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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Oct 24. 2021

첫째니까, 엄마 잘 챙겨드리고





⌜세상 살다 보면 더 서럽고 슬픈 일도 생긴다.⌟


장례식 때 작은 외삼촌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말했었다. 대체 그런 세상에서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지 의문이었다. 첫째인 네가 마음 단단히 먹고, 엄마까지 잘못되지 않게 잘 챙겨야 한다. 그렇게 당부한 건 작은 외삼촌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동생보다 네 살 많은 언니니까 흔들리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휘청거리면 가족들의 마음도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나는 엄마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에 거의 반대하지 않고 따랐다. 그러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참았다.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속에 뭉치는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 엄마가 지나온 삶이 애틋해서, 혼자 남은 엄마가 너무 소중해서 나는 자꾸만 외면하고 싶어졌다. 옆에서 같이 걸으면 길동무가 될 텐데, 자꾸 어깨에 짊어지려고 하니 모든 게 다 짐이었다.


아빠를 보낸 뒤 가장 힘들었던 몇 달간 엄마는 나를 데리고 고해성사를 보러 성당에 자주 갔었다. 고해소 안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건너편에서 엄마가 울면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차단막 너머에서 고해하세요, 하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울지 않고 말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제가 엄마를 잘 모시겠다고 약속했는데...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신부님은 잠시 아무 말씀이 없다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자매님... 즐겁게 사세요. 그냥 즐겁게 사세요.⌟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건강을 회복한 뒤 엄마는 산티아고로 도보 순례를 떠났다. 외국어라곤 한 마디도 못하는 엄마가 갑자기 해외를, 그것도 몇십 일 동안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 가겠다고 하니 나와 동생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더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들 다녀온다며 한 번쯤 그 순례길에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이상 반대하지 않았고, 고모가 여행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절차들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엄마는 매일 소식을 보내왔다. 대부분 오늘 걸은 길에서 본 풍경 사진이나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였다. 어느 날은 엄마가 미국인 사진작가와 인터뷰를 해서 그 사람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올라갔다고 자랑했다. 빨간 등산모자를 쓴 엄마 사진 아래에는 '그녀는 남편을 잃은 고통을 달래기 위해 여기에 왔다'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또 힘들어할까 봐 순례길에 가는 이유를 자세히 말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무심했던 걸까.


엄마는 아직 많이 아파하고 있구나. 그래도 엄마는 자기 삶을 잘 돌보고 있구나.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서로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실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아, 역시 나는 그냥 내 삶을 잘 가꾸면 되는구나. 이제 힘들 땐 엄마한테 기대야지. 나는 아무리 자라도 엄마의 아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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