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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an 14. 2021

03_나의 전재산

금수저나 고액연봉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서울에서 월세살이를 하고 싶지 않다면, 빚을 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서울역에 신문지를 깔고 캠핑을 할게 아니라면 말이다.

지난번 끔찍한 반지하 집 전세 용도로 받은 대출은 8,800만원이었다. 이번에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은 보금자리론 8,300만원과 신용대출 1,500만원이다. 그 중 500만원은 가구, 가전, 공사,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데 썼다. 순전히 주택매매를 위해 빌린 돈은 9,300만원인 셈이다.

8,800만원과 9,300만원.

전세로 사나 주택을 매매하나 빚은 500만원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마음먹고 한 달에 100만원씩 갚으면 5달이면 갚는 돈이다. 한 달에 백만원을 어떻게 갚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하루에 8시간 일한다는 전제하에 월세를 내지 않으면 최저시급을 받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집을 사기 전에도 일정금액의 저축을 했기 때문에, 그 돈으로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고 주택 매매를 위한 자금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집을 사기 위한 저축이었기 때문에 빚을 갚으나 저축을 하나 달라질 것은 없었다.   

4700만원.

29살 10월, 영혼까지 탈탈 턴 내 현금 재산의 크기였다.

만 4년을 꽉 채운 직장생활동안 4700만원을 모은게 적은지 많은지는 모르겠다. 4년 넘게 반지하에 살며 나름대로 절약하려 노력했지만 나는 유혹에 취약한 편이라, 유튜브의 짠테커들처럼 절약은 못했다. 4700만원을 전부 내가 모은 건 아니고, 1200만원은 내일 채움공제로 받은 돈이었으니 순전히 내 힘으로 저축한건 3500만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중소기업 청년 내일채움공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반지하를 벗어나는데 큰 공헌을 한 내일채움 공제는, 쉽게 사표를 던지지 않고 경력을 쌓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훌륭한 제도다. 물론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회사에서 3명의 주니어 사원이 목돈을 포기하고 사표를 던지는 것도 봤다. 가입한 주니어 사원이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는 이유로 악용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피해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일단 여기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일채움공제 가입을 조건으로 입사하는 그 순간, 신입사원은 ‘대단히 혜택받는 사람’이 된다는 거다. 신입이 여러 명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원래 있던 사람이 나가거나 인력이 부족해 죽어버리기 직전이 되어야만 신입을 뽑는다. 그리고 소위 ‘고인 물’이라고도 불리는 오래 다닌 사람들이 있다.

갓 입사해 막내 역할을 해야하는 주니어 사원에게 ‘혜택받는 신입’이라는 낙인이 조직생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혜택받은 신입은 제 발로 나가는 순간 목돈을 포기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똥싸지르고 나갈까 봐 말조심을 해야할 필요도 없다. 최소 2년동안은 신입이, 잔소리 좀 했다고 다음날 무단 결근을 하고 ‘상사가 재수없어서 그만둡니다.’따위의 문자를 보낼 확률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말이다.

나는 물론 내일채움공제를 받는 청년 신입사원들이 ‘혜택받는다’고 생각하는 시니어 직원들의 심정도 이해한다.  요즘 신입은 (물가상승때문이든 아니든) 본인의 신입 시절보다 (1원일지라도) 높은 연봉을 받는데도, ‘칼퇴’를 ‘정시퇴근’이라고 부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족들이 아닌가? 몇 년을 일해도 연봉은 제자리걸음인데, 사장은 이제 너도 연차가 있으니 성과를 보이라고 착즙 압박을 해댄다. 반면 신입은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 올리는 것 가지고도 새로운 시도니 뭐니 하며 격려를 받는다.

인간인 이상,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이직은 두렵고 회사밖은 더 두렵다. 그러니 일단 눈앞의 건방진 저놈부터 조져야겠다.

이때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시니어직원의 '신입 참교육'이 시작된다. 안 그런 회사들도 있지만, 이런 분위기의 회사에서 2,3년을 버티다보면 없던 정신병도 생긴다고 한다. 자다가 비명지르며 깨는 야경증이 생긴 사람도 봤다.

내일채움공제 1200만원. 남들 보기엔 그냥 공돈처럼 보일 테지만, 이 1200만원엔 무너진 자존심의 파편이 수천개 박혀 있다.


숫자에 밝은 분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내 집값은 1억 4천이었다. 아무리 구옥이라 한들 15평 지상층 치고는 굉장히 저렴한 값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싼 이 집을 사기 위해 나는 내 전재산을 쏟아부었다.     

4700만원. 많아보일 수도 적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내 피땀 눈물, 젊음과 맞바꾼 전재산. 이 돈을 남김없이 털어내고 잔고를 0으로, 아니 마이너스 수천만원으로 만들어 집과 맞바꾼 건, 내 인생에서 정말 힘든 결정 중 하나였다.      



내멋대로 Q&A

1.돈을 어떻게 모았나요?

미리 밝혔듯 내일채움공제의 공이 크지만, 매우 박봉인 업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적게 모은 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대단히 절약을 잘해서 모은 돈은 아니에요. 저는 고3시절 모의고사에 비해 낮은 수능점수를 받았었는데요. 이왕 대학입시에 실패한 김에 재미있어 보이는, 장학금 주는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학비 대출이 없었어요. 대학시절에도 2학년까지는 부모님이 생활비를 보태주셨고, 그 후에는 중간중간 휴학하며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빚이 없는 상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빚없이 시작하니 적은 돈이라도 매달 꾸준히 모아 목돈을 만들 수 있었고요.

미리 언급했듯 저는 유혹에 취약한 편입니다. 인테리어와 관련해선 특히 그렇습니다. 부담할 수 있는 가격의 예쁜 소품이 보이면 어느새 결제를 하고 있지요. 변변한 책장 하나 없는주제에 이용하는 서점의 vip가 될때까지 책도 죽어라 사댔습니다. 꼴에 책만은 남의 손탄 걸 사지 않겠다는 괴이한 고집이 있어, 새 책을 사모으며 열심히 환경파괴에 앞장섰지요. 카페와 음주가무도 무척 사랑했습니다. 다만 해외여행은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올해 가는 게 목표였는데 코로나가 터졌네요. 덕분에(?) 집을 샀습니다.


2. 한달에 얼마를 모았나요?

140만원을 모았는데 월급이 적은 저에게는 큰 액수였습니다. 물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마음먹고 140씩 모은 건 최근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1년동안은 옷도 안 사고, 밥도 점심 한끼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맸어요. 물론 주말에는 치킨과 떡볶이를 엄청나게 먹어댔기 때문에 살은 전혀 빠지지 않았어요.

그 전에는 한달에 50만원 정도를 꾸준히 저축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카드를 쓸 때도 있었는데 할부 금액이 점점 늘어나서 1년 전에 잘랐습니다. 카드를 쓸 때는 매달 50씩 저금하면서도, 할부를 합친 카드값이 200가까이 밀려있었던 적도 있어요. 50을 저축하면서 200이 마이너스였던 거죠. 카드를 자르기 전, 그 금액을 모두 갚는데만 4달은 걸렸습니다.


3. 치킨 값 2만원인데 주말마다 배달을 시키며 140 저축이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배달음식과 과자를 적당히 섞으면요. 금요일 배달시킨 것으로 토요일 늦은 점심까지 먹고, 야식과 일요일은 2+1 짜리 편의점 과자로 떼웠습니다. 사실 일요일은 하루종일 자다 깨다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주말에 3만원 정도 식비가 드니, 생존에 필요한 물품 외의 것들을 사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갖고 있던 물건들을 중고로 판 돈도 보탰습니다. 근데 쓰다보니 이걸 왜 쓰고 있나 싶군요. 절대 네버 따라하지 마세요. 건강이 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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