 너무 오랫동안 그래와서 별로 고치고 싶지는 않다. 이 또한 자기방어 기제 중 하나일 테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언젠가 누군가는 그런 면도 귀엽게 여겨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 전에 나 자신부터 스스로를 좀 사랑스럽게 여겨야겠지. 

올 9월부터 나는 갑자기 요리를 시작했다. 계기는 선물받은 된장찌개 분말이었다. 기왕 받은 거니 어떻게든 써보려고 두부니 애호박이니 이런 저런 재료를 샀다. 그런데 막상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보니 그 분말이 보이지 않는 거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만들려던 재료로 애호박 부침과 케일두부 쌈밥을 만들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와 요리 잘하는 친구들의 조언을 참고해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생각보다 그 과정이 별로 안 귀찮고 재미있었다. 나는 갑자기 의욕에 휩싸여 불고기와 두부 쑥갓 무침도 만들었다. 마침 그 날 저녁에 친구가 오기로 되어 있어서 맥주 한 잔에 만든 음식들을 곁들여 먹었다. 


"요리 못한다더니, 잘하는데. 맛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칭찬에 나는 내가 뭘 잘못들은 건가 한참 내 청력을 의심했다. 요리를 잘한다고, 내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빈 말로라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칭찬이었다. 

평생 당연히 못할 거라 생각하고 포기해 버린 무언가를,
잘하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은 불도저처럼 나를 과격하게 밀어붙였다. 

그 때부터 매주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닭도리탕, 경상도식 소고깃국, 단호박 스프와 감자 스프, 닭갈비와 에그베네딕트, 수플레 팬케이크 등 양식과 한식을 가리지 않고 만들었다. 

내가 쉬운 요리만 도전한 것도 있겠지만 막상 해보니 요리라는게 못하던 시절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도구와 재료만 있으면 레시피대로 정확히 계량하지 않아도, 대충 맛을 보면서 양과 간을 맞추니 그럭저럭 완성이 됐다. 나는 요리라는게 정확한 양과 정확한 시간, 온도를 맞춰야 하는 말하자면 이과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수학문제를 풀거나 정해진 환경에서 실험을 하는 것처럼 딱딱하고 재미없는 행위라고 여긴 것이다. 

막상 해보니 요리란 건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것과 더 비슷했다. 당연히 일정한 규칙을 베이스로 하고 훈련된 스킬이 있다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없어도 어떻게든 맛 좋게 완성할 수는 있다. 오히려 규칙이나 스킬에 집착하지 않을 때 더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지난 두 달 사이 요리는 평생 가져갈 취미생활이자 생존 스킬이 되었다. 다만 여성 폐암 원인이 요리 때문이란 얘기를 듣고 겁이 나 요리할 때마다 환기팬을 돌리고 kf94 마스크를 챙겨 쓴다. 요리하는 분들, 위생과 건강을 위해 마스크 꼭 쓰자고요!

저녁엔 베이컨과 양배추를 곁들여 정말 근사한 오코노미야키를 만들고, 단호박 스프를 끓일 생각이다. 벌써부터 저녁 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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