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원 Jun 30. 2021

할아버지와 밤 알맹이

소리 없는그리움


나의 유아기 시절은 유독 혹독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나는 자주 친척들 손에 맡겨져야 했다. 처진 눈썹이 우울해서 보기 싫었던 건지 보호해 줄 어른이 없던 내가 가장 만만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친척 들은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놀림들을 참으며 나를 보호해 줄 어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유일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은 아빠 혹은 친할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였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오고 나서야 짓궂던 친척들도 살갑게 나를 챙겼다. 나는 유독 할아버지를 잘 따랐다. 백발 머리를 하고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아버지는 유일하게 어리광을 떨 수 있는 사람이었다. 흰자위로 눈치를 살살 살피던 나는 할아버지 앞에서 만큼은 다른 아이들과 같았다. 나는 걸을 때마다 냄비들이 요란스럽게 울리는 마룻바닥을 밟을 때와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이불 안에서 발가락으로 바스락 소리를 낼 때면 난 그제야 내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할아버지가 있는 공간이라는 걸 온몸으로 부비고 나서야 어린아이처럼 자연스러워졌다.

할아버지와 나의 식사는 작은 식탁 위에 검은 콩자반과 김치 그리고 흰 밥이 전부였다. 남자가 아닌 여자인 손녀와 반 불구인 할아버지를 싫어했던 친할머니는 쳐진 볼살이 마치 욕심 많은 불독을 연상케 했다. 밥상은 할머니 마음을 대변한 것 같이 치사하고 초라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와 먹는 점심은 언제나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의 불어 있던 쌀밥은 우리가 이 집에서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7살이 되던 해 아빠와 이별하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할아버지 마주한 곳은 할아버지의 집이 아닌 처음 가본 산소였다. 그렇게 밉던 할머니 옆에 안치된 할아버지의 산소를 보며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우글거렸다. 


 오랜만에 사 먹은 밤에서 할아버지가 까주던 밤 향기가 났다. 할아버지는 항상 내가 오면 미리 까놓은 밤을 냉장고에서 꺼내 줬다. 할아버지 손길을 따라 울퉁불퉁 깎인 밤은 은색 밥그릇에 한가득 담겨있었다. 밤이 차가운 냉장고 밖을 나오는 유일한 날은 내가 오는 날이었다. 유독 차가운 밤 알맹이를 씹은 날이면 마치 할아버지의 시간을 먹는 듯했다. 난 한동안 밤을 사 먹으면서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이상하게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서로 지었던 표정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가 나는 마루에 마주 앉아 서로 밤을 나눠먹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소리는 없지만 그 장면만으로 우리를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편의점을 찾는다. 알맹이는 그때와 다르게 미지근하다. 난 그제야 할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