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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an 14. 2021

02_보증금 한 푼도 주지 마쇼!

보증금 1000에 월세 50만원. 

이사를 결심하고 내가 계획한 다음 집의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집을 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은 중구에 있는 직장과 도보 포함 한시간 이내 거리이면서 햇빛이 들어오는 집에 살기 위해 지불해야할 최소한의 비용이었다. 그보다 더 싼 집은 툭 치면 우르르 무너져내릴 것 같은, 전에 살던 집과 다를 바 없는 낡고 더러운 건물 안에 있거나 침대 하나 놓으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살고 있던 반지하 전셋집이 보증보험이 되지 않아 사는 내내 불안에 떨어야 했기에, 이번에는 보증보험이 되는 전세나 소액 보증금 최우선 변제액 1600만원 미만의 월세로 가고 싶었다. 


내가 보증금에 유독 민감한 건 과거의 경험때문이다.  대학생때 친구가 3000만원짜리 전세 방에 살다 돈을 떼이는 걸 봤었다. 

계약할 때는 건물에 융자가 있긴 해도 안전해 보였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 아닌 이상, 융자 없이 건물을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그 친구의 부모님은 부동산으로 재산을 상당히 많이 불린 이들이었다. 원래 진보성향이었으나 노무현 정권때 세금을 너무 많이 물어 반대 성향으로 돌아섰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그만큼 그들은 부동산과 관련해서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아는 게 훨씬 많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결국 3천만원 보증금 전체를 돌려받지 못하고, 절반에 해당하는 최우선 변제액만 돌려받았다. 

만약 그 친구의 보증금이 부모님이 보태준 현금 3천만원이 아니라,
내 전셋집처럼 영혼까지 털어 빚을 낸 1억원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나는 그 친구가 겪은 일을 바로 옆에서 보고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절대 보증보험이 되지 않는 집에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게 부담은 되더라도, 1000에 50짜리 월세로 가는 것이었다.

문제는 1000에 50짜리 집은 대체로 애완동물 불가였고, 보증보험이 가능한 1억원초반대 전세는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환상의 존재였다. 그래서 우선은 사는 집부터 내놓고, 이사날까지 집을 못구하면 가족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집을 구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는 거였다.

살고 있던 집은 보증보험은 되지 않으나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융자는 없었고, 한 주인이 20년 이상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 8800만원과 내 돈 2200만원을 더한 1억 천을 모조리 본인의 새 아파트 입주를 위해 써버렸기 때문에 세입자를 구하지 않으면 내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다. 


세입자가 안 구해지면 어떡하지?

새 집을 알아보기도 전에 살던 집에서 나가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계약할 때 계약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계약이 만료되어도 나갈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특약이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특약을 몰래 넣은 부동산은 집주인의 입장만 돌보고, 그 집에 입주하는 제 딸, 아들뻘 청년 세입자의 재산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부동산과는 나가면서도 엄청난 트러블이 있었다. 처음에 부동산에 집을 내놨는데 네이버 부동산에도, 직방에도 올리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기에,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에 예쁜 사진을 올려 내가 세입자를 구해왔다. 부동산을 끼지 않고 계약할 수도 있었으나, 나는 싫어서 나가는 집에 입주하는 내 동년배 세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전세 보증금 떼일까봐 사는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 그나마 부동산을 끼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은 맘에 부동산을 끼고 계약을 진행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들에게 내가 왜 미안해 했나 싶다. 

정말 미안해야할 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을 집이랍시고
1억원대 전세로 내놓고 그 돈을 보태 새 아파트를 산 집 주인이 아닌가?

중간 과정에서 부동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와 나 사이에 엄청난 오해가 생겼다. 침실 장판의 가운데 이음새 부분을 고양이가 긁어놔서 그걸 수리하겠다고 얘기를 해놓은 상태였는데, 막상 집을 구하고 이사를 준비하다보니 그 부분만큼의 장판을 새로 주문해 셀프시공할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마침 들어오는 이들도 집을 싹 다시 인테리어 후 입주를 하겠다기에, 어차피 새로 할 것을 내가 고쳐놓는 것보다 돈으로 보태드리겠다 제안했었다. 그런데 부동산이 소통을 담당하겠다고 중간에 끼어들면서 말도 안되는 얘기를 했다.


“주말 비워놔요. 고양이들이 집을 얼마나 상하게 했을지 모르니 이사당일에 얼굴 붉히는 것보단 미리 어떻게 보상해줄건지 얘기하면 좋잖아요? 세입자들도 공사전에 한번 보겠다고 하고.”

무슨 말이지? 처음 들었을 때는 부동산 사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거 고양이 두 마리나 있더만.”

“그러니까, 제 고양이가 집을 상하게 했는데 제가 얘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봐 검사하러 오신다는 건가요?”

말의 저의를 파악하고 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애초에 고양이가 물어뜯은건 큰방 장판의 이음새 부분이 다였다. 그래서 그 부분은 내가 미리 이실직고 하고 고쳐주고 나가겠다고 말해둔 거였다. 그런데 나머지는 정말 그야말로 썩어가는 집을 내가 사람 살만한 집으로 바꿔놓은 상태였다. 곰팡이가 줄줄 흘러내리는 작은 방 벽지를 더운 여름날 스크래퍼로 수십겹을 박박 긁어가며 제거했던 게 지금도 엊그제 같다. (물론 집주인의 허가를 받고 내가 인테리어를 진행하겠다는 특약을 계약서에 넣었다. 인테리어 특약을 넣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는데 이사가려고 계약서를 다시 보니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계약 종료되어도 보증금을 주지 않는다'는 특약이 추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벽, 바닥재, 걸레받이, 썩어가는 벌레 시체가 100년은 쌓인 것같은 온갖 집의 구석구석. 전부 내가 다 사람 살만큼 고치고 청소했다.

그 집에서 깨끗하지 않은 모든 부분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거, 은행에서 전세대출 때문에 방문해서 같이 가 보니까, 고양이가 문틀도 물어뜯은 것 같더만!”

수화기 넘어 저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숨도 쉴 수 없었다. 그 집의 문틀은 입주할 때부터 죄다 썩어서 패여 있었기 때문이다. 집구석이 죄다 그렇게 여기저기 썩고 낡아 있었는데 나머지는 내가 새로 해서 겉보기엔 깨끗해 보이는 거였고, 문틀은 목공이 필요한 부분이라 내가 손을 대지 않았을 뿐 고양이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찬찬히 말했다. 다만 감정노동이 섞이지 않은 냉정하고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어디서 감히 목소리를 높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데, 그저 상냥한 ‘콜센터식 어조’를 접어두고 예의바르게 말했을 뿐인데 부동산 사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휴대폰 앨범을 뒤져보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입주 첫날 집 상태가 하도 험해서 주변에 하소연할 요량으로 찍어놓은 집 전체 동영상이 있었다. 썩어 무너져 내리는 문틀과 깨진 타일, 그 밖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적나라하게 찍힌 동영상이. 

더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새로 들어올 세입자들도, 부동산도, 집주인도 꼴도 보기 싫었다. 나는 증거자료에 대한 얘기를 간략히 전하고, 이사 나갈 때까지 집을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부동산 복비도 주고 싶지 않았다. 세월아 네월아 손 놓고 있어 내가 사람을 구해 온 마당에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하는 부동산에 단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다.      

이사 당일, 복비를 줄 수 없다고 말하자 부동산 사장은 마지막 한 스푼의 체면조차 허공에 쏟아버리고 대놓고 막말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보증금 받을 생각 마라, 사기꾼, 부모님을 불러와라, 싸가지가 없다.’ 등의 폭언을 쏟아낸 것이다. 

"거 사장님 보증금 한 푼도 주지 마쇼."

부동산 사장이 집주인에게 말했다. 집주인은 부동산 복비만큼이 제외된 비용을 내 통장에 입금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모두 녹취해 놓았다. 언젠가 그 녹취 파일을 들어도 열이 받지 않을 때,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유포할 수도 있다. sns 유포에 동의하는 것까지 다 녹음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자기가 한 만큼 결국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굳이 내가 애를 써서 영상 편집을 하고, 그 더러운 말들을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중에 기운이 남아돌면 하겠지만 아직은 그 말들의 녹취록을 다시 내 귀에 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는 더 이상 세입자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 멋대로 Q&A

1. 보증보험이 되지 않는 집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하지만 조건들을 살펴보면, ‘아파트가 아닌 투자가치 없는 집’을 걸러내기 위해 만든 조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청년층에겐 팍팍합니다. 아파트의 경우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청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한명의 건물주가 여러 세대에게 세를 주는 형태의 건물은 거의 안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조건이 부합한다 해도 마지막 조건 ‘전세 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의 합이 주택 가격보다 작습니까?’에 해당하는 집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택 가격이란 네이버 부동산에 나오는 실 거래가가 아니라, 실거래가보다 훨씬 낮은, 세금 납부 기준으로 측정된 공시지가를 뜻합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 총 합이 공시지가를 넘으면 보증보험이 되지 않는 집이므로, 청년층이 거주하는 학교 근처, 회사 근처, 땅값이 비싼 동네는 거의 다 해당됩니다. 공시지가는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의 ‘공시가격 열람하기’에서 주소만 입력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세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전세 보증금 금액과 그 건물에 거주하는 세대 수를 곱해 공시지가를 넘는지 대략적인 가능여부를 가늠해 보세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보증신청가능여부확인

공시가격 열람하기    


2. 소액 보증금 최우선 변제란?

세입자가 거주하는 주택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경매로 처분된 주택의 배당은 최우선 배당과 우선 배당으로 나뉩니다. 최우선배당은 경매집행비용과 최종 3개월분임금, 퇴직금, 소액보증금, 당해세 등으로 낙찰가액에서 가장 먼저 공제됩니다. 보증금이 작은 금액이면 더빨리, 완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 거죠.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의 비율은 2019년 기준 43.1%입니다. 경매로 넘어간 주택에 거주하던 세입자 10명중 4명 이상이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하는 건데요. 돌려받는 6명의 상당수도 소액 보증금에 해당되겠지요. 고액의 보증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돌려받을 수 있다해도 계약은 만료됐지만 세입자가 안 구해지는 상황에 집주인이 ‘돈이 없다’며 차일 피일 미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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