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에 대한 단상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일이 있다. 모 방송사에서 드라마 촬영 중 동물을 학대한 것 아니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이다. 결국 그 동물은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들었다. 영상을 보니 ‘인간적인’ 마음에서 저 동물이 많이 아팠을 것 같고, 연민하게 되었다.
확실히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 나 만해도 우리나라의 변화상을 직접 겪고 있는 MZ세대로서 보신탕이나 개소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고 있음을 알고 길냥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애완동물이란 단어보다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선택하고, 우리 주변의 조그만 생명체뿐만 아니라 쉽사리 볼 수도 없는 극지방의 펭귄과 곰, 바닷속의 돌고래에게도 관심을 크게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지구에서 인간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아가야만 하도록 지어진 존재니까. 동물끼리도 서식지 내에서 암묵의 경계를 지키며 살아간다는데, 이제서라도 인간으로서 나름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생태계와 공존하는 방법을 논하는 추세로 돌아선 것을 환영한다.
한 가지, 어째서 문제를 문제로 만들 때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된다’라며 기준을 정하게 되는 건지 의문이다. 인간적이라는 기준 자체가 객관화되기 쉽지 않고 사회적인 합의가 된 정도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은 마더 테레사 같지만 또 어떤 인간은 히틀러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도 선량한 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날도 있지만, 스트레스가 좀 쌓이고 뭔가에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굉장히 비협조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추구해야 하는 이상향 같은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공존하는 그 보이지 않는 질서를 회복하는 움직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다움이라는 것, 인간적이라는 기준, 우리의 태초의 정체성은 아마도 사랑을 기반으로 세워진 게 아닐까.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과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공존의 가치가 확산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인간이라서 가질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과 이기심- 사랑의 부재-으로 인해 인간적으로 그 질서를 다시 무너뜨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