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츄르 Jan 12. 2021

01_갖고 싶어 하는 마음


살면서 갖고 싶었던 건 많았다.

옷이나 가방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밀접히 관련된 물건들이 갖고 싶을 때도 있었고, 손에 착 감기는 질 좋은 가죽 다이어리나 책처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지만 내 만족을 위해 갖고 싶었던 것들도 있다.


이렇듯 내 욕망의 대상은 대부분 물성을 가진 것들이었으나, ‘헌신적인 연인’처럼 ‘갖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마음에 들이기도 했다. 특정한 체중이나 외국어 점수처럼 자기계발서들이 가지라고 말하는 것들을 갖고자 나자신을 혹사시킨 적도 많았다.

미니멀리즘에 빠져있던 시절, 옷걸이를 모두 버리고 미니멀리스트 필수템이라는 원목옷걸이를 잔뜩 구입했었다.

한때는 미니멀리즘에 빠져 갖고 있는 물건들을 싹싹 긁어 팔고 낡은 것들을 모조리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예쁘고 질 좋은 것을 적게 가지자’라는 ‘무언가 갖고 싶은 마음’에 불과했다.

무언가 갖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다. 인생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갖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이상한 도덕적 우월감을 더해 ‘도덕적으로 우월한 나’를 연기하게 되면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굉장히 역겨워진다. 이를테면 ‘특정한 체중’과 ‘900점대의 토익점수’를 갖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목표를 이루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자신’에 대해 은연중에 우월감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게으르다’고 평가하는 순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오염되는 거다. 여기에 재테크, 미니멀리즘 등 무엇을 넣어도 다르지 않다.      

‘갖고 싶다’는 마음은 나쁜거야.

수많은 것들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20대 초중반까지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나’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다보니 세상은, ‘완벽한 나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도취할 만큼 여유롭고 만만하지 않았다. 일단 눈앞에 닥친 일들을 쳐내고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특정한 종류의 도덕적 우월감은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죄다 증발해버렸다.

나는 그냥 소시민이다.

이걸 인정하는 데까지 20대가 통으로 바쳐졌던 것 같다. 나는 이제 ‘무언가 갖고 싶어하는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쁜 거라는 전제 하에) 세상이 소수의 결코 채워지지 않는 탐욕을 위해 나머지가 착취당하는 구조라면, 박봉에 2,3인분의 업무를 하고 있으며, 일상의 선택권이라고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고르는 것 정도밖에 없는 내가 죄책감을 왜 가져야 하나 싶었다. 그때부터는 내 위시리스트에서 ‘도덕적으로 결함없는 나’가 지워졌다.   

  

물건, 겉치레, 관계, 사람.

내 욕망의 축은 이 네가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다 끝내는 ‘공간’에 멈추어 섰다.

연애도 싫고, 그다지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별 상관 없어진 무렵 나는 내 공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예쁘게 꾸미는 데는 관심이 있었지만 정말 내 공간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데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 아까워 20대의 절반을 값싼 반지하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언젠가는 집을 사겠다는 계획 아래 저축을 하고 나중에 집을 사면 어떤 인테리어를 할지 상상은 했으나 정말 절박하게, 당장 집이 갖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침부터 저녁까진 회사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나가서 술을 마실 때가 많으니, 집이란 잠만자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자취방으로 반지하를 택했다.      

아늑했던 첫 번째 반지하 집.
불광천, 봄밤

첫 번째 반지하 집은 불광천 인근에 있었는데 상당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들어가는 곳만 반지하고 적당한 크기의 창으로 햇빛이 잘 들어왔다. 동네도 좋았다. 달빛이 잘 스며든 불광천의 물결을 바라보며 걷던 퇴근길, 허파를 설렘으로 가득 채우며 흐드러지던 봄의 벚꽃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증금 천 만원에 월세 25만원이던 그 집에서는 2년 반을 살았다. 더 살 수도 있었는데, 전세로 가고 싶어서 이사를 결정했었다.





두 번째 집, 그 집에 대해서는 대체로 할 말이 없다.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감수하고 이야기를 하자면, 할말이 아주 차고 넘친다.


장담컨대 그 참담하고 비통했던 마지막 전셋집은 현대 한국인이 거주할 수 있는 최악의 집중 하나였다. 그 집은 한때 우리나라 젊음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쇠락한 마포구의 어느 대학가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로만 보면 최상의 조건이었다. 10분 거리에 백화점, 무인양품, 힙하고 상업적인 대형 독립서점, 아주 오래된 동네서점을 비롯해 온갖 화려한 상점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들은 곧 무너질 것처럼 낡았으나 건물들이 품고 있는 상점들의 인테리어는 죄다 새것이었다. 게다가 자주 바뀌었다. 어제 봤던 가게가 하룻밤 사이에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다른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었고, 유행하는 것은 모조리 있었다.

두번째 반지하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인 공원.

집 근처에는 유명한 숲길도 있었다. 사실 숲이라곤 볼 수 없고 나무와 덤불들, 벤치와 조형물 따위가 예쁘게 조경된 공원이었지만.  나는 그 이루말할 데 없는 동네에 반해 입주했다. 햇빛이 들든 안 들든 그런 멋진 곳에 사는데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햇빛이야 나가서 공원에서 받으면 되는 일 아닌가?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면 새 집처럼 깨끗할 테고 그깟 햇빛 따위가 대수겠어?



참담한 비극을 예상하지 못했던 집들이의 추억

그깟 햇빛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내 판단은 옳았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첫 집들이 날부터 입증되었다. 집을 한껏 예쁘게 꾸미고 술과 음식, 케이크까지 준비해 친구들을 초대했던 그 날, 집앞에 쥐가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은 지하의 그 집만을 위한 대문이 따로 있고, 대문을 열고서 아주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현관문이 나오는 형태였는데 바로 그 계단과 대문 사이에 죽은 쥐가 널부러져 있었다. 굶어 죽었는지 말라 비틀어진 아주 작은 새앙쥐, 그 친구는 (어릴때 키워본 햄스터를 빼면) '내 인생 첫 쥐'였다. 덕분에 그 날의 집들이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으로 뇌리에 깊게 박혔다.



지상 같은 반지하 집이 아닌, 진짜 반지하인 집의 문제점 중 ‘채광’은 살아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점일 뿐, 진짜 문제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진짜 문제는 지하의 하수도와 가까워 역겨운 악취와 쥐, 벌레가 들끓는다는 점이다. 머리가 아플정도로 패브리즈를 뿌리고 디퓨저를 수십개 갖다놓고, 캔들을 켜며 살았지만 악취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환기가 가능한 창문이 딱 한 개 있었는데 외출할 때도, 겨울에도 그 창을 항상 열어두었다. 물론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기에도 항상 담배냄새와 술냄새, 매연이 뒤섞여있었다. 때로는 비둘기의 깃털이 바람에 실려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쥐도 마찬가지였다. 계단에 죽어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대문 앞에 죽어 있는 것도 문제였다. 침대에 누워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휴지 한롤과 거의 다찬 종량제 봉투를 챙겼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더 끔찍한 상태가 되기 전에 재빨리 몸을 움직여야 했으니까. 휴지를 두텁게 감아 쥐를 들어올려도 꼬리만은 감싸지 못해 휴지 밖으로 축 늘어지던 그 악몽같은 광경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도 처음 몇 달은 견딜만 했다. 동네에 차고 넘치는 볼거리들을 구경하고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매일 소리높여 외치는 그 분, 코로나가 오셨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여행들이 취소되고 술자리의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다 아예 사라지면서 하루종일 집에 있는 주말들이 늘어났다. 나는 아무리 깨끗이 청소해도 악취나는 습기가 올라오는,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그 집에서 꼼짝없이 이틀을 보내야 했다. 그 당시 내 주말 일과는 이렇다.

금요일 밤 퇴근하고 들어가 치킨을 시킨다. 핸드폰을 쥐고 누워 웹소설을 보기 시작한다. 치킨이 오면 침대 앞의 책상으로 잠깐 몸을 옮겨 치킨을 뜯으며 웹소설을 이어본다. 남은 치킨을 대충 싸서 책상 위에 두고 쓰레기는 재활용이고 뭐고 커다란 종량제 봉투에 집어넣어서 현관문 밖에 내놓는다.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웹소설을 본다. 빛이 들지 않아 토요일 오후 3시 쯤 잠에서 깨어난다. 책상 위에 둔 남은 치킨을 먹으며 웹소설을 본다. 모자를 눌러쓰고 잠옷차림에 브래지어만 하고 밖에 나가 편의점에 간다. 첫 외출이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서 집에 들어온다. 다시 침대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웹소설을 본다. 일요일, 이하 동일.

집에서 달리 할 일이 없고, ‘순문학’이라는 진지한 이름에 걸맞는 콘텐츠를 소비하기엔 기력이 딸리니 아주 빠르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웹소설만 주구장창 봤다. 웹소설 소비는 치킨을 시켜먹거나 과자를 먹는 일과 비슷했다. 항상 비슷한데 매번 빠른 위안을 주는 자극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웹소설은 작품에 따라 순문학 못지 않은 메시지나 감동을 담은 것들이 있었고, 체내에 독소를 쌓지도 않으니 아주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웹소설과 함께 그 지하집에서 먹어댄 배달음식과 과자들은 내 삶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반지하를 벗어나야 한다.

이 생각은 어느 주말, 침대에서 뒹굴며 밀리의서재로 <죽은 자의 집청소>를 보던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자살한 사람들은 주로 반지하에 많이 살았으며, 그들 주변에는 배달음식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런 내용을 읽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는데, 먹다 남긴 치킨이 든 종이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그 전날 시켜 먹은 엽X떡볶이 용기와 함께 과자봉지들이 뒹굴고 있었다. 갑자기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이래서야 내일 당장 시체로 발견된다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 편으로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책 속에 나오는 이들에게는 비극적인 이유가 있었다. 가난, 우울증, 노동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황. 그러나 나는 우울증 환자도 아니었고, 찌질하고 가난하긴 했지만 중위소득보다는 GDP에 가까운 고정 수입이 있는 근로소득자였다. 같이 살진 않지만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도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나는  집에 이사오기 전의 내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주말이면 테이블에 생화를 장식하고 스테이크를 구워 와인과 함께 먹었다. 꾸준히 책을 읽으며 필사를 했고, 손을 물어뜯는 습관때문이긴 했지만 어쨌든 셀프 네일아트도 했다. 지금보다 훨씬 건강했고 피부도 좋았다. 고작 1 사이에  삶이 어떻게 바뀐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당장 사는 곳을 바꿔야 한다!

나는 결심했다.

햇빛이 들고, 창문을 열면 좋은 공기가 들어오는 집에 살고 싶었다. 문틀이 썩지 않는 집에 살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 외의 다른 활동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 때부터 ‘집’은 지독한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가져본적 없는 절박한 욕망이 되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집’은 내가 살면서 갖고 싶어한 것중 가장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매매보다는 월세와 전세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전 01화 prologu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