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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Oct 05. 2021

마음은 이해하기보다 물어보기다

평범한 30대 직장인 사주 입문 에세이

10대 때 나는 미련스럽게 공부했다. 내가 쓴 3탄 '수능 전 걸렸던 폐렴, 이젠 놓아주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감기가 덫나 폐렴이 되는 것을 방치하도록 소처럼 공부했다는 게다. 


왜 미련하게 공부했을까? 나의 목표는 엄마를 호강시켜드리는 것이었다. 그 탈출구로 공부를 선택했다. 비단 나뿐일까?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수단으로 공부를 선택하니까 말이다. 그런 TV, 신문 등의 정보를 보며 나도 체화된 듯 하다. 


우리 엄마는 고생을 너무하셨다. 내가 태어난 뒤 우리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셨다. 페인트질을 통해 돈벌이를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엄마가 강원도 정선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미용기술을 배워왔다. 엄마가 생업의 전선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레 역할이 바뀌었다. 


모든 노동이 힘들겠지만 미용실 일도 만만치 않다. 머리 깎기, 염색하기, 파마하기, 감기기, 청소하기, 접대하기 등 온갖 일이 뒤섞여 있다. 그런 일을 하고 마감하는 시간이 대략 저녁 8~9시였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파김치가 돼 있었다. 내 임무는 다리를 주물러 드리거나 집안 청소를 해놓는 거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에 뜻을 갖기 시작했다. 오로지 내 욕망이 아닌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의 기저에는 "엄마는 아프고, 힘드니까" 나라도 사춘기를 겪어선 안된다는 엉뚱한 생각이 자리한 것이다. 그 생각으로 중고등학교 바른 아이, 모범생, 착한 아이 등등의 수식어를 달며 살았다. 


이런 내 생각이 와장창 깨진 계기는 대학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내 생각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첫 시련으로 난 대학이란 미션을 마주해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 친구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생각했다. 자연스레 과거를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내 욕망대로 살지 못했기에 난 더 힘을 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신나고 재밌게 공부할 수도 있었던 것을. 난 너무나 집착적이었고 필사적이였다. 나쁜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지속력을 갖긴 어렵다. 결국 엄마를 위해 살아왔던 내 잘못된 욕망이 나를 이지경에 이르게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힘들기만 했을까? 아니었을 게다. 분명 엄마는 아들이 주는 혹은 자식이 주는 행복감 속에 하루하루 버텼을 수 있다. 생업의 짖눌린 무게 속에서도 가족이 주는 기쁨도 있으니까 말이다. 오로지 나는 내 생각으로만 엄마의 마음을 재단하고 판단해버렸다. 


내가 멋대로 엄마의 마음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게 나의 욕망인듯 미친듯이 공부를 했던 것이다. 다행히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면서 나는 엄마와 떨어져 지낼 수 있었고 엄마와 나의 관계를 다시 세워갈 수 있었다. 


이때부터였을거다. 난 상대방의 마음이 보이는 순간에도 대게 물어본다. 혹은 내가 생각하는 그 짐작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하고 교류하며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주에서 '편인'이란 글자가 있다. 편인이 있으면 좋게 쓰이면 빛나는 아이디어와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쁘게 쓰이면 망상 혹은 제멋대로 생각하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내게 11살부터 21살까지 10년 대운에서는 편인이 강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 기운을 망상으로 썼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무지막지한 밀어부치는 행동력을 몸소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겪으라고 하면 다시는 하고 싶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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