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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 전기수 Apr 09. 2020

네가 오늘 버린 생리대도 원효께서 마신 해골물이다

삼인행 필유아사-월경도 경전이다

오늘은 카페에서 여사친을 만나기로 했다. 퇴근하고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네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몸이 안 좋아서.

몸이 왜 안 좋은데.

그날이거든.

그날? 아! 월경!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야 조용히 해. 그게 무슨 큰 소리로 말할 일이니.

그렇다고 부끄러울 일도 아니지. 

아니 그래도 좀 그렇잖아.


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 월경 때문에 힘들어하는 너한테 딱히 도와줄 건 없고.

도와주긴 뭘 어떻게 도와줘. 네가 나 대신 월경이라도 하게?

아니, 그럴 수는 없지만 네게 도움될 만한 이야기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어떤 말?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대신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상하게 생각 안 해.

그럼 잘 들어봐.


논어에 이런 말 있지. 삼인행 필유아사라고.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그 안에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인데. 월경이 네 스승일 수 있다는 생각 해 본 적 있니?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야 너 되게 웃긴다. 어떻게 월경이 내 스승이 될 수 있니.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어떻게 피 묻은 생리대가 팔만대장경이 될 수 있겠니. 그렇다고 로르샤흐 검사지일 수 있을까. 그런데 한의사 이유명호 님은 월경은 여성이 몸으로 쓰는 경전이라고 하셨어. 그렇게 보면 피 묻은 생리대도 충분히 교훈을 주는 바이블이 될 수 있다는 말이거든. 그런데 여성 중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없을 거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생리대를 버리니까. 아! 내 지인 중에 시설관리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말이 여자들이 변기에 그렇게 사용한 생리대를 버려서 골치래. 그게 가끔은 변기를 막히게 해서 뜯게 만들고, 아니면 오수펌프의 회전날개에 걸려서 펌프를 끄집어내야 하는 수고를 하게 한다는 거지. 이상하지. 누가 사용한 지도 모를 생리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왜 굳이 변기 속에 버리는지. 그래도 요즘에는 별도의 수거함이 있어서 그 수고를 덜었을거야. 물론 사용한 생리대가 성경이나 베다나 코란은 될 수 없지. 그러나 일체유심조. 마음먹기에 따라서 생리대에 담긴 너의 월경 혈도 얼마든지 원효 대사께서 당나라 행 중에 마셨던 해골에 담긴 물일 수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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